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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랬구나 Feb 08. 2024

아이들 없이 혼자 여행을 떠나보니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이 있다. 나 포함 7명. 

5년 전 부산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었는데 코로나로 한동안 못 만나다가 드디어 다시 부산으로 떠나기로 했다.


5년 전에는 첫째가 1학년이고, 둘째가 5살이었다. 아이들도 어렸지만 남편이 혼자 아이 둘을 1박 2일간 보는 건 처음인지라 불안 불안한 마음으로 떠났었는데, 초6, 초3이 되는 지금 시점에서 혼자 떠나는 여행은 그야말로 꿀이었다. 


아 물론 나 없는 동안 세 남자는 온천 여행을 간다 하여 세명의 짐을 꾸려주느라 한나절 발바닥에 땀이 나게 왔다 갔다 했지만, 곧 나에게 주어질 자유시간을 생각하니 그 정도쯤은 기쁜 마음으로 챙겨줄 수 있었다.



하늘이 흐린 어느 토요일 아침. 세 남자는 나를 서울역에 내려주고 떠났다. 

서울역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신났던 적이 있었던가.

서울역으로 가던 길에 본 광화문. 기분이 어찌나 들떴는지 늘 보던 광화문이 그날은 특별해 보였다.


기차 타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이른 아침 기차라 집에서 아무것도 못 먹고 나왔다. 커피를 살까 빵을 살까 고민하다 들어간 편의점에서 초콜릿을 3개나 사서 나왔다. 풉 하고 웃음이 났다. 아이들을 못 먹게 하느라 나까지 못 먹고 지낸 초콜릿이 몹시 먹고 싶었나 보다. 아이들과 떨어져 있으니 잊고 있던 나라는 사람의 욕구가 보였다.


부산에서 우리는 공연을 보기로 했다. 

걸어 들어온 순서대로 차례차례 한 줄로 앉았는데. 헉. 앞에 앉은 남성의 키가 상당했다. 

앞 뒷줄 단차가 무색하게 그분의 앉은키는 나의 앉은키와 비슷해서 나의 정면 시야는 완전히 가려졌다. 즐거운 시간을 기대하고 온 공연이었는데 난 어째야 하나 난감하고 짜증이 나려 했지만 딱히 대안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내 아들이다. 생각하기로 했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키에 부쩍 관심이 많은 첫째는 180센티미터 넘는 게 소원이다. 그 소원을 일찌감치 이룬 남의 아들을 그냥 예쁜 마음으로 바라봐주기로 했다. 이 남성은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키 큰 아들일 테니 말이다. 다행히 무대는 회전도 하고 배우들이 공중에서 날아다기도 하여 비교적 볼만했다.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도 엄마의 마음으로 타인을 보게 된다. 


저녁은 부산까지 왔으니 저녁은 당연히 회다. 5년 전 여행에는 임신 중인 친구가 있어서 고기를 먹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회다. 광안리의 야경을 보며 코스로 나오는 회를 25년 지기 절친들과 함께 먹고 있노라니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싶었다. 


그러다 반찬으로 나온 간장 새우를 보고 아들 생각이 났다. 

미안하지만 '이거 우리 아들 좋아하는 건데, 우리 아들 먹이고 싶다.'는 아니었다.

나쁜 엄마가 아니라, 우리 아들은 이미 서울에서 충분히 먹이며 키우고 있다. 


'앗싸! 나 이거 실컷 먹어야지!'가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침을 꿀꺽꿀꺽 삼켜가며 새우 껍질을 까줘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니 새우는 달았다. 회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들 덕분에 나는 회에 질려서 안 먹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라 나 회 좋아하네? 대방어는 고소했고, 참돔은 찰졌다. 서울이라고 맛있는 회가 없었겠는가. 아이들 먼저가 아닌 내 입에 먹고 싶은 대로 넣어도 되는 이 순간이 참 홀가분했다. 




짧고도 강렬했던 1박 2일이 끝났다. 

남자 셋이 기다리는 차에 문 탁 닫고 타는 순간 나는 다시 왁자지껄한 현실로 돌아왔음이 확 느껴졌다. 1박 2일 동안 못 부른 횟수를 채우기라도 하는 듯 집에 오는 내내 엄마! 엄마! 소리가 왱왱거렸다.



여행 내내 친구들과 우리는 다음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10년 후쯤엔 외국에 나갈 수 있으려나?"

한 친구가 말했는데, 속으로 셈해보니 그 친구의 아들이 10년 후에 딱 고3이더라.

"야, 니 아들 그때 고3이야. 갈 수 있겠어? 난 우리 아들 재수 안 하면 갈 수 있어."


10년 후에도 친구들 아기들 중 막내는 중학생이라는 걸 알고 나서야 우리는 꼭 여행이 아니라도 좋으니 얼굴이라도 보고 살자고 약속했다. 하루 날 잡아 서울과 부산의 중간 정도쯤에서 만나 밥이라도 한 끼 먹고 헤어지자고 했다. 사실 이 여행에도 한 친구는 아이가 독감에 걸려 아쉽지만 함께하지 못했었다. 엄마들의 삶이 그렇지 뭐. 


짧지만 행복했던 시간을 마무리하며 생각했다. 

꼭 거창한 여행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꼭 짧게라도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겠다고 말이다. 나만을 살피게 되고 나의 속마음에 귀 기울이게 되고 나만의 행복을 생각하는 그 시간이 꼭 필요하다. 내가 내면적으로 싱싱하고 힘이 있어야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긍정의 에너지가 발산된다. 내면의 단단함과 행복감은 나라는 사람이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고 채워줄 때 생기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매몰되어 사는 엄마의 삶에서는 고갈되기 쉬운 부분이다. 나는 어른이다. 누가 해주길 바라기보다는 나 스스로 살피고 아껴야 한다.


그래서 엄마들은 방학이 힘들다. 나 혼자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이 짧은 글을 쓰면서도 몇 번이나 저장하고 껐다 켰다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내 글을 읽는 걸 좋아하는 큰아들이 혹시 이 글을 읽고 섭섭해할까봐 한 줄 덧붙임.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동안, 홀가분한 편안함은 있었지만 가슴 벅차게 행복한 감정은 느낄 수 없었다. 아이들이 내 품에 안겼을때 느껴지는 그런 몽글몽글한 행복감도 없었다. 나에게 어마어마한 행복감을 주는 우리 소중한 아들들. 엄마의 1박2일 여행동안 씩씩하게 잘 지내줘서 고마워! 


표지 이미지출처_픽사베이

본문 이미지출처_그랬구나 본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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