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레오파드 게코 도마뱀 레온이와 함께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내가 도마뱀을 키우게 될 줄은.
2년 전쯤이었다. 장래희망이 생물학자였던 큰아이는 도마뱀을 꼭 키워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지금은 동물 식구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한때는 큰아이 방에서 도마뱀, 거북, 사슴벌레, 구피, 소라게가 함께 살았다. 그 동물 친구들을 키우기 위한 여과기, 필터, 온열장치만 해도 어마어마해서 아이의 방에 들어가면 윙윙윙 기계 소리로 시끄러웠다. 큰아이의 꿈이 연예인으로 바뀐 지금은, 수명을 다한 작은 동물들은 가고, 장수의 상징 거북과 도마뱀만 함께 지내고 있다.
거북은 작년에 눈병이 와서 생사의 고비를 한 번 넘겼다. 수질이 좋지 않거나 온도가 맞지 않을 때 생기는 거북의 눈병은 눈꺼풀이 부어서 눈을 뜰 수 없고, 볼 수 없으니 먹이를 먹을 수 없어지게 되는 병이다. 거북에게는 흔하면서도 치명적인 질병인데, 폭풍 검색을 해보니 거북용 안약을 넣어주면 된다고 하여 새벽배송으로 받아 정성스레 넣어주고 물을 잘 갈아주니 다행히도 나았다. 그 이후로 아이들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거북이 수조 물 가는 것은 나의 일이 되었다.
도마뱀은 몸이 커질 때마다 탈피를 하는데, 보통은 하룻밤사이에도 빠르게 하고 껍질을 자기가 먹기 때문에 탈피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탈피 때는 좀 달랐다. 탈피하는 속도가 느리고, 잘 벗겨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도마뱀 레온이는 벽에 문지르기도 하고 자기의 혀로 연신 핥았는데, 마지막까지 한쪽 눈꺼풀 부분의 껍질이 잘 안 떨어졌다. 껍데기는 돌돌 말려 눈 안에 들어가서 눈꺼풀 바로 아래 끼어있었는데, 너무 답답해 보였다. 역시나 이번에도 검색을 해보니 저러다 심하면 실명이 된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났다. 잘 떨어지라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 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핀셋으로 빼주자니 껍데기가 너무 눈알에 붙어있어서 위험할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니 그쪽 눈을 잘 뜨지도 못했고, 눈이 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 눈을 뜨지 못하니 먹이를 조준하는 정확도가 떨어졌다.
레온이는 집에서 치료가 불가능할 것 같아서 동물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는 요즘이지만 도마뱀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서울에도 많지 않았다. 최근에 레온이에게 관심이 시들해진 아이들은 죄책감 때문인지 더욱 열심히 병원을 알아보았다. 큰아이는 자기가 레온이 아빠라며 병원은 자기가 고른다고 우리 집에서 엄청 먼 한 곳을 골랐다. 예약을 하려고 연락을 드리니 아이의 이름, 성별, 나이를 묻는다. 헉. 이름은 레온이인데요, 성별도 모르고 나이도 몰라요.
드디어 동물병원에 가는 날, 아이들은 차가 덜컹거린다며 레온이가 멀미할까 스트레스는 받지 않을까 아빠보고 조심히 운전을 해달라며 야단법석이다. 그럼 안 가는 게 낫겠니? 물어보니 그건 아니란다. 그럼 좀 가만히 좀 있어줄래? 시작부터 피곤한 특수동물병원 방문이다.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동물병원. 문을 여니 보호자들로 빼곡하다.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건 커다란 앵무새. 오 마이갓. 나는 조류 공포증이 있다. 아, 병원 진료가 끝나고 나가기 전에는 몹시도 이국적인 닭도 한 마리 대기실에 있더라. 아무튼 눈 질끈 감고 대기석에 앉으니 이번엔 등갑이 20센티미터는 넘어 보이는 육지 거북을 아기처럼 담요에 안고 오신 분이 들어오다. 저 거북은 어디가 아플까? 생각하며 시선을 돌리니, 맞은편에는 햄스터 두 마리를 데리고 온 사람이 있다. 우리보다 늦게 온 중학생 형님은 하늘다람쥐를 데리고 들어왔고, 우리처럼 엄마 아빠와 아이 두 명으로 구성된 4인 가족은 도마뱀을 데리고 왔다. 우리 도마뱀 레온이는 간호사 선생님이 먼저 데리고 들어가셨다. 몸도 따듯하게 해 주고 먹이도 먹이고 세척도 하고 기다리고 있을 거란다. 이런저런 동물들을 구경하다 보니 수의사 선생님이 우리를 부르신다.
레온이의 눈 안에 들어있는 탈피 껍질은 안전하게 제거하였고, 불편했던 눈은 부어있는 상태라 주사 및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하셨다. 그리고 전체적인 건강 상태를 볼 수 있게 엑스레이 촬영을 해보겠냐고 물으셨다. 비용은 6만 원이라고 하셨다. 남편은 안 했으면 하는 눈치이고, 나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꼭 해달라고 매달린다. 그리하여 우리 레온이 엑스레이 촬영까지 진행.
친절한 수의사 선생님께서는 설명을 하실 때마다 '우리 아기는요~'하고 설명을 해주셨는데 웃음이 나려는 걸 꾹 참았다. 모든 반려동물은 그 집의 아기 같은 존재일 텐데, 동물병원에 처음 온 나로서는 몹시 낯선 표현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말하는 '우리 아기는요~'는 아이들이 신생아적 소아과에서 듣고는 십여 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예약을 하고 갔어도 대기 시간이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진료와 처치까지 하고 나니 병원에서 3시간 넘게 있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레온이를 데리고 나온 간호사 선생님께 약 먹이는 법을 배우고 결제만 남았다.
네? 뭐라고요? 십오만 원이라고요???
그랬다. 건강보험도 안 되는 우리 집 레온이의 병원비는 152,500원이 나왔다.
병원을 나오며 남편은 농담으로 레온이 병원비는 연말정산 안되냐고 묻는다. 레온이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잖아. 하고 대답하니 보호자로 등록된 내 이름으로는 안 되냐 묻는다. 하하하 현실을 부정하고픈 농담이다.
비록 예정에 없던 큰돈을 지출했으나, 그래도 녀석의 눈을 보니 속은 시원했다. 도마뱀 키우는 방법도 청계천 파충류샵에서 보다는 훨씬 자세하게 배울 수 있어서 나름 유익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아침저녁으로 약 먹기를 거부하는 레온이에게 약을 먹이면서 생각했다.
자연에서 지내면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녀석들을, 굳이 인간이 이렇게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아프게 만들고(물론 우리가 직접적으로 아프게 한 건 아니지만, 자연이 아닌 환경이 동물들을 아프게 한다고 생각한다) 치료를 하겠다고 시간과 돈을 들이는 이 아이러니는 무엇일까. 인간의 손에서 자라는 동물들은 자연에 있는 동물보다는 평균 수명은 더 길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것이 동물의 입장에서는 행복일까. 난 잘 모르겠다.
그래도 동물에 진심인 분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마지막에 우리에게 레온이 약 먹이는 방법을 알려주신 간호사 선생님은 반팔을 입고 계셨는데 팔이 온통 동물들의 발톱에 긁힌 상처로 가득했다. 우리 레온이와 비슷한 도마뱀을 키우신다고 레온이가 너무 귀엽다고 웃어주시던 그분이 참 오래 기억이 난다.
동물을 좋아하기는커녕 무서워하는 내가 도마뱀을 키우고 있다니 정말 인생 모를 일이다. 처음엔 무섭기만 했던 그 녀석이 이젠 좀 귀엽기까지 하다. 안 보면 궁금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큰 아이방을 기웃거린다.
레온아, 할머니가 습도 잘 관리해 줄 테니 이제 탈피 잘하자.
나 그 병원 다시 가기 싫어. 병원비가 비싸서가 아니라 할머니는 새가 너무 무섭거든.
이미지출처_픽사베이, 그랬구나 본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