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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주도성이 부족했던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겪는 혼란

커리어노트 + 책 추천

by 져니킴

요즘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있다.

로이스 김이자 정김경숙이란 이름의 그녀는 구글 임원에서 구글이 먼저 놓아준 손으로 인해 실리콘밸리에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각기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그중 한 소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리타'라는 열아홉 살 소녀는 2년째 스타벅스 매장에서 시프트 슈퍼바이저로 근무하며 각 바리스타들의 시간과 업무를 매칭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가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슈퍼바이저로 일을 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녀의 꿈은 군인이 되어 리드가 되고 군인들을 통솔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는 것인데 스타벅스에서의 경력이 나중의 자신의 꿈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열아홉 살의 소녀가 자신의 꿈을 향해 이러한 지도를 그리고 계획을 했다는 것이 대단해 보인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열아홉 살부터 최근 몇 년 전까지의 나를 돌이켜보았다. 나는 그 나이에 무슨 생각을 했지? 꼭 누군가 그려놓은 보이지 않는 엑셀표 안에서 움직이는 고분고분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열심히 경주했던 소녀로 보이기도 한다.




부모님 말씀대로 좋은 대학을 가야 성공한다고 해서 무조건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리고 디자인과가 순수미술보다는 취업이 쉽다고 하는 말씀에 디자인과를 목표로 그림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렸다.


그렇게 원하는 대학을 가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3학년때에는 인턴을 한 경험이 있어야 취업할 수 있다고 해서 열심히 인턴 기회를 찾아다니며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주어진 기회를 잡기 바빴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산업디자인과에서 공부한 지 2학년때에 나는 이 분야가 내 일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는 생각을 했고 왠지 그래픽 디자인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주말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졸업 시즌이 되어 회사 여러 곳을 지원하고 나에게 합격 기회를 주는 곳이었던 한 대기업에 취업해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열심히 일했다.


입사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다. 단순히 일이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는데 그것에 비해 월급이 적다고도 느껴졌다. 그리고 회사 내에서 나이는 나의 부모님 또래였고 대기발령을 받아 컴퓨터 없는 책상에서 시간을 보내시다가 조용히 말없이 퇴근하시는 부장님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무작정 이 환경을 벗어나고 싶은 데다가 내가 이 회사에서 이 일을 하면서 성장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았고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때가 그때 즈음이었다. 그 시기에 결혼 후 미국에 오게 되었다. 왠지 미국에서는 내가 더 넓은 기회 속에서 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으로 석사를 마쳤고 취업준비를 했다. 소중한 인터뷰 기회 하나를 얻게 되었을 때에 그 하이어링 매니저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의 커리어에 대한 계획, 5년 후 그림은 어떤 모습인가요?"


머리가 띵-해졌다. 흔히 나올법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즉석으로 답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 회사로부터 다음 인터뷰는 진행할 수 없게 됐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회사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질문을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답을 준비했고 간신히 얻은 또 다른 인터뷰에서도 하이어링 매니저는 다행히?나에게 그 질문을 했다.

그 회사에서 오퍼를 받고 몇 년 뒤 이직 후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다시 그 질문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매니저와 목표설정을 하는데 중장기 목표에 대한 명확한 생각이 없는 나의 모습에 매니저가 당황하는 얼굴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어보고 느낀 것은 미국 사람들은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목표와 그 지도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반면 그런 것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이 친구는 자신의 인생 그림에 소극적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일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주어진 투두리스트를 끝내는 것은 당연하고 연차와 직급이 올라갈수록 'Strategy'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느냐를 요구한다.


사실 장기적인 목표와 그림대로 인생이 흘러가지는 않지 않나 라는 생각이 있었다. 오늘 현재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나중에 보면 점들이 다 이어진다는 말이 있듯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보다는 내가 그것을 위해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의미있는 일이었다.


세상이 나에게 던진 질문은 커리어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것에 더해 내가 어떤 성향인지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를 물어보며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을 위해서 내가 하는 일은 매일 아침과 밤에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책도 읽는다.


아마 그 계획이란 것은 멈춰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가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계속 수정할 수는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것을 가치 있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철학 말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추천하는 책 하나는 <김미경의 딥마인드>이다. 내가 고민을 하고 일기를 쓸 때쯔음 이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우월감 중독'이란 단어가 나온다. 내가 무엇 때문에 늘 마음이 불편했는지 알게 되는 단어였다. 나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면 위태로워진다. 인생도 커리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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