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그만두기로 했다

여러 개의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바뀐 질문

by 아무나작가 이율희

타이틀이 사라지자, 내가 같이 사라졌다

직장인 은퇴 이후, 불안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일이나 돈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이 불안은 훨씬 더 근원적인 것이었다.


나는 분명 행복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달달한 신혼생활,
파이어족으로 조기 은퇴한 삶,
하고 싶었던 취미와 일들을 시도하며
시간의 여유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동시에, 불안했다.
불면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악몽을 자주 꿀 정도로 깊은 불안이 따라왔다.


나는 그동안 행복과 불안

서로 반대되는 단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나는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먼저 겪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나를 규정하고 싶어 했을까

이 불안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나를 정의하려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타이틀이 있을 때는 쉬웠다.
조직과 역할
나를 대신 설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사라지자
나는 나를 하나의 문장으로 붙잡고 싶어졌다.
정의할 수 있으면,
이 불안도 정리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문제는 답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나를 규정하려 애쓰고 있었을까.


하나의 나를 포기하니, 여러 개의 내가 살아났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정의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나의 성격이나 하나의 정체성이 아니라,
여러 개의 내가

동시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빙구미 넘치는 아내인 나,
코기 두아의 엄마인 나,
일을 벌이는 나,
생각을 정리하는 나.


그동안 잠자코 있던 여러 자아들이
각자 나댈 수 있도록
표출의 공간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SNS 계정을 만든 것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이 선택은 나를 하나로 묶지 않아도 된다는
작은 해방감을 주었다.


불안은 여전하다

그렇다고 불안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굳이 사라져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이 불안과 함께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있다.


모든 자아에
동일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는 없다.
결국 다시 선택의 문제로 돌아온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지금의 나는
어떤 나에 더 집중하고 싶은가.


최근에 Brian Little의 TED 강연

"The Puzzle of Personality"를 보며,

오히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질문과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더하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의 성격으로 정의되기보다,
지금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지로 드러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시간을 쓰는지가
결국 나를 만든다.


요즘의 나는
‘어떤 나에 더 집중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계속 붙들고 있다.


불안을 없애기보다는,
불안의 방향을 조금 더 정확히 조정하면서.


그 정도면,
지금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