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한 없이 가벼워 날아갈 것만 같던 한 철의 계절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쓰든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나를 몇 개의 낱말 속에 가두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자유로웠다.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은 흩어질 것이고 내가 적는 글들도 바래져 더 이상 읽히지 않을 예정이었다. 사람들은 끝내 나를 모를 것이고 나도 사람들에게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계절은 가볍게 지나가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잘 맞는 톱니바퀴가 되기를 원한다. 모나지 않고 잘 돌아가는, 규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부품이 되기를 원한다. 기꺼이 나서서 마땅히 당신을 부품으로 만든다. 돌아가지 않으면 깎고, 밀어 넣으며, 대체하고, 다른 자리에 넣어보며, 명명하고 정의하여 규정한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편했다. 기시감은 달콤한 소속감에 비하면 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업무 분장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착하다는 틀에 기쁘게도 나를 욱여넣었으며, 가식과 거짓은 당신으로부터 배려와 친절로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기한을 채찍으로, 평판을 당근 삼아, 그렇게 돌고 도는 톱니바퀴가 되었다.
그러다 헤세를 만났다. 데미안을 읽고, 크눌프를 읽고, 골드문트와 나르시스를 읽고, 유리알 유희를 읽고, 끝내 황야의 이리에 닿았다. 선과 악, 낭만과 죽음, 고결함과 쾌락, 실용과 이념, 한 사람 안에 대립되는 자아들. 헤세는 양극단의 것들을 모조리 부수어 단 하나로 다시 조립하기를 즐겼고, 나도 나를 해체할 필요를 느꼈다. 톱니바퀴가 되어 버린, 다른 사람들에 의해 옳고 그름이 정해져 버린, 버티는 것만이 능력이 되고 부서가 취향이 되어 버린, 나를 해체하고 분리하여 다시 조립해야 했다. 그려진 그림을 찢는 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듯 사람이 새로 태어나는 데에도 하룻밤이면 족했다.
주변 사람을 도왔다.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돕고 싶었을 뿐이다. 하루종일 즐거웠다. 우울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즐거움을 가져다주었고 즐거워서 즐거웠다. 조금 더 도덕적인 사람이 되었다. 죄에 따르는 질타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품위 있는 행동이 더 근사해 보였기 때문이다. 편의와 우위를 위해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경멸하게 되었다. 맡은 업무와 상관없는 아동 문학을 배우기 위해 대학원에 갔다. 그곳에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했다. 사랑에 빠졌고 열심히 일했다. 더 이상 미성숙과 미완성이 부끄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 ‘너’로 인해 행동하는 것은 없었다. 오로지 ‘나’로서 행동했다. 너를 규정하지 않았다. 나도 규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13년이 지나고, 나는 요새 나의 무게를 느낀다. 오로지 나로 쌓은 나의 무게를 느낀다. 무겁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다. 그 가볍지 않음이 내게는 큰 위안이 된다. 마구잡이로 자라 버린 나를 말로써 설명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 되었다. 말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잘 재련된 낱말들로 제한된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설명해야 할 텐데, 이율배반적인 모습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지만 클라이밍을 자주 하고, 변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배우고, 모임을 좋아하지만 멀찍이 구석에 혼자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태생이 똥손으로 태어나 수채화 그리기를 자주 하고, 누구와도 친한데 친한 친구가 없고, 여유롭지만 늘 바쁘고, 이상적이지만 쉽게 손절하며, 공감하지만 동의를 잘 하지 않는, ENFJ지만 혼자 놀고 원칙 대로 일하는 시간이 더 많은, 나는, 모두 나인데, 어느 한쪽을 말하면 다른 한쪽이 거짓이 될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글이 좋다. 글은 지금처럼 기다려준다. 저는 이러한 그림입니다, 라고 딱 잘라 말하기보다는, 제게는 이런 물감들이 묻어 있어요, 라고 하나씩 설명할 수 있다. 글은 항상 느긋하게 기다려주고 여기에 남아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다. 그래서 여기 나를, 나의 조각들을 하나씩 적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