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부러졌다!
그때는, 신나게 고기를 씹고 있었다.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 구상하다, 늦은 점심을 먹었다. 얼마 전에 찾아낸 동네 맛집. 배달 삼겹살은 대부분 오븐에서 튀기듯 구워내 것이 바삭하지만, '눈꽃 삼겹살'이라는 별칭답게 보들보들 녹아내렸다. 이따금 PMS 때 치아가 시리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그 시기엔 잇몸이 자주 부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입 안에서 고기를 굴리며 씹는데, 뭔가 이물감이 느껴졌다. 짧게 혀를 스친 감각에도, 삼겹살의 물렁뼈가 아님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아, 이거 치아가 깨진 거다. 마침 햇반의 마지막 한 술을 비운 터라 물고 있던 것을 그대로 뱉었다. 혀로 치아들이 온전한지 훑는데, 글쎄, 오른쪽 윗 어금니가 자그매졌다. 분명 치아가 깨졌으니 부피가 작아졌는데, 볼살에 느껴지는 파절면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까끌한 질감이 어색했다. 혀로 훑으면 단단히 버티고 서있던 치아가 사라진 탓에, 혀가 어금니를 기준으로 안팎을 자유롭게 넘어 다녔다.
나는 현재 일신상의 이유로 일을 관두고, 모아둔 돈과 퇴직금을 아껴 쓰며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글 쓰기가 지금 내 본업이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는 백리랜서(백수+프리랜서)에게 치과라는 곳은 마치 돈을 뜯어내는 고리대금업자 같은 존재다. 내가 관리를 제대로 못했으면서 괜한 소리를 한다.
치아가 없이 살 수는 없지 않나. 부분적으로 깨져 인레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이면, 지갑이 두둑할 때를 기약했겠지만, 치아가 왕창 파절 된 작금의 사태를 좌시할 수 없었다. 백수님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급하게 먹던 것을 정리하고 어느 때보다 깨끗하게 양치를 한 후, 핸드폰으로 검색했다. 'OO구 양심치과', 'OO역 양심치과', 'OO구 보존치료'. 직감적으로 이 정도 이가 날아간 거면 최소 신경치료, 최대 임플란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최대한 양심적으로, 그리고 내 자연치 그대로를 살려줄 수 있는 명의의 손길이 필요했다. 시간은 오후 3시 반쯤이었고, 직장인이 야간 진료를 보러 오기 전에 빠르게 예약을 해야만 했다. 한 곳의 리뷰가 마음에 들어 전화를 하고 바로 당일 예약을 잡았다.
외출 전 거울을 통해 본 치아의 상태는 참혹했다. 10년 전쯤, 아이돌 팬덤 사이에는 '입동굴'이라는 게 유행했다. 양쪽 어금니가 옆으로 벌어지지 않고 안쪽으로 깊은 구조를 가진 사람이 웃을 때, 치아와 입매 사이로 까맣게 빈 공간이 드러나는 건데, 나도 그걸 생애 처음으로 가지게 된 것이다! 치아가 부러진 탓에 입동굴을 가지게 되다니. 이 급박한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한 게 스스로 어이없어 웃었다.
오늘 최고 기온은 36도. 양산을 들고 최대한 정수리의 열을 낮추며 걸어갔지만, 집에서는 거리가 꽤 되어서 병원에 도착했을 때쯤엔 이마에 땀이 흐를 정도였다. 평소 같았으면 굉장히 불쾌감을 느꼈겠지만, 치료에 대한 불안감이 그것을 상쇄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교정 치료를 포함해, 충치 치료, 신경 치료로 치과에 자주 방문했었다. 당시 열악했던 치료 환경 때문에, 마취 과정부터 치료까지 힘들지 않은 것이 없었고, 성인이 된 지금도 진료과 중에 치과를 제일 무서워한다. 더러는 정신과가 문턱이 제일 높다던데, 나는 오히려 그쪽이 더 심적으로 편하다.
치과에 도착해 접수를 하는 동안 들리는 날카로운 철제 소리, 치아 가는 소리, 석션 소리, 그리고 치과 특유의 냄새. 사실 엄청나게 겁에 질려 있었지만 접수를 한 이상 돌아갈 수 없다. 치료를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치아가 없이 어떻게 살아가니. 오른쪽만 입동굴이 생긴 채 음식도 못 씹으며 살아갈 순 없다. 대기 의자에 앉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탱이와 세모, 네모에게 카톡을 했다. 어어, 나 이가 부러져서 치료하러 왔어. 대기하는 동안 치위생사님이 스케일링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뒷모습을 보자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두려움이 온 정신을 지배했다. 대기실에는 '웃음가스'를 홍보하는 배너가 놓여 있었다. 웃음가스를 검색했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 수면 치료는? 가격을 보고 검색창을 닫았다. 나에게 수면 치료 비용을 듣고, 그냥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는 세모와 네모의 메시지를 보고 조금은 힘을 냈다.
엑스레이를 찍고 치료 의자에 앉았는데, 사진상 부러진 치아가 정말 껍질만 달려 있는 것 같이 까맣게 보였다. 고기 좋아하는 겁쟁이 주인을 만나 미안해. 오늘 반드시 치료해 줄게. 치위생사님은 많이 아프셨겠다며,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아프지 않은데 아프셨겠다고 물어보는 게 나에겐 더 공포였다. 엑스레이만 봐도 내가 아픈 게 예상될 만큼 심각한 건가? 사실 내가 아픈데 너무 놀라서 뇌를 속이고 있나?
어느새 다가온 의사 선생님은 프로페셔널하게 이를 훑으며 치아 번호당 필요한 치료를 외치셨고, 위생사님이 받아 적으셨다. 분명 의학 용어로 말씀하셨는데 슬프게도 무슨 말씀을 하는지 다 알아 들었다. 공포에 질려 집중력이 높아졌나 봐. 신경치료 후 치주 중심을 세우고 크라운을 씌울 건데, 치아가 많이 깨져서 자연치 부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크라운을 씌우기 전까지 절대 해당 치아로 무언가를 씹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이후 전체 금액에 대한 안내를 받았지만, 백리랜서는 금액에 유감을 표하며 우선 오늘 부러진 치아만 급하게 치료를 받겠다고 했다. 상태가 비슷한 다른 치아는 소일거리를 해서라도 돈을 모아 다시 치료할 예정이다. 또 부러지면 슬프니까, 비참하니까, 고기 못 먹으니까. 사실 주말에 탱이와 나의 생일을 맞아 스테이크를 썰러 가려고 호텔 레스토랑을 예약해 두었는데, 이틀을 앞두고 치아 파절 이슈로 치과 의자에 앉아 예약을 취소했다. 스테이크를 먹으려면 왼쪽 치아로 100번은 씹어야 겨우 넘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비싼 돈 주고 그렇게 하고 싶진 않으니까.
마취를 하겠다며 날 뒤로 눕히자마자 한숨과 함께 "마취... 안 아프게 해 주세요."라고 하자마자 프로페셔널한 의사 선생님이 웃음을 터뜨리셨다. 마취가 좀 따끔하게 불편할 수 있는데 그 외에는 하나도 아픈 게 없다며 어린아이 달래듯 달래주셨다. 나 어릴 적엔 엄청 굵은 주삿바늘로 그 여린 잇몸을 쿡쿡 2~3번 찔러가며 마취를 했었는데, 신경을 바늘로 직접 찌르는 건가 싶을 정도로 너무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첫 번째 마취 주사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따끔하기만 했다. 마취약이 들어가는 동안 입에 연결된 주사기를 꽂고 멍하니 있었다. 다시 선생님은 마취약 한 번 더 넣어야 한다고 하시며 "입천장은 딱딱해서 마취주사가 불편하실 거예요."를 랩처럼 뱉으신 다음,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바늘을 찌르셨다. 확실히 잇몸에 놓은 첫 주사보다 더 아프긴 했는데, 선생님이 바로 "오늘 치료 중에서 제일 어려운 거 해내셨어요. 이제 아픈 거 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괜찮은 척해야만 했다. 솔직히 그렇게까진 아프지 않았다. 코로나 예방 주사가 더 아팠다. 마취 주사 하나만으로 약 20년 간의 의학의 발전을 체감할 수 있었다.
마취가 한참 진행 중인데도 의사 선생님께서 오지 않으셨다. 어색하게 치위생사님이랑 한 공간에 앉아있다가 아빠한테 전화 걸어서 마취된 음성을 한 번 들려줬다. "어, 마치해따. 아니, 밥 먹다가 갑자기 이가 깨져 가지고. 개안타. 비싸긴 비싸지. 어, 머 근데 우야노. 이가 없으면 안되자나. 우리 여행 가서 나는 머 못 묵는다. 부드러운 것만 무그래. 웅, 너무 약 올리지 말고. 웅, 들어가셔." 아빠는 딸내미 못 씹는다는데 맛있는 거 먹어야겠다고 약 올린다. 참고로 부모님 두 분 다 치아가 안 좋아서 임플란트를 잔뜩 했다. 웬만한 월세 보증금 정도는 이에 투자하셨다. 유전 탓에 나도 치질(齒質)이 좋지 않다.
한참의 기다림 끝에 의사 선생님이 오셨고, 본격적으로 신경치료에 나섰다. 선생님은 치아 긁어낸다, 신경관 찾았다, 신경관 길이 몇 mm다, 신경관 확대 중이다, 소독하고 약 넣었다. 하며 실시간으로 본인의 행위를 설명하셨다. 환자 입장에서는 소리와 느낌으로만 유추해야 하는데, 일일이 다 설명해 주시니 마음이 놓였다. 마취 주사를 맞고 꽤나 시간이 지나 완벽히 감각이 통제된 탓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왜 이걸 이렇게 무서워했을까. 웃음가스까지 찾아보다니. 생각보다 빠르게 치료가 마무리되었다. 치료 전후 유의사항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해 주신 탓에, 치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 통장 잔고에 대한 두려움만 존재할 뿐이다.
오늘도 백리랜서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민생회복 쿠폰을 받자마자 모두 치료에 썼기 때문이다. 치료비가 꽤 많이 나왔던지라 그 15만 원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앞으로 1~2번 정도 더 가서 기둥을 세우고 크라운을 씌워야 한다. 남은 날들도 오늘만 같은 정도라면 두려움 없이 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취가 조금씩 풀리고 점점 치과 냄새가 입안에 퍼지고 있다. 완전히 풀리기 전까지 식사를 할 수 없기에 오늘은 아주 늦은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여러분, 치과 최대한 자주 가셔서 절대 신경 치료 하지 마세요. 통장이 더 아픕니다.
추신. 진료받고 나오는 길에 웃음가스 치료받은 남자분이 수납하고 계셨는데 영 속이 좋지 않다고 했다. 맨땅에 헤딩하길 참 잘했다. 용기를 준 탱이와 세모, 네모 자매에게 감사의 인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