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는 산에 있어서요. 캠퍼스가 없습니다.
소설 데시벨의 시놉시스를 써놓고 빈둥댄다.
혹자는 빈둥대는 시간도 창작의 시간이라는데, 나는 소설로부터의 피난을 에세이로 한다. 두 글 다, 적확한 단어를 골라 나열하는 건 같은데 소설을 쓸 때는 한 층위 더 높은 고뇌에 빠진다. 아무래도 내 얘기에 말 맛을 첨가해 조리하는 에세이와, 내 손을 빌려 다른 사람의 삶을 요리하는 건 다른 차원이니까.
주로 글을 쓰는 장소는 집 또는 카페다. 집에서는 온전히 내 생각과 마음의 소리에만 귀 기울여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시야가 한정되어 있어 생각을 열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또한 글감이 생각나면 노트북을 켜 바로 작성할 수 있다는 대단한 이점과, 쓰기 싫으면 바로 벌러덩 누울 수 있다는 대단한 단점이 공존한다.
우리 동네에서 작업하기 좋은 카페를 찾기란 쉽지 않다. 개인 카페의 경우, 커피의 맛과 분위기는 좋지만 콘센트나 좌석의 편의성이 떨어지고, 조금 더 큰 업장의 경우 단체 손님의 수다 소리에 정신을 빼앗기기 십상이다. 오히려 프랜차이즈 카페가 좋은 선택일 때가 있는데, 적절한 콘센트 배치와 밝은 분위기, 보장된 음료의 맛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음료 주문하는 소리, 제조하는 소리, 주문번호를 외치는 소리에 단체 손님까지 자리한다면 그날 작업은 공치는 것이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작업하기 좋은 카페'들도 영상 편집, 음악 작업에는 좋을지 언정,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글쓰기를 하기엔 탁월하지 않다. 망하기 직전 카페에서 한나절을 작업한다던 일화의 주인공, 봉준호 감독의 카페 셀렉 능력이 부럽기도 하다.
카페에서 쉴 틈 없이 타이핑을 하다 고개를 들고 유리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니 서울혁신파크 있다. 이전에는 국립보건원 부지였으나, 2013년 서울시에서 마이스(MICE)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세운 복합 공간이다. 현재는 모종의 이유로 2023년 폐지되었고 현재 일부 건물과 공원 부지만 공중에게 개방되어 있다. 카페의 2층 창에서 바라보면, 건물들이 가로막고 있는 탓에, 그 부지가 얼마나 큰지 가늠되지 않는다. 별 수 없이 건물들의 높이와 건물 사이의 간격, 공원의 입구와 주변을 둘러싼 담장으로 그 넓이를 가늠해 본다.
나는 대학 캠퍼스, 공공건축물과 같은 넓은 부지를 가진 건축물을 보면 편안함과 설렘을 느낀다. 단, 조건이 있는데, 높기만 한 단일 건물은 예외다. 자세히 말하자면, 너른 부지에 5층 이하의 낮은 건물이 ㄱ, ㄴ, ㅡ 자 모양으로 용도에 맞게 늘어서 있는 형태가 좋다. 필지 내 녹지는 필수이며 돌로 만들어진 정문을 갖추고 있다면 더 좋다. 그런 광대한 공간에 들어가 걷고 있으면 왠지 내가 안전하게 꿈을 꾸고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대학이 갖는 '성장과 가능성'이라는 사회적 상징성을 건축물을 보고 그 안에 속하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건물의 외관이 낡아도 나에겐 그 어떤 것보다 미래 지향적으로 느껴진다.
지방으로 갈수록 공공건축물 규모가 커지는데, 아무래도 수도권에 비해 저렴한 부동산 가격 때문일 것이다. 건물에 들어서면, 로비의 높은 층고가 가장 먼저 직관적인 시원함을 안겨준다. 이에 더해 오래된 건물의 경우, 특유의 회색빛 화강암 타일이 바닥과 벽면을 감싸고 있어 그것이 뿜어내는 냉기도 한몫을 한다. 같은 이유에서 대형 병원의 로비도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건물 존재 이유를 생각하면 마냥 설레어 할 수는 없다.
대학 캠퍼스든, 공공건축물이든, 대형 건물 단지에는 잘 정돈된 잔디밭과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누가 강요한 적은 없지만 내 기분이 그렇다. 녹지가 없는 단일 건물은 아무리 근사하다고 해도 편안함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나무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자연스럽게 거리감을 유지하고, 양질의 햇살이 내리쬐는 잔디밭의 푸름이 평안을 가져다준다.
우리 국토 면적의 64%가 산이니만큼, 풍수지리학상 임수(臨水)는 어려워도 배산(背山)까지는 갖추는 게 어렵지 않다. 낮은 층고의 건물 스카이라인과 산의 능선이 도미노처럼 늘어서 있는 모습에 안정감을 느낀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러한 모습에 익숙함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편안으로 작용할지, 진부로 작용할지는 취향에 따를 것이다.
건축 설계학에서도 좋은 캠퍼스의 첫째 조건을 자연과의 조화로 뽑고 있다. 떨어진 독립된 대학동(건축물) 사이에 녹지가 존재하고, 그 사이를 도시(상권)가 둘러싸고 있는 유기적인 형태를 가장 이상적으로 꼽는다. 실제로 녹지 공간과의 유기성이 학생들의 스트레스 감소와 슬픔 및 걱정 증상 감소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자연경관을 쉽게 접하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심한 교육 환경과 디지털 세상에서의 정체성을 벗어날 수 있다니!
그러니까 내가 대형 건축물을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가 아닌 건축가의 의도적인 설계 때문이라는 것. 이 글을 쓰는 동안 건축물과 심리에 관한 문헌을 살펴보며, 사회적 설계 방식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많은 건축가들이 건축물의 미감과 기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심리를 중심에 두고 설계를 한다는 것에 왠지 모를 인류애를 느끼며 글을 마친다.
추신. 인간의 심리를 고려하지 않고 건축물을 설계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성해나 작가의 소설 혼모노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