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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훈 Nov 18. 2022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조아따

(주의)매우 강력한 스포일러 포함



이 영화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B급 영화를 가장한 S급 영화

히어로물을 가장한 자아성찰물




 간만에 인생영화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생겼다. 최고의 영화를 인터스텔라로 꼽는 나에게 주제나 연출이 굉장히 유사하게 다가왔고, 가히 어깨를 나란히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많은 패러디와 병맛, 난잡한 포스터 덕에 B급 느낌을 낭낭하게 줘서 호불호가 갈릴만하다. 분명 재미없다고 느낀 사람도 한 트럭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본 후 느낀 단편들과 이 영화의 매력을 글로 적고 싶어졌다. 작품은 제작자의 손에서 벗어나면 독자의 것이라 하듯, 사실 여부가 틀릴 수 있어도 내가 느끼고 생각 한 것 위주로 적어본다.


1. 다중우주에 대한 성찰

 얼마 전 '디즈니'에서 나온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라는 노잼 영화를 봤는데,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거기가 아니라 이 영화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제작에 참여한 루소 형제가 디즈니의 많은 제약 덕에 풀지 못한 한을 이 영화에 푼 거라 말하듯이 다중우주(멀티버스)에 대한 깊은 성찰이 느껴진다.

그 어떤 가지를 잘라도 원형과 같은 모양을 가진 프랙탈 모형
파동형으로 존재해 구름내 어디든 존재할 수 있는 전자모형 (출처, 금성출판사)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 Choice'라는 말처럼 수많은 선택의 결과가 모여 나의 인생이 된다. 아침에 5분 더 자기/일어나기 같은 작은 선택도 인생의 갈림길이 되고, 모든 갈림길을 모아 본다면 인생은 마치 프랙탈 모형을 한 아름드리 나무처럼 생겼을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바닐라 스카이에 '매분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는 대사가 나온다. 매분마다 인생의 선택이 있다면 그 갈림길의 종점은 무한히 많고, 나 역시 무한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를 한 '우주'라 부르는 것이다. 전자가 전자구름 내에서 확률의 차이일 뿐 여기에도 저기에도 동시에 위치할 수 있듯이 모든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 다중우주설이다.


 그 선택의 갈림길이 우리 인생뿐만 아니라 그 이전 태초부터 존재한다고 생각해보면 나라는 존재는 평범한 인간이 될 수도, 유명한 연예인이 될 수도, 브라질에 사는 오리가 될 수도, 울룰루의 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모든 선택을 at once에 할 수 있는 조부 투파키는 everything이 될 수 있고, everywhere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우주의 내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여기서 다중우주에 대한 성찰은 인생에 관한 성찰로 넘어간다.



2.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선택의 모든 결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면, 선택 그 자체와 그에 대한 고민은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어떤 내가 되고 어떤 인생을 살것이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고, 아이러니하게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무의미해질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현 우주의 나는 무한한 '나' 중 하나일 뿐이고 현재, 과거, 미래라는 시제 또한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1억 년 전의 돌과 현재의 나, 1억 년 후의 오리는 같은 무게를 가진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에 모든 것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린 투파키는 김영란 시인의 시처럼 ’허무한듸!’를 외치고 독을 차게 된 것이다.


독을 차고

               김영란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고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독은 차서 무얼 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그 어떤 존재도 공감해 줄 수도, 동행해 줄 수도 없는 영겁의 시간을 겪을 것에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마치 독방에 갇힌 것처럼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영화 속 다른 인물들 역시 이해하지 못하고 투파키를 복수의 화신으로 취급하지만, 사실 그녀는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거대한 존재가 되면 모든 것은 의미가 없다고,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엄마에게 늘 그래왔듯이 나 좀 이해해 달라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 엄마는 수많은 다중우주의 엄마 중 가장 잘못된 선택으로 가장 소시민으로 살고 있는 엄마가 선택된다.(그치만 미국에서 세탁소를 소유하고 있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기에 모든 갈림길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여기서부터 영화가 가진 작은 것들에 대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항상 작은 것이었다. 알파 레이먼드가 해결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현 에블린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반면, 위험에서 직접적으로 꺼내주는 사람은 항상 현 우주의 작은 레이먼드였다. 디어드리와의 전투 중 알파 레이먼드에 의해 도움을 받긴 하지만 그 후 도망가야하는 순간 결정적으로 책장을 치워줌으로써, 투파키와의 전투 중 위기의 순간에서 총격을 막아줌으로써, 현 디어드리에게 작은 쿠키를 건네줌으로써, 3부 디어드리에게 에블린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세무조사에서 풀려나게 하는 사람은 모두 작은 레이먼드였다.

돌 우주에서 눈알 단 귀여운 돌

 모든 해결의 상징이 되는 인형 눈알 역시 작고 사소하다. 빨래 주머니, 야구 방망이, 돌멩이와 같은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존재에 눈알을 붙이기만 해도 그 존재는 마치 귀여운 동물이라도 된 듯 생동감을 준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영화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거대하고 무한한 다중우주 속에서 우리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눈알 붙여주고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이름을 불러 꽃이 되어버린 작은 존재들-작은 남편과 딸이 유한하기에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소중기 때문이고 그래서 현 우주에서 현재의 작은 나로 사는 게 허무한 게 아니라 의미 있다고.


 다른 우주로 가는 버스 점프에는 있을 특별하면서 사소한 행동이 필요하다. 인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반하는 특별한 선택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시에 그 행동들은 립밤을 먹는 것과 같이 아주 사소하다. 그러니까 인생의 아주 큰 변화라도 누구나 다 아는 사소하지만 특별한 노력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작은 존재들이여 작은 힘을 내자!



3. 패러디 혹은 오마주

 

다중우주라는 설정과 제작자 루소 형제 덕에 마블 영화를 포함한 수많은 패러디가 등장한다. 닥.스.와 스파이더맨을 포함해 다중우주 영화에서 이미 많이 사용해 익숙해진 3차원의 인간과 2차원의 만화를 넘나드는 연출, 닥.스. 마지막 장면이 연상되는 이마의 제3의 눈, 엑스맨의 교수가 연상되는 휠체어 탄 대머리 아빠와 로보캅이 연상되는 일어난 아빠, 스타워즈가 연상되는 ‘내가 니 엄마다’, 홍콩 영화의 대표작일 수도 있는 화양연화가 연상되는 연예인 에블린의 이별 씬과 홍콩 액션이 연상되는 쿵푸 장면, 각종 SF영화에서 숨 쉬듯 오마주하는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털 유인원, 패러디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라따뚜이, 피카소 작품이 연상되는 투파키의 의상 등등. 영화와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 더 보이지 않았지만, 감독의 다른 작품에도 많은 패러디를 볼 수 있는 만큼, 더 많은 패러디와 오마주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 패러디 자체를 재밌게 표현하여 웃음을 주면서 동시에 독특한 창의력에 신선한 감탄을 자아낸다. 이 대혼돈의 패러디를 통해 다중우주의 복잡성을 굳이 말로 하지 않고 연출을 통해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4. 비유와 상징

블랙홀 내부 구조와 실제 블랙홀 촬영 사진 갈색 베이글을 닮았다 (출처, 동아일보와 bbc)                                   

 함축적이고 다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비유와 시 따위를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이 영화가 만족시켜 주었다. 영화에서 가장 주된 소재는 검은 베이글과 인형 눈알이다. 검은 베이글은 블랙홀 속 화이트홀과 사건의 지평선 외형을 비유한 것이고 그에 반대되는 소재로 색채 대비가 이루어진 인형 눈알로 잡은 것이 굉장히 참신하고 흥미로웠다. 검은 베이글은 거대함, 무한함, 앗아감, 허무함의 상징이라면 눈알은 앞서 잠시 말했듯이 사소함, 유한함, 생명력, 다정함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에블린이 투파키에 대항하여 제3의 눈을 뜨듯 눈알을 이마에 붙인 것이다. 최고의 무기인 다정함으로 허무함을 감싸주기 위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포스터가 이해가 가지만 처음 마주치면 난잡해 보이는 메인 포스터..

 이 외에도 영화에 원과 관련된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검은 베이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영수증의 동그라미 표시뿐만 아니라 첫 장면에서 3부의 행복한 우주를 미리 스포하는 듯한 딸과 사이좋은 가족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거울, 끊임 없이 돌아가는 드럼 세탁기, 온갖 토핑이 올라간 베이글같은 메인포스터까즤. 이 영화에서의 원은 무한함/윤회(다양한 삶)를 상징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돌 우주의 연출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딸을 구하려는 엄마 돌은 생명력의 눈알을 붙이고 딸에게 다가간다. 실제로 돌은 스스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우연한 돌연변이가 영겁의 세대를 걸쳐 진화를 이루는 것처럼 지진과 같은 우연한 현상이 돌을 이동시키게 하는 우주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영겁의 시간만큼 반복한 우주도 있을 것이다. 중력과 마찰력보다 엄마의 사랑에 의한 인력이 더 크다는 것을 표현하면서, 이 우연과 오랜 세월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엄마의 사랑이다라는 것을 영화에선 말보다 비유와 연출만으로 표현한 것이 큰 울림을 주었다. 마치 인터스텔라와 같이



5. 인터스텔라

Technology married with liberal arts, married with the humanities, that makes our hearts sing

 이 영화가 나에게 인터스텔라를 떠올리게 한 이유는 단지 딸바보와 블랙홀, 차원에 대한 표면적인 '소재' 때문만이 아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시각화 된 블랙홀과 차원을 보는 것 자체도 굉장히 흥미로웠지만, 사랑이라는 불변의 고전적 가치를 가장 최신의 진화된 형태의 과학적 소재를 통해 이야기한 것이 나를 빠져들게 하였다. 차원 간섭을 가능케 하는 건 오직 사랑이다(근데 이제 아들은 빼고 딸을 향한..)라는 주제를 수필도 소설도 시도 음악도 미술도 표현하기 어려운 오직 영화만의 시청각을 모두 활용한 고유한 연출로 표현한 것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비록 갤럭시를 쓰고 있지만 스티븐 잡스가 말한 것처럼,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 과학적 소재를 통해 인문학적 가치를 표현하는 것에 나는 열광했다.


 이 영화도 표면적으로 딸을 구하는 히어로 엄마의 가족 드라마로 볼 수 있지만, 그 내부에는 '결국 중요한 것은 거대한 히어로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작은 존재들이다'라는 성찰을 담고 있다. 굳이 말로 표현하기 보다는 SF소재는 거들뿐, 연출로 표현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같이 인생에 대해 성찰하게 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게 만드는 점이 내가 이 영화를 인생영화로 꼽게 만들었다.글에서 우리나라 시인의 유명한 작품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다른 나라의 작품이지만 의미가 정말 찰떡으로 들어맞을 만큼 인생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이 느껴지는 영화이다.  


 나는 많은 장르로 표현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장르 란에 히어로, 개그, 드라마, 가족, SF, 액션 등 많은 장르가 들어간다해도 인정한다. 이렇게 조화롭게 여러 장르를 짬뽕시켜 놓은 영화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마치 다중우주의 복잡함을 많은 장르, 난잡한 포스터, 다양한 패러디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최근 유희열과 이적을 포함한 가수들의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전적인 예술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데에 반해 작품의 수는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예전 작품과의 유사함을 벗어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한 예술계 종사자는 예술은 이제 누가 더 ‘편곡’을 잘하는가 차이다 라고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이 영화가 해냈다!

 

 이 작품은 많은 패러디 때문에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느끼게 하는 장면도 많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건 정말 작은 표현 소재 중 하나이고 종합적인 연출이 정말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이 영화만 가진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기에 로튼 토마토 점수 100점 주기에 전혀 아깝지 않은 참신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단 한번도 영화관에서 같은 영화를 2번 본적이 없는 나에게 확장판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2번 볼 예정인 영화이다.  


 근데 이제 포스터.. 포스터만... 포스터좀.... 바꿨으면....훨씬 더 많은 관객을 가졌을 것이다.. 이 영화가 멋진 포스터를 가져 모두가 행복한 우주도 어딘가에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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