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이 켜졌다 (236)
이상한 일이다. 요즘 날씨는 예보도 빗나가고 하여간 제멋대로다.
못 돼먹은 망아지마냥 어디로 뛸지 모르게 나대서, 오랜 세월 믿었던 겨울철 三寒四溫 같은 것도 없어졌고, 지글자글 볶아대는 여름 날씨는 밤낮없이 푹푹 찐다.
(입추, 말복이 지나서 바늘귀만큼 나아지긴 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던 어렸을 적엔, 낮에는 지져부치게 덥다가도 밤이 되면 견딜 만했었다. 생풀이나 쑥다발 등 매캐하게 모깃불 타는 마당에서 멍석이나 평상 위 어른들의 부채질 속에서 어린것들은 별바라기를 하며,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듣느라 밤 깊는 줄을 몰랐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면 저녁 무렵 길어다 항아리에 채워놓은 찬물 몇 바가지 끼얹고, 모기장 바른 방 안에 누우면 새벽녘엔 추워서 홑이불을 끌어다 덮어야 했는데...
올여름엔 전기세 폭탄보다 더 무서운 게 더위였다. 밤낮으로 에어컨을 끄지 못했다.
환경문제를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지만, 기온차를 견디는 외피의 참을성도, 기복이 심한 감정의 조절장치도 고장이 난 것 같았다.
기억력 순발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쓸데없이 늘어난 체중을 못 견뎌 관절은 아우성을 쳤다.
내 발가락의 뼈마디만 해도 그렇다.
내가 무슨 힘든 일은커녕 운동을 심하게 했다고 나를 단숨에 나자빠지게 한단 말인가?
6월부터 시작해 이제 겨우 맛 들기 시작한 새벽 맨발 걷기 좀 하겠다는데, 발가락 뼈가 반란을 일으킬 게 뭐냐고!
전주의 연꽃 시인님처럼 맨발로 모악산을 오르내리는 것도 아니고, 황톳길을 찾아 만 보, 이만 보를 채우느라 열성을 부리는 사람도 아니고, 겨우 매일 아침 우리 집 잔디마당을 돌며 솔방울을 주판 삼아 8 천보를 걷는데...!
그제 새벽 마당 둘레를 신나게 걷다가 잔디가 없는 흙바닥에서 살짝 발이 미끄러졌다. 넘어지지는 않고 미끈 기우뚱했으니까 별일도 아니었다.
50바퀴(8 천보)를 채우고 들어왔는데 발 딛기가 안 좋았다.
파스를 뿌리고 붙이고 하루가 지났다.
그다음 날 아침엔 걷는 것이 더 불편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부어오르고 아팠다.
광복절 공휴일이라 병원이 쉰다 해서 하루 더 견디고, 토요일 아침 일찍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 찍고 진료를 받았다.
크게 다치지도 않았는데, 발가락뼈가 충격으로 염증이 생기면서 붓고 아프다니 참으로 기가 차고 가소롭다. 못난 내 발가락이여!
할 수 없이 소복이 부어오르고 열을 내는 발등을 바라보며 혀를 찬다.
우선멈춤!
빨간 신호등이 켜졌으니까.
어쨌든 수고했다.
못난 발가락!!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마당 앞 방죽엔 아직 연꽃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