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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뽑은 한 편의 詩

풍경소리(251)

by 봄비전재복

*풍경소리 / 전재복


대웅전 처마 끝

물고기 한 마리

바람 한 올에도

살아나고 있었다


땡그랑 땡그랑

바람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


물을 거부한 발칙한 물고기가

바람의 법문으로

천 년을 사는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 혼자서 절집에 갔었다. 특히 승용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금산사는 맘만 먹으면 부담 없이 나서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발길이 뜸해졌다.

금산사는 주차장에 차를 두고 매표소에서부터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절까지 들어가는 숲길이 고즈넉하고 좋다.

고창선운사, 완주 송광사, 김제 금산사 세 곳의 사찰은 전북 불교문학회에서 해마다 가을이면 산사시화전을 하기도 하고, 가끔 템플 스테이도 하여 나 같은 색깔만 불자인 사람에게도 각별한 인연으로 품을 내준 곳이다.

조용한 절집 처마 끝에 매달려 살짝 밀치는 바람결에 '땡그랑~~' 맑은 소리로 응답하는 풍경소리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 한없는 고요를 잠깐 깨뜨려서 세속과 영계의 경계를 흔드는 소리! 나는 허공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는 그 소리의 여운을 느끼며 한없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던 기억이 있다.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는다. 풍경에 물고기 모양을 단 것은 수행자가 마음을 다잡도록 경각심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불교수행자가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깨달음을 향해 끊임 없이 정진해야 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어느 해 템플 스테이가 있던 어떤 가을날, 절집 툇마루에 앉아서 멍하니 풍경 끝에 매달린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고기는 분명 물속에 있어야 할 터인데, 어쩌다 허공에 매달려 바람의 매를 맞고 있는 것인가! 잠시 물고기가 되어 내 마음도 그 곁에 머물러 보았다. 허공에 매달려 바람이 미는 데로 흔들려보았다.


세상을 살아가며 어찌 모든 것이 마음대로만 살아지던가?

불편하고, 못마땅하고, 부당한 대우에 섭섭하기도 하고, 그래서 때로는 속에서 부글거리는 화를 참느라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그런데 어쩌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는 것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내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는데, 지금 만나서 웃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내일은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별 것도 아닌 일로 속상해하고 속을 끓이고 있었구나! 오늘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즐겁게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최근에 받은 어느 책 표지에 <행운이 절반이고, 불운 또한 절반>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맞는 말이다. 사는 일이란 다 거기서 거기지 얼마나 특별나겠는가? 남과 비교하는 순간부터 불행은 싹이 트는 것 같다. 상대에게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도 클 것이고 그 순간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이 훅 끼어드는 것 같다. 아예 기대하지 않는다면 사소한 배려나 이룸에도 고맙고 행복하다고 느껴질 텐데!


저렇게 수행의 상징물이 되어 허공에 매달린 물고기도 처음부터 순종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을 거부하고 뛰쳐나가 새로운 무엇이 되고 싶어서 안달하고, 속을 끓였을 것이다. 남과 비교하며 갖지 못한 것,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때문에 고뇌와 좌절을 되풀이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물고기는 절대로 새처럼 날지 못한다는 것을! 그 대신 주어진 자리에서 가장 맑은 소리로 바람의 법문을 전하는 풍경으로 살아가겠노라고!

땡그랑땡그랑~

별 것도 아닌 것에 끄달리던 못난 분별심을 풍경소리로 가만가만 밀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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