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유럽여행에 대해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사람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얼굴만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속이 다 타들어가는 듯했다.
그동안 남편과 끊임없이 부딪히고, 누구 하나도 져주지 않는 성격 탓에 한번 싸우면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격하게 싸워왔다. 나도 분노가 많고 무엇이든지 좋게 말하기보다는 이미 몇 번 참았다가 폭발시키기 때문에 남편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네거나 애교를 부리며 잘 타일러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내가 먼저 변화하려고 노력한 것이지 내가 가만히 있는데 뒤통수를 치거나 도박, 폭력 등 치명적인 사유가 있었다면 절대 이 사람과 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이번 유럽여행건은 왜 그런지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그 화가 아이들한테까지 옮겨가기까지 했다.
그때마다 또 머리를 세게 흔들며 정신 차리려 애썼고, 아이들에게 절대 부당하고 억울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유렵여행 이야기를 냉전의 끝자락에서 꺼내다.
작년 2022년 11월, 늘 그렇듯 다툰 후 냉전의 시간을 보낸 뒤 서로의 화가 가라앉았을 그 무렵, 그가 나와 살면서 처음으로 대화를 하자고 했다.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40년 지기 친구들 얘기가 나왔고 그들과 2023년에 유럽을 갈 것 같다고 한다. 가도 되냐며 그 자리에서 허락을 구하는데 정말 지금 생각해도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겨우 괜찮아진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기분 나쁘고 이해는 정말 잘 안 가지만 당신 삶에서 그게 정말 중요한 거고 꼭 해야 할 일이면 그러라고 했다. 나는 항상 무엇을 하던 가족이 우선인데 당신은 어떻게 국내여행도 아닌 살면서 한번 갈까 말까 하는 유럽여행을 친구들과 가느냐고 물었다.
솔직히 아이들 아직 어리고 유럽여행이면 2주 정도 갈 텐데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본인은 뭘 하든 순서는 상관없다는 대답 한다.
친구들 와이프는 쿨하고 멋있어서 허락을 한 것처럼 얘기하고 나는 속좁고 특이하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이 상당히 불쾌했다.
남편이 이런 식으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아이들 낳기 전 또 한 번의 중국여행이 있었다. 이때는 내가 첫 아이를 유산한 지 얼마 안 됐었는데 본인만 와이프가 허락 안 해줬다며 2주 동안 날 냉대했었다. 반대한 이유는 동남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와이프들의 반대로 중국으로 변경되면서 나도 허락을 해준 것이다. 남편을 이상한 쪽으로 의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친구들끼리 여행에 진심인 남자들도 많다. 바람피울 거면 국내에서도 기회는 많다. 어차피 쫓아다니며 말린다고 해서 벌 어질 일이 안 벌어지진 않을 테니 말이다.
이번 남편의 유럽여행건으로 지역카페에 조언을 구했다. 내가 싫고 괴롭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남편을 좋은 마음으로 보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중에 몇 명은 이혼감이고, 여자랑 가는지 알아보라는 답변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불난데 기름 붓지 않고, 위안 삼을 수 있는 댓글을 많이 적어주셨다. 나도 아이들 두고 여행가라는 댓글에는 현실적으로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여보! 당신이 나랑 미리 상의를 하고, 가족 여행을 계획해서 가자고 하면서 조심스럽게 꺼냈다면 이보다는 마음이 편했을까? 나는 정말 불편해. 우리랑 같이 있어줬으면 좋겠어.
당신이 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당신의 부재가 싫어.
나 왜 이렇게 두렵고 불안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