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해방일지 #16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나이를 먹고 나를 이루는 환경이 조금씩 변하다 보니, 나 스스로 ‘어른’이라는 단어와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끼는 순간들을 마주해오고 있었다.
6. 의미를 더하지 않은 한글로 이름을 지었다.
희진이와 결혼하기로 하고, 언제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우선 결혼식을 하려면 꽤 큰돈이 필요했다. 집이며, 혼수는 나라와 부모님들께서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결혼식은 우리 힘으로 치러야 했다. 사실, 나는 박봉이라 희진이의 힘(돈)이 (훨씬) 더 쓰였다. 돈을 모으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고, 우리는 결심한 다음 해 가을쯤이면 가능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날 좋을 10월 11월 정도의 날짜를 보다가, 11월 11일이 눈에 들어왔다. 날짜가 예뻤다. 그렇게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념일은 빼빼로데이가 되었다.
우리 부부가 계획하고, 결심하고, 다짐을 한 아이의 출산이 다가왔다. 3년간 산부인과 병동에서 근무한 희진이의 의견에 따라 제왕절개를 하기로 했다. 너무 힘든 자연분만 케이스를 봐온 경험의 산물이다. 7월의 말일 정도면 설탕이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태어날 예정이었다. 그전 1-2주 사이로 수술 날짜와 시간을 정해야 했다. “수술에서는 어떤 케이스가 발생할지 모르니까 다음 날 담당 선생님이 근무하고 있어야 해. 그래서 주말보다는 평일이 괜찮고, 시간은 오전에 적당하게 10시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21년 7월 21일이면 날짜가 더 예쁘긴 한데.. 7월 22일도 괜찮은 거 같아” 그렇게 우리 아이의 생일을 7월 22일로 결정했다.
“우리 설탕이 이름은 어떻게 지을까?” “내가 박 씨고, 너가 이 씨니까, 둘 다 들어가고, 앞에는 내가 있고, 뒤에는 너가 있도록 박__이가 좋을 것 같아” “박__이면, 이상하지 않아? 부르기도 이상하고” “그럼 박이__으로 하자” 둘의 합의점으로 1) 박이안 과 2) 박이서가 최종으로 남았다. 이미 성별을 알고 있지만, 굳이 이름에서 성별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그냥 더 예쁘다는 주관적인 의견이 더해져 결국 설탕이는 이안이가 되었다. 또, 그 이름의 의미로 누군가/무언가에 의해 좌우되지 않길 바라며 의미를 더하지 않은 한글로 출생신고를 했다.
지금껏 그래왔듯 순간순간의 선택에서 현명한 답을 내릴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스스로 선택한 답에 마땅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이안이 또한 그렇게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