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찌와 반지를 빼며 깨달은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
어느 날, 나는 팔목에 감고 있던 팔찌를 빼었다. 손가락을 쭉 펴면 한 뼘 정도 되는 길이에 2mm 굵기의, 그리 화려하지도 값비싸지도 않은 은팔찌였다. 무더운 여름날 나 나름대로 시원해 보이는 멋을 내려던 작은 장신구였다.
중지에 끼고 있던 얇은 은반지와 새끼손가락의 원둘레가 1센티도 안 되는 작은 반지도 함께 빼어 딸에게 주었다. 미련 없이, 정말 미련 없이.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몸은 마치 "아, 개운해! 가볍고 좋아!"라고 외치는 듯했다. 팔목과 손가락에서 그 작은 무게들이 사라지자 몸 전체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나의 신체가 마음과는 다르게, 그 작은 장식품들조차 버거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와 정반대였다.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것조차도 버거워지다니! 나는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주얼리로 나만의 소박하지만 화려한 멋을 내고 싶었는데.
마음과 몸이 따로 논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 건강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 이 기분, 이 마음이 무엇일까? 슬픔이라고 하기엔 너무 차분해지는 이 느낌은 뭘까?
아, 인정이구나.
받아들임이구나.
겉모습보다 속모습을 아름답게 하라는 자연의 법칙을 비로소 인지하게 된 것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억지로 치장하려 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나태주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나는 장식보다 안으로 스며드는 아름다움이 진짜라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생각한다. 팔찌와 반지 없는 내 모습이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아니,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진짜 멋이란 무엇을 걸치는 게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느냐에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덜어내는 지혜를 배워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몸이 "가벼워서 좋다"라고 말할 때, 마음도 함께 "편안해서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날들이 늘어간다.
이 이야기를 완성해 가며 나는 또 하나를 깨달았다. 팔찌와 반지를 빼는 그 순간의 복잡한 감정, 몸은 가벼워하는데 마음은 씁쓸해하는 그 미묘한 대비야말로 우리 인생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늘 이런 순간들을 살아간다.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 내려놓아야 할 때, 그 안에서 느끼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것이 슬픔도 기쁨도 아닌, 삶이라는 이름의 체험인 것을.
"마음과 몸이 따로 논다"는 표현 속에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젊었을 때는 몰랐던, 나이가 들어가면서 비로소 알게 되는 몸과 마음의 대화. 그것을 슬픔이 아닌 지혜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겉모습보다 속모습의 아름다움을 깨달아가는 것. 그것은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이해해 가는 성숙함인 것이다.
어느 날,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순간, 비로소 진짜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