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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 있는 아줌마 Nov 29. 2022

관계 맺기

사람과의 관계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인간관계를 맺는 고유한 방식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방식 또한 각자마다 특유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남편과의 관계, 아이들과의 관계, 친한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모습, 사람을 대하는 나의 모습 안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


나는 워킹맘이라서 그런지 엄마가 되고 부터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는 당연히 존재하지만 많이 담아두지는 않게 되었다.

일 끝나자마자 육아시작이라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면 없는 에너지도 만들어야 할 판이라

나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에 대해 길게 끌어안지는 않게 되었다.

물론 직장생활에 마주하거나 엮이게 되면 온갖 부정적 감정이 들끓긴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내가 가진 한정적인 에너지로 인해 적당히 커트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알았던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성격을 알기에 피하거나 안마주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새롭게 맺는 인간관계, 특히 아이친구 엄마와의 관계는 내 아이의 얼굴이 걸렸다보니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최근에 나는 새로운 인간관계와 더불어 나와 익숙한 관계인 남편과 아이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익숙하여 내 것 같다 가도 내 것 아닌 느낌적인 느낌으로 피할 수도 없고 안볼 수도 없는 그런 관계.

문제는 나와 남편을 혹은 나와 아이들을 동일시하는 마음이 문제이다.

내가 이런 마음을 느끼면 남편과 아이들도 이런 마음을 똑같이 느낄 것이다.

암만 우리는 가족이니까.

나만을 바라보고,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의 기대에 부응하여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길 바라며

나의 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분노한다.

남편과 아이들도 개성있는 인간인데 왜 다 나한테 맞춰야하고, 내 생각과 똑같다고 느끼는 걸까.


이러한 허망한 바람은 역설적이게도 나의 결핍에 대해 주목하게 만든다.

나의 채워지지 않은 심리적 허기를 남편과 아이들이 채워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것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러한 비현실적인 기대와 변화를 바라면서 말이다.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았을 경우, 바로 나는 피해자로 둔갑하여 오만 호들갑을 떤다.

내 사람들을 내 것으로 착각하여 나를 늘 이해해주고

내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라는 이 마음은

애착형성이 덜  것에서 비롯되었다.


애착은 아이가 엄마에게 받는 온전한 관심과 사랑이다.

늘 교육학에서 태어나서 3년을 중요시 여기는 데 이는 애착형성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아이를 낳으면 3년은 아이와 함께 있으며 애착형성을 잘 시켜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애착형성의 모든 것을 엄마에게 뒤집어 씌우면 고통스럽다.

여기에는 태어난 아가들의 기질 또한 합쳐져서 자아가 발달하게 된다.

가지고 태어난 기질과 애착의 합심 속에 나의 자아가 독립적으로 형성되어 성인이 된 후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애정을 갈구하는 것을 보니 그 당시 조금 어려움을 겪은 듯 싶다.

다른 이와 나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데 한 몸이 되길 바라는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나이에 모냥 빠지게 부모탓만 할 수는 없고,,, 나를 더 이해하고 넘어가야겠다.

아이를 직접 키우다 보니

'부모가 천사가 될 수는 없다.' 말을 처절히 깨닫게 된다.

맨날 '욱하지 말자' 해도 아이들이 힙을 합쳐 슈퍼파워 꼬라지를 내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이판사판이 된다.

아이의 감정을 온실 속 화초처럼 매번 티끌하나 없는 영혼으로 지켜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애착에 관한 어떠한 심리적 결손인 치명타를 받았을 때

그것을 회복시켜 줄 수 있게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물어봐주고, 다독여주라고 한다.


그럼 어른인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만의 세계를 잘 구축해야 한다.

존재의 가치로서 온전히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심리적 아픔을 갖고 있다 보면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파생되는 추잡한 혹은 아름답지 못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

성인이 되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스스로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내가 온전하게 독립된 존재로서 당당해야 남하고의 관계에서도 눈치볼 필요 없이,

상처받는 거 없이, 적절히 쳐 낼 것은 쳐 내고, 품어줄 것은 품어줄 수 있는 것이다.


머리와 손꾸락의 속도에 마음의 속도가 따라가고 있지 못한 나는 어떠한 실천을 해야 한다.

흠, 양희은 "그럴 수 있어"가 생각난다.

아이들이, 남편의 어떠한 행동이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때 필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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