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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a Oct 15. 2020

잠시 외모 파업 좀 할게요.

그루밍의 지겨움

매월 고정 지출 : 보험료, 통신비, 대출 이자, 그리고 속눈썹연장 50,000원, 네일아트 50,000원.


  속눈썹은 과하지 않은 선에서, 손톱은 프렌치 또는 그라데이션으로 깔끔하게.


  그윽해진 눈매로 샵에서 나올 땐 마치 새로 태어난 기분이지만 1주일 쯤 지나면 슬슬 자라나는게 보이고 2주가 지나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한다. 3주쯤 되면 전화로 예약을 잡고 정말 잘 버틴 달은 4주 만에 다시 샵에 간다.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얼굴인데 속눈썹이 한 두 가닥 떨어지기 시작하면 왜이렇게 못생긴건지. 그나마 한가닥도 붙이지 않은 '진짜 얼굴'보다는 몇 가닥이라도 남아있는게 나을텐데 말이다. 태초부터 내가 갖고 태어난게 아님을 알면서도 세수 할 때 마다 떨어진 인조속눈썹을 붙들고 이게 한가닥에 얼만데 싶어 가슴이 쓰리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 예약일이 다가오고 장인의 한땀한땀 정성스러운 속눈썹 시술이 끝나 거울을 본 순간 '다시 내 얼굴로 돌아왔군'이라는 착각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사장님 계좌에 5만원을 쏴드리고 집으로 온다. 그리고는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눈을 꿈뻑거린다. 나 뭐 바뀐거 없어? (있을리가 없다.)


   손톱이라고 다르겠는가. 직업상 해야하는 네일아트 임에도 일 때문에 상할까봐 괜히 조심스러워지는 1주일이 지나고 손톱 뿌리가 자라나오기 시작한다. 전부 몸으로 하는 업무라 손톱 끝이 벗겨지기 일쑤인데 또 가슴이 아프다. 그러다 보면 큐티클도 자라고, 정성껏 고른 디자인은 이미 질렸고, 손톱 끝이 들뜨기 시작하는데 견딜수가 없어서 직접 뜯어버리고, 표면이 같이 벗겨져서 상하고, 얇아지고, 더 지저분해지고 그래서 또 젤 네일을 할 수 밖에 없는 끝도 없는 악순환. 그나마 동남아 스케줄이라도 나오면 한국보다 싼 물가에 몇만원이라도 아껴보자고 졸린 눈을 비비며 현지 네일샵으로 향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게 된 것은 코로나19로 비행을 쉬게 되면서 부터이다. 바쁜 비행 스케줄에 속눈썹 연장과 네일아트는 준비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여주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지만 비행을 하지 않으면 집 밖에도 잘 나가지 않는 집순이라서 화장은 고사하고 세수도 잘... 아 아니다.

  어쨌든 우리집 강아지, 고양이 보여주겠다고 샵까지 가는 수고와 크나큰 지출을 할 필요는 없기에.


  코로나때문에 사람들이 집에만 있으니 숲이 무성해지고 야생동물 개체수가 늘어났다는 뉴스처럼, 몇 달간 방치 한 나의 진짜 속눈썹과 손톱은 길어지고 무성해지고 튼튼해졌다. 역시 자연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야 건강해지나보다.




  생각해보니 나는 학창시절에 다들 하는 눈썹 정리나 화장도 한번 안 해봤었다. 멋부리려 교복을 줄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고 3때는 몸무게가 늘면서 그나마 있던 교복 주름도 뜯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어서는 어설프게 멋 부린 짧은 치마에 뾰족구두를 신고 뒤뚱뒤뚱 걸었고, 직장인이 되고는 회사와 사회가 원하는 이미지에 맞추어 외모를 가꿀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접객서비스를 하는 일에서 '단정하고 깔끔한, 보기 좋은' 모습은 필수다. 나 역시도 그 조건이 충족 되지 않은 날엔 일 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잔머리가 나와있거나, 드라이가 잘 안되었거나, 손톱 끝이 벗겨지거나, 립스틱이 지워진 순간들엔 온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고 말았다. 손톱이 벗겨진 손으로 손님에게 물 한잔 내어 드리는 것 조차 부끄러워 손을 숨기고 싶었다. 단정한 모습은 남이 보기에도 좋지만 내가 봐도 좋으니까. '예쁘다'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정한' 모습은 되어야 스스로 당당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기관리의 측면에서 스스로를 단정하게 가꾸는 것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걸 내려 놓는 시간을 지나며 심리적으로 가벼워 지는 경험을 하는 중이다.


  몇 달 새 맨 얼굴과 맨 손톱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고, 심지어 어린 아이처럼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립스틱 대신 무색의 립밤이면 충분하다. 그 마저도 마스크를 쓰는게 일상이 되어 정말 기초 제품 외에는 얼굴에 아무것도 바를 필요가 없어졌다. 마스크가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는데 뭔가를 바르고 꾸미는게 오히려 화장품을 낭비 한다는 생각에 까지 미쳤다. 옷이나 화장품보다 화구를 쇼핑하고 그림을 그린다. 네일아트 디자인이 아닌 내가 그리고 싶은 장면에 대해 고민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불안하고 답답한 상황의 연속이지만, 한편으로는 일을 쉬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면서 몸과 마음에 쌓인 나쁜 것들을 털어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터널도 언젠가는 끝이 날것이다. 터널의 끝자락에서 다시 세상으로 나갈 때가 되면 마음까지도 단정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기꺼이 돌아가겠다. 아 물론 그때가 되어도 출근 시간을 단축해주는 속눈썹과 네일아트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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