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전문직, 그 빡셈에 대하여

280일 + 무한시간 : 보통의 내공으로는 곤란한 직업

by orosi

am. 5: 54

영락없다. 어째서 6:00시는 아차 싶고 5:54분은 안심인가.

엄마들에게 '6분'이라 함은 최소 열다섯 가지 이상의 일은 거뜬히 해치울 수 있는 시간이다.

눈 비비고, 기지개 켜고, 고개 이리저리... 슬로모션으로 몸을 일으키는 따위 액션은 생략하고 산지 오래다.


동백찬은 사랑입니다. ^ㅅ^


격일로 문자를 주고받는 남자, 남편보다 다정한 사장님~!




전날 반찬집에서 배달 온 플라스틱 용기의 비닐을 제거하는 데 4초.

냄비에 쏟아붓고 가스불을 켠다. 끓기를 기다리는 여유란 해당 없음.

아빠라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찬찬히 밟아가는 스텝? 바빠죽겠는데 그거 언제 다 밟고 앉았겠나.

(댄스스포츠 기본스텝도 안되어 사교생활을 일찌감치 내려놓은/ 난 그런 몸치니까 / 제버릇 개 못주지)


가스불을 켜는 동시에 몸을 돌려 쌀 두 컵, 오늘도 첫 물은 정수기로 씻어내자.

한 번 더 수돗물로 두 차례 세척하면 끝.(정수면 정수고 수도면 수도지, 어째서 첫물만 정수기물이어야 하는지

처음부터 자문할 생각은 관뒀다.)

첫 물은 마른 쌀에 스민다나? 하는 근거 없는 엄마들의 카더라 통신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른 지 오래다.

주황색 신호임에도 가속 페달에 힘을 실어 기어이 교차로를 통과하고야 마는 저급한 준법정신과 괴리감이 느껴지려는 참이다.


아무튼, 다짐.

뜬금없이 '이제부터라도 사소한 건 제끼고, 제발 좀 지킬 건 지키며 사는 새해를 보내기'로 다짐해 본다.

전자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담 없긴 하다. 근거 없는 깡통루틴이지만 식구들 모두 자고 있으니 내 멋대로 손 가는 대로 맘 가는 대로 살자. 수도로 먼저 씻고 정수로 나중에 씻을지언정 누가 뭐랄까.

단, 급해도 교통신호는 좀 지키고.





나머지 5분 56초 동안 시간을 쪼개 쓴다.

전기밥솥 눌러두기(찰진밥을 먹고 싶으면 찰진 밥 말고 일반밥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걸 시행착오 끝에 경험으로 익혔다. 왜 그런지 궁금해할 시간은 없다. 다음 할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전문용어로 고무빠킹이 늘어나 증기배출구 외에도 여기저기 틈새마다 김이 새어 나오는 현상 발생/ 메뉴대로 눌렀다가는 낭패 보는 연식의 밥솥이다.


일반밥 버튼을 눌렀을 때 나는 기계음만 확인 후 김치를 덜어둔다. 젓가락은 재빨리 식기대에 던져두고 지난밤 사경을 헤매느라 밤새 방치된 건조기빨래부터 구출해주면 clear.

어디 그뿐인가?

오늘이 머리를 감는 날이었던가 아닌가. 며칠 되지도 않은 기억이 도통 더듬어 지질 않으니 원.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대체로 살짝 안구를 위쪽으로 추켜올리면 잊었던 기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음. 그제 감았으니 오늘은? 이런! 금세 감는 날이 돌아왔구나.

올려둔 국이 끓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걸 눈으로 확인 후 안방 욕실로 재빨리 이동한다.

온수가 나올 때까지 샤워기를 15초 정도 방치해 두고 '브런치 소식', '유튜브 슬기로운 초등생활 채널'을 살포시 터치터치.

물부족 국가에 사는 국민으로서 잠시 휴대전화를 내려두고 머리부터 감는다.

머리 감는 거야 뭐, 30년째 자기 주도적 활동 경력이 있으니 3분이면 뒤집어쓴다. 수건으로 후다닥 틀어 올린 채 다시 부엌으로 뛰.... 지만






에라. 국이 넘쳤다.
나의 나가사끼짬뽕국은 다음 달 메뉴에서 만나요;;



종종 이러다 보면 6분을 넘기고 만다. 원인은 십중팔구 브런치의 중독성 탓이다. 구독자 보다 관심작가가 더 많아지면서부터 글 쓰는 일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일도 내겐 시간할애가 상당하다. 나 요즘 그 재미로 잘 사는 여자니까.



아무튼, 업무


국이 사망했으니 김자반 또는 꼬들 단무지, 콩자반 따위의 대체찬을 꺼내두고 다시 욕실로 가서 격렬하게 머리를 말린다. 오른손으로 드라이기를 들고 반대손으로 세게 흔들어 대면 더 잘 마르나?

왼손에 싣는 힘이 건조시간을 단축시키는 것도 아닐 텐데 늘 나도 모르게 격해진다. 쫓기는 마음이 몸을 경직시키는 건 왜일까?


아이들 공부는 마음이 합니다.

공부정서가 그래서 중요한 거거든요. <임작가의 자공마을 조언 중>



인용과 모방은 글쓰기 연습의 기본 문법이지 않나. 발행버튼이 주어진 그야말로 작가니까.

좋은 표현이라면 흉내내기 시도.


엄마의 아침은 조급함이 좌우합니다.

그래서 기상시간이 중요한 거거든요. <오로시의 전문직의 일상 중>


이 정도면 첫 모방치곤 적절했다고 자평.



그렇다. 5:54분이냐 6:00시냐는 그런 면에서 내게 여유로운 아침을 결정하는 요소다.



어느 직장인이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업무를 처리할까?

5:54분~7:54분 출근 직전까지의 아침 두 시간/

퇴근 후 ~ 9:00 소등하는 순간까지/

하루 두 차례 시간제 노동직인 셈이다. 극도로 전문적인 노동자랄까.

몸만 힘들면 10년도 더 하겠는데, 두 놈들이(때론 큰 놈까지 셋) 마음을 휘집어 놓는 통에 예상 근속연수가 자꾸만 줄어든다. 둘째가 이제 다섯 살이니까... 휴~(숨으로 땅 한번 꺼뜨리고 가자)

앞으로 10년 더 해도 중딩이네. 사람은 이렇게 불혹에서 지천명을 향해 달리는구나.

급여도 시원치 않은데 15년은 버텨야 해방이다.


범사에 감사하라지 않나.

그래. 전문가라면 최소 20년은 해야지. 마음을 다잡았건만

아니, 이건 또 뭔가?


2023 트렌드가 전부다>에 담긴 IT 대기업의 근속연수



이야~ 연봉, 복지혜택 다 내려두고 잘도 떠나는 요즘 젊은이들의 강단이 부러워진다. 꿈의 직장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만, 빡세기론 우리네도 만만치 않은데 감히 억울해도 될는지.


그나마 오래 머문다는 애플 직원들도 5년이면 제 살길 찾아 잘도 등 돌린다는데 엄마란 직종은 복지도 부실한 것이 더럽게 길게도 부려먹는다.


맛밤도 아닌데 너무 깠나?

그럼 이쯤에서 "아이를 키우며 얻는 행복을 감히 어찌 대기업 연봉에 비교합니까"라고 프로정신 한번 발휘하랴. 관두자.




엄마는 전문직 맞다. 미처 생각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벌써 경력이 9년이면 신규는 아니지 않나. 나도 그렇고, 동지들도 그렇고! 너무 찌그러져 있지 말고 다들 전문가 포스를 마구 풍기며 다니길 바란다. 우리의 능력이 어디까진지 모르고들 하는 소리에 휘둘려 상처받지 말기.


그러는 당신들은?

감기약으로 겨우 버티면서도 아이마저 아프면 밤새 첫째 열체크하다가도 꾸벅꾸벅 졸며 둘째 수유 양쪽 5분씩 채우고, 안아 트림까지 시켜보았는가. 보릿물 끓여 자는 아이 깨워 먹이고 시간텀 체크해 해열제까지 먹이다 보면 밤이란 금방 지나라고 있나 보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직장으로.

상사 눈치 보며 조퇴를 상신한다.

사유 : '자녀 고열로 인한 돌봄'이라고 썼다가 '인후통으로 인한 병원진료'


다시 고쳐 쓴다.

매번 거짓말하는 것도 아닌데 육아문제로 아쉬운 소리 하기가 왜 이렇게 싫은지.

그렇게 살아봤나. 빡셈을 루틴으로, 더욱이 한 두해 감내한다고 마무리가 되는 업무가 아니란 말이다.



둘째를 겨우 등원시키고 수업 전 연구실에 앉아, 이제 겨우 숨 돌리며 매일아침 처음 확인하는 메시지


8:00시면 어김없이 방장봇이 알린다. 희한하게 힘들었던 아침을 보상받는 듯한 카톡 알림

사람도 아닌 것이 나에게 위로를 보낸다. 운동을 하라고, 독서를 하라고, 칭찬과 글쓰기까지 넌 해낼 수 있다며... 더욱이 혼자가 아니라고 로봇이 건네는 격려에 우습게도 눈시울을 붉힌 게 여러 날이다.


전투력을 갖추고 일상의 빡셈을 견디는 전문가로 경력을 쌓으려면 아무래도 혼자는 어렵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소장님에게서 내가 얻은 인생 조언이 있다면...

시대가 변할수록 인공지능, RPA, 코딩, 메타버스

이런 낱개의 수단에 매몰되지 말고, '함께 사는 일'에 더더욱 공을 들여야 맞다.



오늘도 외롭지 않은 전문가 집단이여!
서로에게 온기를 전하자! 우리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오늘의 과제-

'전문가'의 정의는 설명할 것 없고, 특성을 확인해 보니 아래와 같다.


의무를 지우고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대목


첫째, 둘째는 갖추었는데... 누가 우리에게 엄마가 되도록 교육을 해주었는지, 우리를 대변해주고 이끌어줄 협회는 왜 안 만들어 주는 건지, 자격면허 정도는 주어져도 될 업무강도 맞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누릴 사회적 특권은? 바라지도 않는다.


남편돈으로 커피 마시는 맘충들 <82년생 김지영 몹쓸 대사 중>


누가 감히 해보지도 않은 일에 대해 함부로 평가할 수 있는지. 그 무례함에 대해 비소를 던져주련다.

터진입은 그냥 밥 먹는데 쓰시길!



출처: 내 전화기 갤러리, 픽사베이,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