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보단 교실

'남의 애 잘 키우려는 궁리'로 먹고사는 사람

by orosi

육아 끝 복직은 휴직교사에게 ‘두려움’이라더니,

어찌 된 일인지 난 거실보다 교실이 살만했다.

화장을 안 해도 피부에 윤이 났다.

음악을 틀지 않아도 걸음걸음이 경쾌하달까?


현 위치 아기 띠를 하고 볕을 쬐러 나간 놀이터라며 카톡이 왔다.


여기 나 빼고 다 아줌마야.’

남편의 메시지다.

짧은 글에 깊은 외로움이 묻어났다.

짠한 마음이 아주 잠시 스쳐 갔다.



‘당신은 한 놈 보고, 난 30명 돌보는데 뭐.’

진심을 담다 말고 고쳐 쓴다.


‘힘들지? 칼퇴할게.’


곰도 사람 좀 돼보겠다며 100일 각오하는 판에 이 남자는 한 달도 채 못 견디고 수시로 원망을 뿜어댔다.


“넌 내 애는 안 키우고 남의 애만 키우냐?”


퇴근이 30분이라도 늦어질라치면 어김없이 서슬 퍼렇다. 아무튼, 성찰모드


그날 밤 나는 모처럼 죄인 마냥 고개를 못 들었다.

뭐 이제와 항변하자면 내 애 안 키울 작정이라기보단 남의 애 키우며 가계를 이끌고 있는 게 맞지 싶다.


그 당시엔 주름이 덜했고, 모두 검은 머리였으나 지금의 나는 많이 변했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게 하나 있다면 무엇?


남의 애 잘 키울 깡 하나 제대로 갖췄다.

가끔 이런 것도 타고 나나 싶을 정도니까.


딸: 아~ 학교 가기 싫다

엄마: 가야지. 니가 선생님인데!


요 근래 월요일이면 동료들이 수시로 읊조리는 광고 장면이다.

모두들 격하게 공감하는 박카스 광고지만,

난 묘하게도 여전히 거실보단 교실이 편하다.


남의 새끼 잘 키우고 싶어 신난 덕에

벌어먹고 사나 보다.


어찌 키우나 요리조리 궁리하는 재미에 +

매달 17일이면 스쳐 지나갈지언정

하루 이틀은 두둑이 통장까지 채워주니

‘덕분’이라 할 수밖에.


돌아가고 싶다.

매일 아이들을 맞이하지만 가르치는 일에

그저 그렇게 길들여지진 않았던 때로.


그때의 나는 독거처녀라 칼같이 퇴근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결혼 후 4년간은 교실 안 아이들이 내 아이라면 어떨지 떠올리는 재미에 좋았다.


지금의 나는 저도 꼴에 부모라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분류하는 짓을 관둘 수 있어 참 좋다.


교사가 뭐 성직자는 아니니까.

내가 가진 ‘덕’이 공통의 책무는 아니다.

종종 내가 가지지 못한 걸 타인이 가지기도 했으니 남의 애 잘 키워보자는 마음 하나 야무지게 가졌기로서니 재수 없다고 핀잔주진 말라.


당신들도 제발 좀 요론 마음으로 내 새끼 키워달라며 징징대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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