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세상에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이름 없는 펭귄의 이야기

by 연서


코끼리가 되고 싶었던 코뿔소에게 현명한 코끼리들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코뿔소 노든은 밖으로 나와 세상을 마주했고, 이름 없는 어린 펭귄의 전부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헤어짐이 다가왔다. 펭귄은 노든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에게 자신이 코뿔소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노든이 펭귄에게 말했다.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펭귄은 홀로 바다로 나아갔고, 코뿔소 노든은 자신의 바다인 초록빛 초원에 남았다.





난생처음 물에 들어간 펭귄은 “또 한 번 알을 깨고 나온 것만 같았다.”


펭귄은 태어나면서 이미 알을 깨고 나왔지만, 바다가 아닌 땅에서 풀과 열매를 먹으며 자랐다. 처음으로 물에 들어간 순간, 펭귄은 진짜 '나'를 자각하며 다시 한번 알 껍질을 깨뜨렸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무너뜨려야 한다.> -『데미안』中


데미안을 읽고, 바로 다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우연일까? 언젠가부터 어떤 책을 읽어도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 같다.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찾는 과정이라는 것. 코끼리들은 코뿔소를 돌보고, 코뿔소는 다시 펭귄을 돌본다. 그들의 따뜻한 우정은 서로의 긴긴밤을 보듬어 주었고, 서로에게 하나의 세계가 되어 주면서도 결코 그곳에 상대를 가두지 않았다.


코뿔소는 코끼리이자 코뿔소였고, 펭귄은 코뿔소였으나 결국 펭귄이었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닐까.


- 22.12.0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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