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사곡 May 07. 2023

갑작스러운 속초행~~

휴식이란 이런 것...

5월 첫째 주 화, 수, 목요일 연차를 냈다.

올해 들어 첫 연차였다. 그 간 회사일도 마무리되지 않고, 회사일 이외에 참여하는 일들도 있어 연차 쓰기를 미뤄왔지만, 이제는 더 늦추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저질렀다.

5월 첫째 주를 통으로 쉬다 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왔다. 보통은 특별한 계획이 있거나 여행 계획이 있을 때 연차를 사용했던 나인데 이번에는 그냥 쉬고 싶었다.

무계획 연차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5월 1일 월요일은 "근로자의 날"이었고 정말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갔다. 사실 토, 일, 월 모두 다 집밖으로 안 나갔다. 집에서 미루고 미뤘던 이력서 업데이트를 했고, "롤토체스"라는 게임을 오랜만에 생각 없이 플레이했다.


하지만...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이 느낌... 오히려 더 피곤한 느낌.

아마 누군가는 공감할 것이다. 

분명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간만의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몸은 더 지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집에만 있다가는 분명 토요일쯤 지난 시간들을 후회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월요일 밤 자기 전에 문득 아침 일찍 떠나볼까?라는 충동적인 생각이 번쩍였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오전 7시에 눈이 떠졌고, 역시나 피곤했다. 

'하... 오늘도 이렇게 무지하게 개발이나 하면서 보내려나?' 하면서 이를 닦으러 화장실에 들어가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수염이 살짝 자라 있고, 웬 아저씨가 반쯤 눈이 감겨서 이를 닦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사우나를 가서 좀 리프레쉬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든 순간

속초의 "척산 온천"이 머릿속을 스쳤다.

'여기다. 동네 목욕탕이 아니라 여기 가서 목욕을 하는 거다, 맨날 동네 사우나 가기 지겨웠는데...'

세수만 하고 아침 7시 반 목욕용품, 혹시 모를 노트북, 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속초 "척산 온천"으로 떠났다.



평일 아침 속초까지는 2시간 1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간만의 장거리 운전이었고, 맨날 컴퓨터 모니터만 보다가 오랜만에 초록색의 산들과 자연들을 볼 수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사우나를 하러 속초를 간다는 생각 자체가 약 5분 만에 결정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사우나를 좋아하는 나로서 설렘이 더 컸다.


휴게소를 하나도 쉬지 않고, 속초 "척산 온천"에 도착을 하니 오전 9:40이었다. 평소 같으면 쉬는 날 소파에 앉아있을 시간이었지만 서울이 아닌 속초에 와있다는 게 신기했다.


생각보다 온천이 너무 좋았고 약 2시간 동안 온천에서 모든 탕을 다 들어가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 

너무너무 만족스러웠다. 속초의 대표 온천중 하나였고 규모도 동네 목욕탕이랑은 비교가 안됐다. 정말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에 '이게 진짜 휴식이고 휴가지!' 몸이 슬슬 충전됨을 느꼈다.


그리고 행복했다. 평일에 이런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상황자체에 감사했다. 평소 같으면 내가 연차 쓰고 쉬는 건데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평일에 휴식을 하면 서울이건, 어디를 가든 사람도 적고, 훨씬 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유명한 맛집을 가더라도 웨이팅 없이 즐길 수 있고, 핫플레이스를 가더라도 사람들에 치여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된다. 또 호텔이나 숙소들은 같은 방이지만 평일은 주말의 1/2 가격도 안 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일에는 죽어라 일하고, 주말에는 모두가 쉴 때 충분한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게 정말 아쉽고, 이 평일 일, 주말 휴식의 무한 반복 루틴을 끊어내기 위해 다들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게 아닐까?...


온천에서 12시쯤 나왔고, 온천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범교리 막국수"를 먹으러 갔다. 

2번 정도 가봤던 곳이었는데 온천 근처에 있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개운한 상태에서 막국수를 먹으니 훨씬 더 맛있었다.


"범교리 막국수"


그릇을 다 비우고 다음 일정으로 자주 가는 영량해변 앞에 있는 할리스 커피를 방문했다.

속초에는 유명한 대형 카페들이 많다. 할리스 커피는 그 카페들에 비하면 크진 않지만, 오히려 프랜차이즈 카페라 사람도 많이 없어 한적하게 바다를 보면서 즐길 수 있다.

카페에서 약 3시간 정도 노션 정리를 하고 고민에 빠졌다..




'이왕 온 김에 자고 갈까??...' 

'에이... 온천하러 온 건데 자고 가는 건 계획에 없었잖아...'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게 맞는 건지... 그냥 단순하게 하고 싶은데로 선택하면 되는 건지 항상 어렵다...

숙소 어플을 켜서 일단 당일 머물 숙소가 있는지 확인을 했고, 평일에 비수기다 보니 숙소는 널리고 널렸었다.

머리는 서울, 마음은 속초....


어느덧 정신 차려보니 숙소 결제는 끝나있고 차를 타고 숙소 쪽으로 가고 있는 나였다....

오늘 아침부터 모든 게 다 충동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오히려 좋아'


속초 고속터미널 근처에 있는 레지던스 호텔에 머물렀고 숙소 컨디션도 정말 괜찮았다.

'오히려 좋아'

숙소에서 빈둥거리다 저녁을 먹으로 가방을 메고 나갔다. 

저녁 메뉴는 "속초 항아리 물회" 속초에 유명한 물회집 중 하나였다. 


나는 해산물을 별로 안 좋아한다. 살아있는 생물 먹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회는 내가 돈 주고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충동 day이기 때문에 이왕 이렇게 된 거 고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맨날 속초 와서 먹는 만석 닭장정 말고 물회를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속초 항아리 물회"에서 대표메뉴인 "항아리 물회"를 주문하였고, 밥까지 주문해서 다 먹었다.

배가 고팠던 탓일까? 나이가 먹은 것일까? 예전에 못 먹던 물회가 아니었다. (하지만 멍게 도전은 실패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원래 계획은 물회를 다 먹지 못하고, 좀 돌아다니다 숙소 들어갈 때쯤 BHC에 들려서 뿌링클을 포장해서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미 뿌링클 1/3도 못 먹을게 뻔했다. 물회를 한 그릇 뚝딱했기 때문에..


밖으로 나와서 청초호 쪽으로 걸어갔다. 날씨 온도가 너무 좋았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날씨. 그리고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속초의 호텔들의 조명이 켜졌고, 횟집과 식당들의 나름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청초호에 비쳤다.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청초호 주변으로 산책할 수 있게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슬슬 걸었다. 

청초호 주변으로 음악이 틀어졌고 벤치에 잠깐 앉아서 청초호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문득 '속초에 살면 어떨끼?'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하지만 내가 쉬는 날 와서 여행으로 와서 이렇지 내가 속초에 사는데 내일 회사를 가야 된다면 같은 생각일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나는 여행자로서 해당 도시에 방문했기 때문에 여유가 있고,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도시에 살고, 똑같이 평일에 일을 하고 주말에 쉬는 일상을 가진다면 그렇게 느낄 수 있을까?!'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저녁의 청초호 주변은 평화 그 자체였다.

오늘 모든 게 충동적인 선택들로 흘러온 하루였지만, 솔직히 모든 게 다 만족스러웠다. 내가 선택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데... 정말 이상할 정도로 완벽했다.


계획적인 게 물론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확률이 높지만, 정말 인생에 중요한 선택이 아닌 경우들을 제외하고 사소한 것들은 큰 고민 없이 결정을 하여도 거기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속초에서 1박을 할 생각은 1%도 없었지만, 그 상황의 기분에 따라 결정했고 더 많은 것을 체험하고, 더 많은 것을 즐기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오늘이 좀 운이 좋아 유독 잘 맞아떨어지는 알찬 하루였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경우를 즐길 것 같다.


청초호를 산책하고 나서 속초 이마트에 들려서 밤에 먹을 간식을 사고, 걸어서 속초 해수욕장에 가서 밤바다를 보고 지금은 집에 들어와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이 일어났던 일을 오늘 쓰지 않으면 감정과 생각을 담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숙소에 와서 밤거리를 보면서 글을 쓴다.



오늘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잘 때 입을 옷을 안 가져왔다는 사실에 '그렇지.. 모든 게 완벽할 순 없지..' 

작가의 이전글 이번에도 에어팟을 사수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