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싸야겠는데 뭘 싸야할지 모르겠다면 이걸봐봐
영국 살이를 결정했다면 이제 넘어야 산이 짐 꾸리기. 짐을 싸다 보면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가져와야 할지 고민 된다. 영국이 물가가 비싼 곳이기도 하고 먹거리도 고민이거니와 아이들이 있다면 아이들 짐은 얼마나 챙겨야 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해외출장을 다닐 때면 가는 짐은 가볍게 오는 짐은 무겁게, 없으면 사면 된다 라는 마인드로 편하게 다녔다. 그러나 의식주를 모두 해결하며 딸린 식구들과 함께 생활하기 위한 짐을 싼다는 건 리스트 작성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사람사는 데는 다 똑같다. 굳이 뭔가를 막 사가지 않아도 대체용품을 충분히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살아본 사람이니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 짐을 꾸려야 하는 사람들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회사에서 지원을 받아) 컨테이너나 큐빅으로 오는 사람이라면 아래의 글은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가져올 수 있을 만큼 가져와 굳이 영국에서 사기위해 소비해야 하는 시간을 아껴 다른 일을 하면 된다.
필자가 영국으로 출국하던 시점은 한진해운사태가 터져 짐을 부쳐도 선편택배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비즈니스 클라스로 업그레이드하여 친정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아이셋과 출국하는 필자를 돕고자 함께 출국하여 한달정도 생활) 성인 세 명과 아이 세 명이 가져올 수 있는 최대치, 이민가방 14개에 핸드 캐리 가방 10개정도를 바리바리 싸 들고 들어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우선, 가져갈 필요 없는 물건들
이민가방에서 나와 지금도 쓰지 않고 있는 불 필요한 물품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문구류 및 필기품류. 영국 학교는 아이들의 학용품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된다. 노트 역시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모두 지급하기에 리딩 다이어리, 대여한 책 등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은 것을 넣을 수 있는 빈가방만 준비해주면 된다. 향기나는 펜, 형광펜, 싸인펜, 색연필 등 다양한 문구류 및 필기품류를 준비해 가져왔건만 여기 아이들은 S 학용품이 한참 유행인지라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스케치북도 질은 좋지 않지만 싼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굳이 애써 가져오고 싶다면 색종이정도면 충분하다.
의외로 한국에서 가져온 양념류도 그렇다. 참기름, 간장, 소금 등 영국이 비싸다고 하여 엄청 쟁여왔는데 로컬 슈퍼에서 Sesame oil(참기름)은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향도 훨씬 좋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새우젓, 고춧가루같은 매우 한국적인 음식은 로컬 슈퍼에는 팔지 않지만 아시안 마트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으며 마트 주인에게 이야기하면 주문해주기도 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챙겨야할 짐이 많다면 양념류는 쓰던 것만 가져와도 괜찮다.
한국에서 가져온 패딩들도 그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혹독한 추위를 겪으며 영국 겨울이 엄청 추우리라 믿고 가져온 오리털 패딩들은 3년째 옷장 밖으로 나와본 적이 없다. 영국의 겨울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추위이고 해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온도차가 심해 여러 옷을 겹쳐 입는 것이 효율적이다. 또한 날리는 비에 우산은 소용없는 경우가 많아 워터프루프 옷은 필수로 있어야한다.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패딩들도 고가의 워터프루프 패딩이다. 하지만 패딩을 입을 만큼 춥지 않을 뿐더러 실내에서 벗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벗기엔 춥고 입기엔 답답한 경우가 많으니 한국에서 입던 옷을 가져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부러 사오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온수매트 등 모터로 돌아가는 가전제품들의 경우 전압을 반드시 확인해 가져와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이민가방에서 나온 3개의 온수매트는 현재 모두 모터가 망가져 온수매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충동구매해서 들고 온 작은 전기매트만 유일하게 작동해 한국에서 추가로 택배를 받아 현재 전기매트만 사용하고 있다. 영국에도 전기매트는 있지만 한국만큼 예쁘고 옵션이 많지 않아 한국에서 구매했다. 하지만 보이로, electric blanket 등 현지에서 구매가능한 대체품들이 분명히 있으니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면 굳이 사서 가져올 필요는 없다.
그럼, 필요한 물건들!
반면 꼭 사와야 하는 짐들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양념들인데 마른 멸치, 마른 새우, 말린 오징어, 쥐포, 새우젓, 고추가루, 건나물, 국물용 다시팩, 오징어채 같은 전형적인 한국 음식들은 사오는게 좋다. 가능하면 순대, 당장 먹을 김치 등은 가져와도 좋다. 기내 수화물 혹은 위탁 수화물로 가져올 수 있는 음식들이니 부담 갖지 말고 쟁여와도 된다. 동네에 있는 중국 슈퍼에는 필자도 처음보는 ㅇㅁㅌ 자색고구마 칩, 요뽀끼 등의 한국음식들이 들어와 있다. 한류의 영향인지 어떤 슈퍼주인은 한국사람에게 필요한 양념 혹은 음식재료등이 있다면 주문해주겠다며 한국인 손님에게 자주 물어본다고 한다. 실제로 큰아이 안경점에 있는 옵티션(안경사)가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 내 고유의 김치 레시피 및 주로 하는 음식 종류를 물어본 적이 있다. 갈때마다 음식종류를 하나씩 알려주고 오는데 요새는 백종원, 강식당 등 나도 모르는 프로그램의 음식들을 물어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한류가 생기는 현상에 뿌듯하기도 하다.
아이가 초등학교 5~6학년 이상이라면 BTS, 블랙핑크 등의 연예인 관련 물품을 가져오는 것도 강추한다. 큰아이 학교 디스코파티에서 6학년 친구들이 BTS에 대해 묻는데 무식했던 필자는 SBS를 잘못 발음한 줄 알고 헛소리를 여러 번 했었다. 후에 막내 유치원 선생님, 둘째 친구들도 BTS에 대해 여럿 물었고 같이 태권도를 하는 대학생들도 BTS에 대해 묻길래 유튜브를 보고 여러 번 공부했다. 태권도장에서 알게 된, 한국 드라마로 독학해 한국어를 엄청 잘하고 좋아하는 불가리아 학생이 하나 있는데 부끄럽지만 이 학생이 추천해준 한국 노래와 가수리스트 덕분에 한류 흐름을 알게 되었다. BTS도 이 불가리아 친구에게 배워(?) 지금은 적어도 멤버들 이름과 노래 제목 몇개는 알고 이야기할 수 있다. 영국에서 학교에 막 들어가면 인종도 언어도 다른, 이미 친목이 깊어진 무리들에 아이들이 적응하긴 쉽지 않다. 하니 BTS 굿즈들을 몇 개 가지고 학교를 다니게 해봐라. 분명 알아보는 무리들이 있을 것이며 BTS 로 쉽게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 군것질류도 추천한다. 아이들 학교에서 하는 썸머페어에서 스틱형 마ㅇㅉ, 개별포장 마ㅇㅉ를 예쁘게 담아 판매했는데 순식간에 완판했다. 또한 친구들이 한국 과자가 먹고 싶어서 우리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하나만 구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영국 아이들 엄마들도 어디에서 과자를 샀는지 종종 묻는다. 의외지만 덜 달고 향기로운 한국산 과자들이 영국 아이들에겐 신선한 충격인 것 같다. 처음 학교 갔을 때 어색함을 풀 수 있을 정도의 한국과자들을 몇개 공수해가는 것도 함께 추천한다.
그 외에도 상비약-마데카솔, 후시딘, 리도맥스, 메디폼류 및 타이레놀(영국에서 팔지 않는다) 등 복용하던 약 및 밥솥, 일회용장갑, 눈썹칼, 젓가락 및 일회용 젓가락 등도 리스트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사람 사는 데 필요한 건 다 비슷하다. 오히려 현지에서 구매하는 것이 현지에 더 특화된 제품이어서 사용이 편리할 때가 있다. 영국에 살러 오는 거라면 영국에서 제품을 구경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야 한번이라도 더 영어를 하게 되고 영국 생활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경제적인 타격은 있을 수 있지만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영국에서 질러보자.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