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스란 Nov 29. 2022

나도 키즈카페에 가고 싶었다

할인권이 뭐라고

친구들과 키즈카페에서 약속을 잡았다.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는 쌀쌀한 주말이었다.

나보다 늦게 결혼한 두 친구의 아이들은 이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어린 남매와 자매를 키우는 친구들을 밖에서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 이번엔 키즈카페에서 보기로 한 것이다.

  챙길 아이가 없는 내가 먼저 키즈카페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사람들로 이미 꽉 차 있다. 얼마 만에 키즈카페에 온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친구들이 오기 전 가만히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파스텔톤의 따뜻한 색감은 포근한 느낌을 주었고 다양한 테마 공간은 나도 가서 놀고 싶을 만큼 재미있어 보였다. 아기자기한 포토존에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세워놓고 이름을 연신 부르며 예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조금 늦게 들어온 친구들은 인사만 겨우 하고는 앉아 보지도 못한 채 아이들이 이끄는 마 공간으로 사라졌다. 친구들이 아이들의 키에 맞춰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제야 9년 전 내 모습이 어슴푸레 떠오르더니 나를 그 시간으로 데려다주었다.




  오픈 할인이란 말에 혹해 직장동료와 약속을 잡은 마트 3층 키즈카페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엄마가 카운터에서 뭔가 묻고 있는 사이 신난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있고, 우리처럼 함께 온 경우 한 엄마가 보모처럼 아이들 서너 명을 동시에 보느라 정신이 없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자녀가 둘인 동료가 우리 아들까지 3명 등록해서 들어갔다. 나름 일찍 갔음에도 앉을자리가 거의 다 찼을 정도였다. 다른 키즈카페 경험이 있는 동료네 남매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바로 찾아갔고 동료도 막내인 딸 뒤를 따라갔다.

  새로운 공간이 어색해 일단 자리 잡은 테이블에 앉았다. 아들은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지 않고 한 자리에 서서 다른 아이들을 쳐다본다. 집에서 가져온 미니 자동차를 오른손에 쥐고 선 자세는 바뀌지 않았다. 기껏해야 두 발이 향한 곳만 바뀔 뿐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흘렀다. 아이 손을 잡아끌고 데려가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건 이미 문화센터에서 충분히 겪었기에 그냥 두었다.

  가만히 선 아들을 보고 있는 게 지겨워질 때쯤, 드디어 아들이 발을 떼어 한 공간을 향해 걸어다. 나도 조용히 따라가 들고 있던 자동차를 받아 들었다. 두 명의 여자아이들이 모여있는 공간이었다. 한쪽에는 아무도 갖고 놀지 않는 원목 조각으로 쌓는 장난감이 있었다. 그곳에 자리 잡은 아들은 꿇어앉은 자세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아이 둘이 잡기 놀이를 하는지 이 공간으로 뛰어 들어왔다. 잡히지 않으려는 아이는 소리 지르며 도망가고 잡으려는 아이는 전력 질주를 하며 추격한다. 점점 가까이 오자 아들은 놀던 것을 멈추고 쳐다본다. 그러다 결국 만들고 있던 장난감이 두 아이의 발에 치여 나뒹군다. 아이들이 흐트러진 장난감을 밟고 넘어질까 조마조마하며 보고 있으니 어느새 아들은 장난감을 두고 내 옆에 바짝 붙어 있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상황이 끝났다. 아들이 다시 갖고 놀 수 있도록 여기저기 흩어진 원목 장난감을 주섬주섬 모아주었다. 더 이상 놀고 싶지 않은지 같이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시간 놀겠다고 등록했지만 그게 논 게 다였다. 서 있는 곳만 바꿀 뿐 그냥 다른 아이들 노는 모습을 쳐다보기만 한다. 어디든 들어가서 같이 놀아보자고 눈높이를 맞춰 재미있는 척 놀아보지만 눈길도 주지 않다. 우리만 나가기도 뭐해서 테이블에 앉아 동료를 기다렸다. 아들은 가지고 온 자동차 한 대로 테이블 위와 의자 선을 따라 붕붕거리며 논다. 동료는 테이블로 한 번 와서 얼음이 거의 녹은 커피를 쭉쭉 마신 후 두 시간을 꽉 채울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두 시간이 다 돼서 땀에 젖은 아이들의 얼굴을 닦아주며 등장한 동료가 나가자고 했다. 키즈카페 밖으로 나온 동료는 오픈 행사로 할인을 하던 10회권을 샀다. 환불이나 양도가 안 되는 1인 1장으로 한정된 할인권이었다. 10회 금방 쓴다고 자기는 아이가 둘이라 다섯 번밖에 못 쓴다며 아쉬워했다. 이 정도면 싼 거라고 권하기에 고민을 하다 덩달아 샀다. 오늘은 카페 오픈한 지 얼마 안 돼서 정신이 없던 거고 좀 한가한 시간에 오면 잘 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어땠냐고 묻자 재미있었다고 대답해서 안심이 되었다.




  행사 기간이 모두 끝나고도 한두 주가 지났다. 남들이 정말 가지 않을 거 같은 평일 저녁 시간에 마트에 갔다. 장을 핑계로 아이와 키즈카페에 다시 가보기 위해서였다. 예상한 대로 아이들이 별로 없었고 그 꽉 찼던 공간이 한산하니 훨씬 넓어 보였다. 이대로라면 아들이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첫날 서서 구경만 하던 아들도 여기저기 공간을 기웃댄다. 그날 노는 방법을 봐 두긴 했는지 낯선 놀이기구가 있는 데로 들어가 만지며 논다. 나도 여느 엄마들처럼 사진도 가끔 찍으며 30분 정도 맘 편히 보냈다.

  그때 다른 아이가 한 공간에 들어왔다. 난 처음 보는 아이지만 부드럽게 인사하며 아들이 긴장하지 않도록 했다. 그 아이도 같은 공간에서 조용히 따로 놀기 시작했다. 점점 아들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자 아들은 놀던 걸 그대로 둔 채 나에게 왔다. 조심스레 더 놀기를 권했다. 고개를 젓고 내 손을 잡 다른 공간으로 데려갔다. 어디도 혼자 놀 공간은 없었다. 키즈카페를 전세 내지 않는 한 아들만을 위한 공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기다릴 일행이 없우리는 시간도 못 채우고 나왔다.     

  이후 아들은 키즈카페 입구 가까이만 가도 안 들어간다는 눈빛을 보냈다. 환불이나 양도를 할 수 없는 10회권을 산 나는 모른 척 데리고 들어갔다. 어김없이 30분도 안 되어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구경만 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데려가야 하나 고민을 하며 나왔을 때, 아들이 키즈카페 들어가기 전 머물렀던 공간으로 뛰어갔다. 블록 놀이공간의 완성된 전시물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가기 싫어서 시간을 버는 거라고만 생각했다가 혹시나 해서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거긴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고 아이에 어른 한 명씩 띄엄띄엄 앉아 조용한 분위기에서 블록을 완성하고 있었다.

 출처: 픽사 베이

  아들은 그 후로 키즈카페 옆 블록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 번 들어가면 두세 시간 보내기 일쑤였다. 혼자 만드는 걸 좋아했기에 편하게 기다리면 되겠지 싶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블록 찾아주고 블록 떼어주고 재잘대는 얘기 맞장구쳐주느라 쉴 틈 없었다. 무엇보다 만드는 공간에는 음식물 반입이 안 되어 시원한 커피조차 마실 수 는 게 피로도를 높였다.

  키즈카페에 가서 아이 노는 동안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여유를 부리고 싶었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나 보다. 그렇게 우린 키즈카페 10회권을 다 사용하지 못했다.

  키즈카페는 로망이자 이루지 못한 꿈같은 공간으로 남아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