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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씨한 Dec 06. 2022

울지 마, 내가 해결할게

우리가 다시 웃기까지 


남편은 항상 밝은 기운이 돈다. 행동은 활기차며 눈빛은 진실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하다. 호텔에서 근무하며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남편은 앳된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존댓말을 했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직원들은 이런 그를 해피바이러스라고 불렀다. 이런 남자와 결혼을 하면 평생 사랑 가득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친정 아빠는 처음 남편을 보고 나와 한동안 말도 섞지 않으셨다. 남편은 나보다 키가 작다. 한 덩치 하는 우리 아빠에겐 사윗감으로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결혼했다. 웨딩드레스에 플랫슈즈를 신은 게 영 억울했지만 웃어넘겼다. 결혼 전 나는 전형적인 도시녀였다. 테헤란로 한복판의 특 1급 호텔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자기 관리에도 철저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했고, 일을 마친뒤엔 영어학원을 다녔다. 굳이 걱정거리라면 말이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 '중국인 고객' 정도였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고 아이가 생기면서 걱정거리들은 차원이 달라졌다. 굉장히 저차원적인 걱정이 시작됐다. 아이가 이유식을 잘 먹지 않은 날이면 살이 빠질까 하루종일 우울했다. 똥을 하루 건너뛰는 날엔 배가 아플까 애를 태웠다. 나의 모든 신경은 두 아이들에게 99.9 퍼센트 집중되어 있었다. 




남편이 이상했다. 혼자 가면 될 병원을 같이 가자고 했다. 조금 귀찮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프리랜서로 다시 일을 시작한 나는 그날 하루만큼은 누워있고 싶었다. 


"갑자기 뇌 CT는 왜 찍은 거야?"

"예전에 나 회사 직원들이랑 월미도 놀러 갔다가 '디스코팡팡'에서 떨어졌었잖아. 기억나지?"

"그때 떨어졌던 게 아무래도 찝찝해서 뇌 CT를 한번 더 찍어보고 싶더라고."

"정말? 5년이나 지났는데?"


그랬다. 키도 작고 가벼운 남편은 디스코 팡팡이란 놀이기구에서 어처구니없게 떨어진 사고가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은 크게 다치지 않았고 정형외과에서 일주일간 입원 치료를 받은 뒤 퇴원을 했다. 당시에 뇌 CT도 찍었으나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5년 후는 달랐다. 의사는 CT상 음영이 보인다며 MRI로 다시 찍어보길 권유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도 난 저녁밥을 잘 먹지 않는 아들 녀석 때문에 속이 상했다. 남편의 말은 한귀로 흘러들어와 맞은편귀로 나가버렸다.



 

금요일이라서 그랬을까. 추운 겨울 날씨도 왠지 모르게 근사했다. 잠을 푹 자서인지 기분이 날라갈 것 같았다.남편의 MRI 검사가 끝나는 시간쯤에 맞춰 병원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검사를 끝내고 별다방 커피 한잔할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아내로서 결과는 같이 듣고 싶었다. 택시를 타면 제시간에 도착할 것 같긴 한데 지하철을 선택했다. 결혼을 하면서 내 몸뚱이에 인색해졌다. 조금만 걸으면 될 걸 뭐하러. 


“어디야?”

“응, 지금 지하철 타고 가고 있어.”

“그냥 택시 타지. 조금 있으면 나 들어오라고 할 것 같은데.”


그냥 택시를 탈 걸 그랬나 하고 속으로 후회가 됐다. 조금 민망했다. 전화를 끊고 십 분쯤 지나자 휴대전화에 메시지 한 줄이 보였다.




‘나 뇌종양이래’


0.1퍼센트의 신경이 순간적으로 무한으로 치닫는 순간. 내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기분. 지옥에 떨어지는 기분이 어때?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한마디의 말이 인간을 순간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음을 처절하게 깨닫는 찰나였다. 하나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난만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잘못 보신게 틀림없다. 이런 일이 어떻게 착한 내 남편에게 왔을까. 하지만 난 이내 지독하게 이성적으로 돌변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핸드폰 검색창에 또박또박 글자를 적었다. 


'신경외과 명의'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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