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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씨한 Aug 23. 2023

권고사직을 부탁드립니다.(3)

두 얼굴의 Y

더 이상 이 루머가 재미있지 않았다. 최초 유포자를 찾기 위해 집중보단 집착의 상태에 가까워지면서 일상은 파괴되기 시작했다. 두 아들 녀석이 뜻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세배 네 배로 화가 치밀러 올랐다. 퇴근 후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쯤 불현듯 M 선생님이 떠올랐다. 3년 정도 함께 일하다가 얼마 전 퇴사한 보육 선생님이다. 나와는 꽤 거리가 가까웠는데 언제부턴가 벽이 느껴졌었다. 그녀가 그만둔다는 소식에 마음을 다해 선물을 준비했었고 편지도 전달하며 작별을 했었다.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눈시울을 붉혔었다. 갑자기 그녀가 떠올랐고 그녀라면 뭔가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선생님, 잘 지냈어요?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제가 원장님이랑 키스한 사진을 원어민이 찍었고 그걸 돌려봤다던데 혹시 선생님은 이런 소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어요?"

"...... "

"선생님, 제발 알고 있으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줘요."

"네, 원감님. 작년에 Y팀장님에게 들었어요. 남자 원어민 선생님이 1층 주차장에서 사진을 찍었고 그걸 Y팀장님이 보았다고 저희에게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리고 학원 근처 공원에서 원장님이랑 원감님이 손깍지를 끼고 산책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재미있어졌다. 남편이 스타벅스에서 산 뒤 잘 쓰지 않는 까만 텀블러를 종종 들고 다녔다. 원장님 책상에 있는 텀블러와 같은 디자인과 컬러였지만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텀블러는 '커플템'이 되어 있었다. Y팀장은 교무실에 드나들지 않는 보육 선생님들에게 궁금하면 살짝 교무실에 들어와 보고 나가란 이야기까지 했다고 했다. 이 루머는 나를 정말 심각하게 만들었다가 배를 잡고 웃게 했다. 어느 바보가 불륜을 저지르면서 번듯이 회사 근처 직장의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회사주차장에서 함께 차에 탄단 말인가. 심지어 커플템을 장착하고 다니면서?


우선 그 남자원어민에게 확인을 해야 했다. 있을 수 없는 사진을 그가 찍었다고 하니 물어보는 수밖에. 그는 내게 이렇게 답변했다.


"No, I didn't and I honestly have no idea where she got this idea from. She's asked me about a picture twice and each time I told her I have no idea what she means."

"I'm sorry she's doing that to you guys and I'm very upset she's involving me in it"


그는 H가 자신을 이 루머에 포함시켜 기분이 나쁘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널 이 루머의 장본인으로 만든 건 너의 '절친' Y 임을 난 말할 수 없었다. Y는 다른 한국인 교사들과는 달리 원어민들과 꽤 잘 어울렸다. 보통은 같은 공간 안에서 일을 하더라도 한국인은 한국인들끼리 원어민은 원어민들끼리 어울리는 일이 고착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Y는 무슨 일인지 입사하자마자 원어민들과 금세 친해졌다.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대단히 자극적인 안주가 필요했을까. 그 안주를 받아먹고 씹고 술을 들이키는 시간동안 난 진심으로 그들을 대했다. 그 동안 내가 너무 좋은 사람들만 만나왔던 것일까.


Y

내가 보여줄께

이구역의 미친 X가 니가 아니고 나란걸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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