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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구 Jun 13. 2023

술이 좋아, 사람이 좋아

3시부터 자정까지 술 마셔봤습니까?

골프를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친교 골프는 또 다른 설렘이 있다. 바로 골프를 마치고 갖는 뒤풀이 시간 때문이다. 도시음식과는 다른 독특한 음식과 이에 곁들인 반주, 그리고 여유 있게 나누는 대화들이 좋다.


골퍼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프레스티지 골프 코스인 해슬리나인브리지를 갔다.

클럽하우스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식당 입구에 ‘Today’s Chef’라 쓰인 메뉴 안내판이 있다. 나와 같은 항렬이라 형이라 불러라 하며 농담도 하곤 했던 웨이터가 세프의 특선요리를 드셔보시라 권한다. 그런데 가격이 일인당 15만 원이다. 흠칫하며 홀인원 하면 먹겠다고 했더니 버디 하셔도 드시라고 권한다. 버디 펏은 번번이 놓쳤다. 오랜만에 접한 그린스피드 3미터 이상의 해슬리 그린에 적응이 안 돼 펏이 짧거나 길었다.


점심은 밖에서 먹기로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그저께 오키나와를 다녀왔다며 얼큰한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한다. 검색을 해서 판교 근처에 있는 ‘임진강매운탕’으로 갔다.


판교에 도착하니 오후 3시다. 시간이 애매하긴 했지만 식당에 손님이 없어 제대로 온 건지 주춤했다. 출출하기도 하고 매운탕은 어찌해도 맛의 편차가 크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자리를 잡았다. 빠가사리 매운탕에 참게와 민물새우를 추가해서 주문했다. 고양 덕은동에 있는 물레방아메기매운탕이랑 비주얼이 비슷하다, 메기매운탕보다 국물이 깔끔하다 이런 얘기를 우리끼리 하고 있는데 그 소리를 들었는지 주인아주머니가 슬그머니 우리 테이블 옆에 앉으시더니 덕은동에 있는 메기매운탕집주인과의 인연을 말씀하신다. 세상이 좁다.


이 그룹과의 미팅은 언제나 유쾌하다.

목소리 크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A 님, 비주얼은 연출가라기보다 뮤지션에 가까운 쿨남 B 님, 지난번 1등을 해서 우리 셋을 무릎 꿇게 만든 C 님.


시작은 항상 소맥이다. 운동 후 밑반찬으로 나온 깍두기와 콩나물 무침과 함께 연거푸 소맥 3잔을 들이켜고 나니 취기가 느껴진다. 이런 살짝의 타격감이 좋다. 소주로 주종을 바꿨다.


야채부터 건져 먹으라고 해서 미나리 한 젓가락에 건배, 수제비 한 점씩 먹고는 건배, 대화 끝에 건배, 한바탕 웃다가 또 건배, 어느새 매운탕 한 냄비를 거의 다 비웠다. 남은 국물에 밥과 국수를 넣어 끓인 어죽국수에 다시 건배, 소주 안주에는 탄수화물이 좋다. 시작할 때는 가볍게 반주만 하자고 했는데 어느새 빈 병이 쌓여간다.


5시쯤에 B 님이 선약이 있어 먼저 자리를 떴다. C 님이 그 사이 술이 늘었는지 지금쯤이면 먼저 차에서 자고 있어야 되는데 잘 버티신다. B 님이 먼저 떠나고 우린 2차에서 맥주 한 잔을 더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주인께 근처에 갈만한 집이 있냐고 물으니 마땅하지가 않다. 이럴 때는 방법이 있다. 같은 집의 깨끗한 다른 테이블로 옮겨 2차를 하는 것이다. 안주도 매운탕과는 다른 느낌의 돈가스와 새우튀김을 시키고, 주인이 그렇게는 안 해봤다고 난처해하는데도 매운탕에 넣는 민물새우를 튀겨달라고 부탁하고, 맥주를 시켰다.


2차를 시작하며 대리기사를 불렀다. A 님이 대리를 불러줬다. 7시까지 대리기사를 오라고 하길래 지금부터 두 시간을 더 마시면 이 집에서 기어나가야 한다고 조금 당기자고 했더니 6시 30분까지 오라고 한다. 한 시간 반,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시작한 자리에 어느새 맥주병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시간은 이미 6시 반이 넘어 대리기사분들께는 조금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마지막 건배를 했다. 7시가 맞았다며, A 님이 핀잔을 준다. 술 마실 때 시간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집에 오는 중에 정신없이 한 잠을 자고 나니 술이 얼추 깼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일행들에게 인사를 보냈다.


너무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래저래 복잡하고 어수선한 시간이지만, 돌아보면 우린 항상 그런 시간을 지나온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서로 위하고 때로 그리워하는 것 아닐까요.

다음에 또 반갑게 만나요.


물 마시러 지나던 아들이 "맥주 한 캔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맥주 대신 따 놓은 와인이 있는지 보라고 했더니 마침 한 잔이 남았다며 따라 준다. 와인을 홀짝거리며 며칠 전에 써 놓고 브런치에 등록할지 말지 머뭇거리던 글을 마지막으로 읽어보고 발행 버튼을 눌렀다. 발행을 하고 나면 꼭 이상한 문장이 보인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하루를 시작해 긴 하루를 보냈더니 몸이 노곤하다. 암체어 안락의자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보통은 5분도 안 돼서 잠이 들었을 텐데 그 사이 후배에게 카톡이 왔다. 


“대표님~” 

늦은 시간에 이렇게 부르는 걸로 봐서는 분명 방배동이나 서래마을 어딘가에서 술을 한잔하고 있을 것 같다.


“저 Y랑 라이브러리 왔어요. 퇴근길 한잔 하러 오시겠습니까?”

잠시 머뭇거렸지만 선배를 챙기는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바로 집 근처이기도 해서 거절을 못 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어서인지 아내는 별 제재가 없다.


라이브러리라는 골목길 모퉁이에 있는 작은 바에는 ‘퇴근길’이라는 맥주가 있다. 퇴근길 한 잔, 새로 들어왔다는 기린맥주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흥이 올랐다. 11시가 넘어가니 우리 세명만 있다. 주인님께 음악을 신청하고 따라 부르기도 하며 웃고 떠들다 보니 자정이 넘었다.


자리를 파하고 가게를 나오니 비가 제법 내린다. 비를 맞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집이 코 앞이긴 했지만 기사 딸린 큰 차를 타고 다니는 후배가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오후 3시부터 자정까지 긴 시간 꽤 많은 술을 마셨는데 유쾌하게 얘기하고 많이 웃어서인지 다음날은 견딜만했다. 아니다. 힘들었다.


예전부터 '술이 좋아서라기보다 사람이 좋아서' 술자리를 즐긴다는 핑계를 대곤 했는데... 난 술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평생 마실 수 있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데,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술을 오래도록 함께 하려면 술은 조금 줄여야 될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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