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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구 Jul 10. 2023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Mements and Life

 27년의 직장 생활을 했다. 남은 사람들에게는 담배 한 모금에 잊힐 만큼 가벼운 것일 수도 있고,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루고 환갑이 지나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들의 시선으로 보면 쑥스럽고 부끄러운 시간이다. 고민하고 몰입했던 순간, 희망할 것이 없어 희망했던 순간, 지루함을 인내한 시간, 대수로울 게 없다며 스스로 위안했던 시간, 짧았지만 성취와 보람된 순간, 그런 시간들이 뒤섞인 매콤 짭조름한 라면스프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회색빛으로 바래지겠지만. 책장 한 칸을 가득 메운 그때의 기록들은 어느 페이지를 열어봐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은 건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난 27년 동안 같은 사무실, 같은 책상, 같은 일을 2년 이상 해 본 적이 없다. 매번 만나는 사람이 바뀌었다. 나의 전두엽은 늘 어떤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첫 직장은 기업이나 정부기관 등의 SI(System Integration)를 하는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했기 때문에 늘 프로젝트팀에 따라 모였다 흩어졌다 했고, 가는 곳에서는 항상 ‘을’이었고 ‘이방인’이었다. 두 번째 선택한 회사에서는 행운인지 불행인지 자주 팀이 바뀌었다. 나는 타스크포스팀이나 신생팀의 팀장을 많이 맡았다. 임원이 되고서도 그룹 내 몇 곳의 회사를 거치며 여러 보직을 맡았다.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IT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해 마케팅과 전략, 관리 부서 등을 거쳐 좌뇌형 인간이 해야 할 것 같은 CFO, 우뇌형 인간이 연상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를 지냈으니 나의 시간들이 간단치는 않았다.


 나는 항상 경계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온전히 어디에 속하지 못했다.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희망했지만, 그 경계에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실존주의적 삶보다는 어떤 흐름에 나를 맡겨 두었다. 내가 속한 곳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너무 복잡하게 재지 않고 내가 맞닥뜨린 현재에 온몸을 풍덩 던지는 자세가 어쩌면 실존주의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흐름에 나를 맡긴다는 건 때로 의심스럽고 두려웠지만 그럴 수 있었던 건 성실하게 보낸 시간들이 나를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차곡차곡 쌓은 그 시간들이 또 다른 선물 같은 시간을 선사하기도 했다.


 대체로 남들이 나를 바라볼 때 성실한 사람으로 본다. 천성이 그리 부지런하지는 않은 듯한데 스무 살 무렵의 독특한 경험 이후 성실한 척 성실하게 살아왔다. 항상 내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고, 타인에게 진실하게 대하고자 했다.



 

 1988년, 나는 재수생이었다. 그 해는 국가적으로 큰 도약의 발판이 된 서울올림픽으로 나라가 들썩이던 때였다. 올림픽 후원 기업들이 출시한 제품은 ‘올림픽 공식’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며 올림픽 분위기를 띄우고 있어, 스스로를 ‘88년 올림픽 공식 재수생’으로 칭했다. 올림픽의 정신인 평화, 우정, 이해를 실천하며 노량진 뒷골목과 사육신묘, 한강 등지에서 많이 놀았다. 그해 가을 올림픽 축제는 끝이 나고, 겨울이 시작될 무렵 있었던 전기 대학입시에서 또 실패했다.


 처음 대학에 떨어졌을 때만 해도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두 번째 낙방을 하고 나니 삶의 초반부터 삐거덕거리고 있다는 불안함에 ‘과민성대장염’ 증상까지 생겨 물만 마셔도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후기로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이 많지 않았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고 말은 제주로 가야 한다는 속담에 서울에 소재한 대학에 원서를 내고 한 달여 남은 기간 동안 시골집에서 칩거했다. 안정적인 하향지원을 한 터라 그 기간 동안 내가 한 일은 수학책을 읽는 게 거의 전부였다. 재수에서의 실패는 88년 매운맛 수학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자가진단도 있었지만, 무엇이든 몰입하고 싶어서기도 했다. 수학 교과서에 있는 연습문제를 풀어보며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읽고 나니 뭔가 문리가 살짝 열리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 겨울 나는 본체와 마당을 가로질러 떨어져 있는 대문 옆 문간방에 있었다. 밤이 되면 뜨락에 앉아 밤하늘을 보며 담배를 폈다. 그 뜨락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북두칠성과 오리온이 선명하게 보였다. 특히 오리온 별자리는 조금만 고개를 들면 보이는 곳에 있어 오리온 별자리를 기준으로 주위의 별들을 보기도 했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늘에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


 그러다 어느 날 밤, 늘 같은 곳에 있는 줄 알았던 그 별들이 어느 날은 조금 더 오른쪽에 어느 날은 조금 더 왼쪽에 있음을 발견했다.

아, 별이 움직이고 있었구나.

 

 별은 하루도 쉬지 않고, 아니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고 있었구나. 별이 움직인다는 건, 지구과학을 배운 이과생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 순간 섬광처럼 나의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의 삶도 저래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지나 온 시간도 저렇게 부지런하게 제 갈길을 왔을 텐데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채웠을까 생각하니, 나의 실패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불고 할 일이 아니었다. 별을 닮아야겠다, 별을 닮아 매 순간 성실하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로부터 삼십 년이 지나 코로나가 창궐할 때 습관처럼 하던 아침 운동을 못 가고, 대신 집 앞의 서리풀 공원을 아침마다 걸었다. 공원을 걸으며 유튜브에서 <도울의 중용> 강의를 접하고, 별을 닮고 싶었던 스무 살 청년의 생각이 이미 2500년 전 공자의 제자였던 자사가 지은 최고의 지혜서 중용의 20장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대략의 내용은 이러하다.


 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 자연의 도는 성실함이고, 성실함은 하늘의 도다.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다. 선(Goodness)을 택해서 붙들고 나아가야 한다. 성(誠) 해지려고 하는 사람은 선을 알고 붙들기 위해 박학(널리 배움), 신문(자세히 물음), 신사(신중하게 생각), 명변(명확하게 구별하고 분별), 독행(독실하게 실천) 해야 한다. 지극히 성실함은 쉼이 없다. 식물의 광합성도 그러하다. 빛이라는 에너지를 받아 유기물로 변환시키는 광합성을 쉼 없이 지속한다. 하늘의 성실함도 그렇다. 50억 년 동안 운행을 쉼 없이 해 낮과 밤을 만들었다.


 자연의 모습처럼 매일매일 성실하게 나아가는 것, 천국도 지옥도 없는 자연 그대로 어떤 개념과 인식에 속박되지 않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어떤 순간에도 나의 역할을 묵묵히 하며 보내는 시간, 그 시간은 흘러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끔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성실하게 나의 책임에 몰입했는가’라는 질문을 하곤 했고 주저 없이 예라고 할 수 없음에 부끄러웠다. 별은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 텐데.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나는 그 시간 위에 무엇을 쌓아가고 있을까?




 AI에게 ‘시간은 쌓이는 것’이라는 주제의 시를 써보라고 했더니 아래의 시를 썼다.


어떤 날은 행복하고, 어떤 날은 슬프다.

어떤 날은 지루하고, 어떤 날은 즐겁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쌓여간다.

쌓인 시간은, 우리의 삶을 만든다.

행복한 시간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슬픈 시간은, 우리의 삶을 성숙하게 한다.

지루한 시간은, 우리의 삶을 여유롭게 한다.

즐거운 시간은, 우리의 삶을 활기차게 한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쌓여간다.

쌓인 시간은, 우리의 삶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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