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8월, 9월, 10월은 비가 자주 오는 우기이다.
그래도 퍼붓듯이 쏟아지는 비는 대부분 밤에만 오고 낮에는 밤보다는 덜 오거나 해가 쨍쨍한 시간이 많았던 태국이었다.
강이 범람하면서 강 근처는 침수가 되는 일이 생겼다가 물이 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터질 일이 터지고 말았다.
금요일 아침 집앞 금요일.
며칠을 밤동안 내리던 비가 금요일부터는 오지 않았지만, 그동안 내린 비의 양이 많아서 근처 강의 댐이 빗물을 모아둘 여력을 잃었고 방류를 하기 시작했다.
비는 오지 않는데 방류되는 물로 인해 서서히 도로가 침수되고 마을이 침수되기 시작했다.
방류되는 물의 양보다 배수되는 양이 턱없이 모자란 지 도시는 점점 물에 잠기게 되었고, 각 가정에서는 집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는 듯 대비를 하기에 분주했다.
그래도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길과 단지안은 침수도 없이 괜찮아서 안심을 했다.
침수된 지역도 비가 오지 않으니 곧 복구가 되고 좋아질거라고 예상하며 잠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 9시경
남편은 회사에 나는 아르바이트, 아이는 한글학교에 가려고 나섰다.
집 앞에 나와 30m도 채 가지 못했는데 도로가 차바퀴 반쯤 잠길 정도의 침수가 되어 있어 당황스러웠다,
돌아갈수도 없고 직진하자니 무섭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였다.
살살 조심히 운전해서 빠져나오고 좀 달리다가 또 침수되고를 반복하고 목적지까지 15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이상 걸려 도착했는데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도로는 아수라장이였다.
침수되지 않은 도로로 우회하는 차량이 몰려들며 시속 10km로 겨우 갈수 있고, 간간히 역주행차량도 있었다
비올때도 침수가 없던 길이 침수가 되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쇼핑센터도 다른 쇼핑센터도 패키지손님들만 오는 곳인데 도로사정이 난리이니 예정보다 모두 늦어지고 난리였다.
일이 끝나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먼저 집에 도착한 남편이 집으로 오는 도로상황을 알려주었고 조심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막상 달리다 보니 아침과 달리 더 심각했다.
통제된 도로도 많아 우회해서 가다 보니 집 가까이 갈수록 침수가 심각했다.
차의 헤드라이트까지 물이 차는데 겨우 뚫고 단지 입구로 진입했다.
단지입구 부분이 도로보다 낮다는 것도 입구만 통과하면 약간 높아지는 지대였던 것도 새롭게 알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차 앞부분에서 '퍽'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흙탕물속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 일단 그 무언가를 끌고 단지 입구로 들어갔더니 경비분들과 주민분들이 차를 세우라고 하고 빼내주었다.
다른 차의 앞범퍼였다. 누군가의 차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 내차에 끼인 것이었다.
휴~.
"코쿤 카(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단지 안으로 들어갔더니 집집마다 모든 차들이 밖으로 나와있고 주민들은 마을 안으로 흐르는 수로 쪽에 몰려있거나 자기 집 대문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도 모래주머니를 대문 앞에 쌓고 있었다.
모래를 받기 위해 모인 주민들, 수위가 높아지는 집 골목, 집앞 모래주머니들 처음 겪는 상황이라 당황스럽고 침착해지기 어려웠다.
뉴스로 정보를 알 수도 없고, 대사관에서 문자 공지도 없고, 교민들 단톡방에도 침수의 대처방법은 없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비는 오지 않고 햇볕은 쨍쨍한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잠겨가는 골목길이 그 잠겨가는 속도만큼 불안감으로 엄습해 왔다.
일단 1층에 있는 물건들을 최대한 2층으로 옮겨보기로 했다.
피아노, 냉장고, 소파 같은 덩치 큰 살림들은 옮길 순 없었지만, TV부터 소소한 살림들을 세 식구가 힘 합쳐 옮기고 문틈에는 수건을 막고 놓고 1층 배수구 쪽은 모래주머니를 올려두었다.
앞 집에 사는 태국인들이 차에 짐을 싣고 대피를 준비하고 있다
단톡방에 단수, 단전이 될 예정이라는 태국 공지를 캡처해서 올려주는 교민들의 카톡이 고맙기만 하다.
우리도 대피를 결정하고 침수와 먼 거리에 호텔을 급히 예약하고 급한 짐만 꾸려 집을 나섰다.
동네입구는 물이 더 불어나 길의 형태는 아예 보이지 않고 순전히 감으로 다녀야 하는 길 아닌 길이였다.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으로 세 식구가 탄 차는 빠져나왔다.
운전하는 남편도 잔뜩 긴장하고 물속을 뚫고 나오니 도로는 아수라장이다.
꽉 막힌 도로, 침수된 도로로 역주행하는 차, 짐을 잔뜩 실고 대피하는 차 등 얽혀 있는 모습에 불안감과 초조함은 더해져 갔다.
재난영화에서 주인공이 탈출하는 장면처럼 우리도 그렇게 휩쓸려 나왔다.
두려움, 긴장감, 불안함이 함께한 흔들리는 폰카메라 한참을 저속으로 겨우겨우 안전한 도로로 나와 호텔에 도착했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급히 침수대비를 하고 대피해 온 우리 세 식구는 멍하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또, 휴~~~
대피 후 저녁식사 벌써 8시가 넘어 식당에 가기도 어렵고 근처 슈퍼마켓에서 대충 컵라면, 봉지김치, 꼬치 몇개사고 호텔에 와서 먹기 시작했다.
그제야 서로 웃으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일단 무사하니 상황을 지켜보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자고 했다.
위기 상황이 되니 아이도 한 사람 몫을 척척하고 남편도 나도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 낸 느낌이 들었다.
무사하니 다행이다 하며 서로 수고했다고 다독였다.
매일 툭탁거리는 우리 가족이지만 타국에서의 위기상황에 단합이 되는 시간이었다.
위기상황에서 더욱 돈독해지는게 가족이고 인간일까?
가장 소중한 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걱정은 내일 하고 오늘은 자기로 했다.
제발 집안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기를... 제발...제발...
참으로 길고 고된 하루였다.
이렇게 즐겁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호캉스는 처음인 것 같다.
밤새 더 피해 없이 무사하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왜 이리 무거운지...
오늘은 오랫만에 한국생각이 난다...
밤 10시경, 지인분이 보내준 사진에 답답한 마음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