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의 근원은 미운 너였다 4화

다정한 척하는 말이 제일 잔인했다

by 공인멘토

1절. “그 말, 정말 나 위해 한 거야?”


“나는 네가 다 괜찮아 보여서, 괜히 건드리기 싫었어.”


그 말은 웃으며 건넸다.

어깨를 툭 치며, 아무렇지 않게.

마치 내 아픔은 지나가는 감기쯤 되는 듯.

마치 내가 감정을 드러냈다면 오히려 민폐였을 거라는 듯.


그날, 나는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아 보였다는 말이, 나를 가장 아프게 했다.

무너지고 있었지만 애써 웃었던 날들,

그 안간힘이 결국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어’로 끝났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나는 신호를 줬다고 생각했다.

눈빛으로, 말투로,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

“혹시 나 힘든 거, 눈치챘어?”

“그거 말고, 그냥… 들어줄 수 있어?”

속으론 그렇게 외치고 있었는데,

돌아온 건 ‘괜찮아 보였어’라는 한 줄 요약이었다.


그 말은, 나를 철저히 혼자라고 느끼게 했다.

관심 없는 사람은 대놓고 외면하지만,

관심 있는 척하는 사람은 더 교묘하게 나를 고립시킨다.

그 웃는 얼굴 뒤에서 나는 외로워졌고,

그 말 한마디로 관계의 결이 바스러졌다.


그 말을 하고 돌아선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저 사람은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다가오진 않았겠구나.’

나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말은 결국,

‘네 감정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람이 다정하다고 믿었다.

한때는 믿고 기대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다정함은 참 이상했다.

내가 진짜로 감정을 꺼내려고 할 때는

늘 다른 이야기로 빠졌고,

“언제든 말해”라고 해놓고, 막상 말하면 불편해했다.


그들은 내 감정을 받아줄 준비가 없었다.

그래서 말로는 늘 “힘들면 말해”라고 했고,

나는 그 말에 또다시 기대했다.

그 다정한 문장들이 사실은 예의와 거리 두기의 경계선이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야 알게 되었다.


다정한 척.

그건 진짜 다정함과는 다른,

어쩌면 훨씬 더 무서운 방식이었다.


2절. “다정한 말이 날 더 아프게 했다”

“힘들면 언제든 말해.”

“언제든 연락해.”

“너만 괜찮다면, 나야 언제든 들어줄 준비되어 있어.”


이제는 그 말들이 더 이상 따뜻하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날카롭다.

위로의 칼날처럼, 마음을 살짝 베고 지나간다.

한때는 그 말들이 얼마나 고맙던지,

가슴속에 넣어두고 되새기곤 했다.

‘아, 그래도 이 사람은 내 편이구나.’

‘지금은 말 못 하지만, 언젠가는 기댈 수 있겠지.’


그런데 그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정작 힘들어져서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하면,

대답은 느렸고, 반응은 무뎠다.

“요즘 나도 좀 바빠서…”

“미안, 지금은 좀 정신이 없네.”

말은 언제든 괜찮다더니,

그 '언제든'은 결국 지금이 아니었고,

그 ‘괜찮다’는 말은 내 감정을 감당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무표정한 무관심보다,

무책임한 다정함이 더 잔인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예 기대를 안 했다면 덜 아팠을 것이다.

그 사람은 내가 꺼내려던 마음을

애써 외면하지도 않았고, 명확히 거절하지도 않았다.

그저 미소와 말 한두 마디로 가볍게 덮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들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만큼 더 무너졌다.


감정이 닿지 않는 다정함은,

오히려 나만 바보가 된 느낌을 남긴다.

혼자 착각했던 사람, 혼자 감정에 기대어있던 사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웃던 그 사람 옆에서,

나는 천천히 무너졌다.


나는 생각보다 오래 그 말을 곱씹었다.

정말 그 사람은 내 편이었을까?

정말 그 사람은 날 위로하려 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예의였을까.

그저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을 위해 건넨 말이었을까.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불편해할까 봐’ 못 본 척했던 사람들.

나를 돕기보다,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기록만 남기고

뒤돌아갔던 그 다정한 사람들.

그들의 말은 아무도 상처 주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나를 무너뜨렸다.


말은 기억되고, 표정은 복사된다.

나는 지금도 그 웃으며 말하던 얼굴을 기억한다.

그 미소는 다정했지만,

그 다정함이 내 마음에는 칼처럼 남았다.


3절. “나는 왜 그 말에 기대했을까”

가만히 되묻는다.

왜 나는 그 말에 그렇게 기대했을까?

왜 ‘힘들면 언제든 말해’라는 단 한 줄에

그토록 큰 위안을 걸었을까?


아마 그 말 한마디가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마음, 누군가는 받아줄게.’

그 말이 주는 희망은 너무 달콤했고,

나는 그 말에 기대어 서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는 '다정'이라는 단어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진심인지, 아니면 그냥 예의인지 따지지 않았다.

그냥 그 말이 나를 살릴 것 같았다.

그날 하루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았고, 묻지 않았고,

혼자 해석하고, 혼자 감격하고, 혼자 무너졌다.


이제는 안다.

나는 누군가의 ‘다정함’을 원한 게 아니라,

내 감정을 받아줄 누군가의 ‘자리’를 원했다.

그 다정한 말들이 내게로 향했을 거라 착각했고,

그래서 관계를 믿었다.

‘그래도 이 사람은 다르겠지.’

‘이번엔 진짜 괜찮은 사람일 거야.’

그 착각은 내가 만든 판타지였고,

그만큼 나는 외로웠던 것이다.


기대는 혼자 만든 감정의 무대다.

그리고 나는 그 무대 위에 혼자 올랐다.

혼자 대사를 쓰고, 혼자 반응하고,

결국 상대는 관객이 아니라, 아예 무대에 오르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내 감정을 몰랐다.

나는 분명 신호를 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소 지었고, “괜찮아”라고 했고,

그저 눈빛에, 분위기에, 말 없는 메시지에

내 모든 마음을 실었다.


하지만 상대는 읽지 못했다.

아니, 읽으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진심은 감정의 무게를 동반하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에 무게를 실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안도했고,

곧이어 실망했고, 결국 분노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문제는 그들의 말이 아니라,

그 말에 내 모든 감정을 걸어버린 나의 기대였다.


다정한 척은 그들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기대한 건 나였다.

나는 다정한 말을 믿은 게 아니라,

내가 듣고 싶었던 세계를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결국, 나를 고립시켰다.



4절. “그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그 말들은 나를 위한 위로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힘들면 말해.”

“언제든 연락해.”

“무슨 일 있으면 꼭 얘기해 줘.”


그 말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끝내기 위한 ‘면피’였다.

그 순간만큼은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을 뿐,

내가 진짜 말을 꺼냈을 때 책임질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그 말은,

진심으로 다가오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서서히 멀어지겠다는 예고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괜찮은 척,

지금은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말투,

하지만 그 뒤엔 언제든 뒷걸음질 칠 수 있는 거리 두기가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고,

그들은 그 말을 ‘형식’으로 남겼다.

그래서 감정은 어긋났고,

관계는 조용히 멀어졌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참 예의가 바른 사람들이었다.

무례한 말은 하지 않았고,

감정을 얕잡아보는 행동도 없었다.

항상 웃었고, 말끝마다 다정했고,

한 번도 ‘싫다’고 말한 적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위해 울지 않을 거란 걸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그 다정함은 감정을 감싸는 포장지였고,

그 안에는 공백이 있었다.

그들은 정중했고, 사려 깊었고,

그만큼 나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진심은 종종 무례하다.

진짜 걱정하는 사람은,

때로는 불쑥 찾아와 묻는다.

“요즘 왜 그래?”

“괜찮은 척하지 마.”

“힘들면 그냥 말해.”


그 말은 부드럽지 않다.

상대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고,

감정을 드러내야 하기에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진심은 흔히 불편한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반대로, 예의는 부드럽다.

정돈된 언어로 감정을 가린다.

그 말엔 책임이 없고, 흔적도 남지 않는다.

다정한 척은, 그렇게 관계의 해체를 정당화하는

가장 세련된 방식이었다.


그들은 진심을 내지 않았고,

나는 예의를 진심으로 오해했다.

그리고 그 사이, 관계는 아주 조용히 무너졌다.


5절. “다정한 척은, 나를 버리는 연습이었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다정한 척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건, 그들이 나를 서서히 버리는 방식이었다.


차라리 솔직한 외면이 더 낫다.

“나는 네 감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요즘 너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그렇게 말해줬다면,

적어도 나는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정한 척은

내 마음이 닿을 수 없는 벽을 세우면서도,

그 벽 앞에서 웃으며 손을 흔든다.

“여기까지 와도 돼.

하지만 더는 안 돼.”

그 메시지를 나는 너무 늦게 읽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다정해졌다.

내가 울기 전에,

미소로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내가 안심한 틈을 타,

조용히 뒷모습을 남겼다.

그래서 더 아팠다.

나는 그들이 남긴 다정한 말과 웃음 뒤에

진심이 숨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정한 척은 그들에게,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하나의 기술이었고

나에게는 감정을 더 깊이 묻히게 하는 덫이었다.

그들은 말과 미소로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믿었겠지만,

나는 그 다정함 속에서

더 깊이 버려지고 있었다.


다정한 말은 감정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감정을 미뤄두는 포장지일 수도 있다.

말이 아무리 곱고 부드러워도,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없다면

그건 차라리 침묵보다 못하다.


그래서 이제는,

말보다 감정을 먼저 본다.

무엇을 말했는가 보다,

그 말을 할 때 그 사람의 눈빛,

그 말 이후의 태도를 먼저 살핀다.

다정한 말이 오히려 차갑게 느껴질 땐,

그 이유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건 내 감정이 이미 알아챈 것이다.


말보다 감정은 더 정직하다.

감정은 거짓말을 못 한다.

말은 무한히 포장할 수 있어도,

감정은 닿으면 울리고, 비면 허전하다.


이제는 그런 사람들에게 기대지 않기로 했다.

다정한 척하는 말에

더는 마음을 내어주지 않기로 했다.

진심은 항상 불편한 얼굴을 하고 오고,

진짜 관계는,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감내하는 용기’로 쌓인다.


“다정한 척은, 나를 버리는 연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연습에 너무 오랫동안 참았고,

이제는 나를 지키는 연습을 시작하려 한다.



혹시 지금 당신 곁에도, 너무 다정한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 다정함은 정말 당신을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조용한 작별을 준비 중인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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