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1 고통은 도가 건네는 거울이다

6화 고통은 벌이 아니라 알림이다

by 공인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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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고통은 원망을 불러오고, 원망은 나를 가둔다


고통은 언제나 불시에 찾아온다.
삶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듯할 때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고통은 문을 두드린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묻는다.

“왜 하필 지금인가?”
“왜 나인가?”
“내가 그렇게 잘못 살았단 말인가?”

이 질문 속에는 답을 찾으려는 진지함보다는, 세상을 향한 원망과 억울함이 담겨 있다. 고통을 ‘부당한 형벌’로 해석하는 순간, 마음은 외부의 누군가를 탓하고, 상황을 저주하며, 운명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고통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단단한 감옥으로 변해 나를 가둔다.

나는 한때 고통을 철저히 외부의 탓으로 돌리며 살았다. 회사의 구조조정 탓, 가족의 무심함 탓, 사회의 불의 탓. 그렇게 고통의 원인을 바깥에서만 찾다 보니, 내 안에서 고통은 더욱 깊어졌다. 원망은 처음에는 작은 불씨 같았지만, 이내 삶 전체를 집어삼키는 불길이 되어 나를 소진시켰다.

도를 따르는 삶은 여기서 다른 길을 제시한다.
고통이 왔을 때, 원망하는 대신 관찰하는 것이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왔을까?”라는 질문을 “이 고통이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로 바꾸는 순간, 고통은 형벌이 아니라 신호로 전환된다.

고통을 탓할수록 나는 갇히지만, 고통을 관찰할수록 나는 자유로워진다.
이 단순한 전환이 삶의 방향을 가른다.



2절 자연은 벌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알린다


불이 나면 사이렌이 울린다. 경보음은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려는 신호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고통은 내 인생이 잘못되었다는 심판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흔들렸음을 알려주는 경고등이다.

우리는 종종 자연을 오해한다.
비가 오면 ‘날씨가 나쁘다’ 하고, 바람이 불면 ‘운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연은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없다. 자연은 그저 변화할 뿐이다. 그것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과정이고, 밤이 낮으로 이어지는 이치다. 고통 또한 그렇다. 자연은 벌을 내리지 않는다. 도는 다만 흐름을 알린다.

나 역시 고통을 오래도록 벌로 받아들였다. 실패하면 하늘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았고, 병이 오면 내가 무언가 죄를 지은 듯 두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그것은 심판이 아니라, 삶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신호였다.

동양 고전 『중용』에서는 “경(敬)”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깨어있음,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태도. 고통은 바로 그 ‘작은 변화’를 알리는 경(敬)의 종소리였다. 몸이 지쳐 신호를 보내고, 마음이 막혀 신음하며, 관계가 깨져서 흔들릴 때 — 그것은 나를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멈추고 다시 보라고 알려주는 자비로운 호출이었다.

자연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속삭인다.
“멈춰라. 다시 보라. 지금 너의 길이 맞는가?”



3절 고통은 ‘나를 부르는’ 방법이다


고통은 언제나 바깥에서 온다고 생각하기 쉽다.
환경이 나를 힘들게 하고, 사람이 나를 상처 주고, 운명이 나를 외면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고통은 외부의 화살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잃어버렸다는 내면의 부름이었다.

나는 어디서 무리했는가?
나는 누구를 속였는가?
나는 내 마음의 작은 신호를 무시하지 않았는가?

고통은 늘 이 질문들을 내 앞에 놓아주었다. 겉으로는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무기력에 휩싸이거나, 이유 없는 불면이 이어지거나,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을 냈던 때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 내가 나를 놓쳤구나.”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내 안에서는 이미 작은 균열이 생겨 있었다. 억눌렀던 감정, 미뤄두었던 후회, 무시했던 진실이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불렀던 것이다. 마치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고통은 나를 다시 불러내는 울림이었다.

고통은 나를 괴롭히려는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나와 멀어졌을 때, “여기 있다, 돌아오라” 하고 알려주는 신호였다. 그래서 이제 나는 고통이 찾아오면, 먼저 묻는다. “지금 나는 어디에서 나를 잃었는가?”



4절 고통은 방향을 묻는 질문이다


고통은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질문의 형태로 다가온다.
“지금 가는 이 길, 정말 괜찮은가?”
“네가 붙잡고 있는 그 욕망, 진정 네 것을 살리는가?”

우리는 흔히 고통이 오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약을 먹거나,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애써 무시한다. 그러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 한, 그것은 다시 돌아온다. 형태를 바꾸어 찾아오고, 강도를 높여 다시 묻는다.

내 삶을 돌아보면, 가장 뼈아픈 고통의 순간들이 결국 내 방향을 바꾸어 주었다. 한때는 성공을 좇아 달리느라 관계를 잃었고, 인정받고자 애쓰다 내 마음을 잃었다. 그때 찾아온 고통은 나를 멈추게 했다. “이 길이 정말 네가 원하는 길이냐?”는 질문을 던지며.

고통을 직면하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도를 따르는 삶은 고통을 피해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질문 앞에 서서 대답하려 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길은 나를 살리는 길인가, 아니면 나를 잃게 하는 길인가?”

철학적 명제는 분명하다.
고통은 도에서 벗어났다는 인식이 없다면 끝없이 반복된다.
그러나 고통을 질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는 힘이 아니라, 나를 정렬시키는 힘으로 바뀐다.

고통은 방향을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답할 용기가 있을 때, 고통은 징벌이 아니라 길잡이가 된다.



5절 스스로를 벌하지 말고, 고통을 번역하라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것이다.
“내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겼어.”
“내가 잘못 살아서 벌을 받는 거야.”
이렇게 자기 비난은 곧 자기 처벌로 이어진다. 스스로를 점점 더 몰아붙이며, 고통의 무게를 몇 배로 키운다.

나 또한 그랬다.
어떤 실패가 닥치면 스스로를 학대하듯 후회했고, 몸이 아프면 “내가 관리를 못 해서 그렇지”라며 자책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 시간들은 고통을 해소하기는커녕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길이었다.

진정한 수행자는 고통을 단죄의 증거로 보지 않는다.
고통을 메시지로 읽는다. 불이 나면 경보가 울리듯, 고통은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번역하는 일이다.

“이 고통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어떤 균형이 깨졌기에 이 고통이 찾아왔는가?”
이 질문을 던질 때, 고통은 원망과 자책의 얼굴을 벗고, 배움과 방향의 언어로 변한다.

나는 이제 고통을 만날 때마다 먼저 멈추어 해석하려 한다.
피하지 않고, 탓하지 않고, 억누르지도 않는다. 그저 묻는다. “이 메시지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러면 고통은 적이 아니라 스승이 된다.

스스로를 벌할 필요는 없다. 고통은 이미 충분히 무겁다.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그것을 번역하는 것이다.



6절 고통은 늘 내 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언제나 고통과 함께였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예기치 못한 실패, 몸을 짓누르던 병… 그 순간마다 나는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무너짐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오류를 반복했을 것이다.

고통은 나를 괴롭히려 온 것이 아니었다.
고통은 나를 멈추게 했다. 멈추지 않았다면 더 큰 파국을 불러왔을 길을, 고통은 앞질러 막아주었다. 그때는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닥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국 그 고통 덕분에 나는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고통은 나를 버리려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것은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살리려는 경고음이었다.
때로는 내 귀를 찢는 듯 날카롭게 울렸고, 때로는 묵묵히 내 몸을 통해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목적은 단 하나였다. 나를 다시 나에게로 데려오는 것.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길을 잃고도 길을 찾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이 있었기에 나는 묻고, 흔들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고통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한다. 그것이 내 편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통은 나를 괴롭히러 온 것이 아니었다.
나를 부르기 위해, 나를 살리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이제 나는 그것이 가장 친절한 경고음이었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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