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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야 May 26. 2023

2023년 5월 26일

적어도 노량진 고시촌이 내 인생에 존재하게끔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2018년 3월 10일의 나는 적었다. 책장 정리를 하다 어쩌다 꺼낸 일기장을 보고, 내일도 노량진을 갈 준비를 하던 나는 흠칫했다. 장담컨대 스물하나의 나는 스물일곱의 내 모습이 이러리라 단 한치도 예상하지 못했다. 더 나아가서, 예전에는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참 힘들다 느꼈다면, 지금은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나마 예측하며 대비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조만간 인간을 지배하실 위대하신 ChatGPT 수령 동지께서 현현하실 날을 고대하며 초상화를 걸어둘 자리를 찾는 것 따위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평생 불안해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예측할 수도 없는 앞날에 에너지를 쏟으며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무의미한 것 아닐까. 그렇기에 더더욱 오늘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스물하나의 나는 그것이 적어도 공무원은 아니라고 답했고, 스물일곱의 나는 그것이 공무원일지도 모른다고 답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또 모르지 않겠는가, 서른셋의 내가 그것이 공무원은 결코 아니었다고 답할지도, 마흔의 내가 그것이 공무원이었어야 했다고 답할지도. 하지만 그렇게 답하는 것 역시 그 시대에 그 인생을 살았던 나였기에 답할 뿐, 다른 시대의 다른 인생을 살은 사람에게는 아닐 것이다. 역으로, 다른 시대의 다른 인생을 살았던 사람에게 맞은 답이 나에게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시지프는 바위를 굴려 언덕으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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