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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야 Jun 21. 2023

교육의 탈을 쓴 정치

대통령실의 수능 흔들기를 바라보며


원래 내 브런치는 이런 이슈에 관해

어그로를 함부로 끌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슈에 관해 섣불리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또 그것을 통해 관심을 끈다는 것이,

얼마나 독이 되는 행동인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화를 참지 못해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





며칠 전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과 사교육을 비판하기 시작하더니,

수능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겠다 선언하고는

킬러 문제를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공교육 정상화/사교육비 절감이라는

기치를 내걸면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정치인 표팔이에 교육을 희생시키는,

되도 않는 탁상공론에서 나온

말같지도 않는 정책이라 말하고 싶다.



그 이유를 아래에 조목조목 설명하겠다.



첫째, 변별력을 없애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발상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수능에 킬러 문제 사라지면 문제 쉬워지고

결국 사교육비 절감 되고 좋은 것 아닌가?'

과연 그럴까?



대한민국은 대학 서열화 사회이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이라는

웃지 못할 별명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당장 정시 시즌만 되어도 정시 배치표에

대학들은 서열화되어 가지런히 표 위에 정렬되어있다.



그렇다면 대학 서열화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변별이다.

실력이 뛰어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구분하는 것.

그래야만 뛰어난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가고,

그렇지 않은 학생이 열악한 대학에 가니까.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평가 수단들이 존재해왔지만,

결국 목표는 하나였다.

뛰어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구분하는 것.


사진 출처: 연합뉴스


하지만 수능 문제가 킬러 문제 없이 전부 쉬워진다고 생각해보자.

변별이 안 되는 것이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쉽게 말해, 연세대/고려대 갈 사람과

건국대/동국대/홍익대 갈 사람이 같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이러면 대학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능을 객관적인 평가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

다른 평가 방식을 도입해서 학생들을 변별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학생부가 되건, 논술이 되건, 대학별고사가 되건,

결국 어떻게든 대학은

뛰어난 학생을 선별할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방법에 대한 사교육이 등장할 것이다.


대학 서열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수능을 손본다고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을 억제할 수 있다는 상상은

마치 히드라의 목 9개 중 하나를 치고 기뻐하는 사람과 같다.

거기에서 목 2개가 다시금 자라날지 모르고 있는.



이런 당연한 추론이 도출되는 정책을 생각없이 내뱉고,

이를 정책 기조로 추진한다는 것이

한 나라 국가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할 일이 맞는가?

생각이 없어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둘째, 전혀 적절하지 못한 정책 시행 시기



백 번 양보해서, 해당 정책의 기조가 맞다고 치자.

그래, 수능을 손 보면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을 억제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과연 이걸 '지금' 발표할 사안이 맞는가?



2023년 6월 20일 현 시점 기준, 수능 관련 주요 학사 일정 디데이


지금 글을 쓰는 현 시점 기준,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50일 남았다.

6월 모의평가는 이미 시행되었고

9월 모의평가와 수능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다.



보통 교육 정책은 1년의 큰 틀을 잡고 시행하기에

연초에 발표하고 이를 자잘하게 수정해나가며

큰 방향성을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연초부터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대통령실이

갑자기 이제 와서 근본부터 출제 기조를 바꾸겠다며

판을 엎는 것은

갑작스럽다 못해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교육 기관들이 출제 기조를 대강 잡고,

학생들과 학부모들 역시 이에 맞춰 학습중인데

갑자기 이제 와서

'공교육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내지 말라' 운운하는 것은

대체 어느 나라의 근본 없는 정책 시행인가?



결국 평가원 출제 기조에 맞춰 공부해오던

애먼 학생들과 학부모들만

정치인 탁상공론에 피를 볼 뿐이다.




둘째 하고 반, 다분히 위헌적인
국민의 신뢰 이익 침해



좀 더 감정적인 어조를 빼고 담백하게 말해보자.

이는 엄밀히 따지자면 헌법 상 신뢰 보호 원칙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행동이라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은 개정 전 시행령이 절대평가제를 도입한 목적과 그 경위, 이 사건 시험 이전 수년간 상대평가제에 의하여 시행된 제1차 시험의 합격점수, 개정 전 시행령의 공포 후 유예기간, 개정 시행령의 입법예고와 공포 및 그에 따른 시험공고 등에 관한 일련의 사실관계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시험실시가 임박한 시기에 개정 전 시행령에 의한 절대평가제를 한 번도 시행하지 않은 채 다시 이를 상대평가제로 환원하는 내용으로 시행령을 개정하여 즉시 시행하리라고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 제1차 시험을 절대평가제로 실시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이러한 문제점들은 개정 전 시행령의 공포 당시 이미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었고, 경과규정에 의해 1년 반여의 시행준비기간까지 허용되어 있은 데다가 다른 방법에 의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도 보이지 않는 이상 그와 같은 공익적 목적은 개정 시행령을 즉시 시행하여 바로 임박해 있는 이 사건 시험에 적용하면서까지 이를 실현하여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결국 개정 시행령의 즉시 시행으로 인한 원고들의 신뢰이익 침해는 개정 시행령의 즉시 시행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공익적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개정 시행령에 따른 시험준비 방법과 기간의 조정이 이 사건 시험에 응한 수험생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었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신뢰이익의 침해를 정당화할 수 없으며, 또한 원고들이 개정 시행령의 내용에 따라 공고된 이 사건 시험에 응하였다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그것만으로는 개정 전 시행령의 존속에 대한 일체의 신뢰이익을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제1차 시험의 상대평가제를 규정한 개정 시행령 제4조 제1항을 2002년의 이 사건 시험에 시행하는 것은 헌법상 신뢰보호의 원칙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이므로, 개정 시행령 부칙 중 제4조 제1항을 즉시 이 사건 시험에 대하여 시행하도록 그 시행시기를 정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할 것이다.

(대판 2006.11.16. 2003두12899)




위 판례는 변리사 제 1,2차 시험을 시험 시행 2개월 전

절대평가 방식에서 상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한 것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문이다.



공익적인 목적을 내세워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시험 2개월 전에 시험 지침을 크게 변경하면서까지

기존 시험 응시자의 신뢰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되는 무효한 행위라는 것이다.



물론 해당 판례가 본 정부의 정책 시행에 대한 논란에

그대로 직결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취지의 판례가 떡하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변리사 시험이 아닌 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 손을 댄다는 것은

그냥 무식하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법조계 출신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내뱉었다는 건 더더욱 그러하다.







셋째, 대학입시 담당국장, 평가원장...
다음은 누구 목일까


그래, 천 번 양보해서 위 정책이

정치인들 탁상공론에서 나온 무식한 정책이라고만 하자.

그래도 정책 시행 방향은

원래 처음부터 들어맞을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고쳐가면

꽤 좋은 정책이 될 수도 있지 않는가?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보여주기식 정책인 게 눈에 보인다.



6월 16일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 (대학입시 담당국장) 경질

6월 16일 평가원 감사

6월 18일 교육부 장관 엄중 경고

6월 19일 평가원장 사임

...

저 사람들을 다 자르고

'엄중 경고' 조치를 내리면

수능이 갑자기 공교육 위주로 전환되는가?

내가 이 정책을 '표팔이'라고

깔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저 사람들을 날린다고 대한민국 교육이 정상화되지 않는다.

저 사람들을 자른다고 수능이 공교육 위주로 바뀌지 않는다.

저 사람들 옷을 벗긴다고 고등학생들이 사교육 부담에서 해방되지 않는다.



그냥 '책임지고 물러날 허수아비

몇 명 모가지 자르는 쇼'로 보일 뿐이다.



그저 윗대가리 몇 명 날리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힘썼다는

보여주기식 쇼 몇 번 보여주면

국민들이

'와! 고등학생의 학습 부담을 생각해주는

이 시대 최고의 대통령!'

이라고 칭송할 우민들로 보였나보다.




어라?


우민이 맞는 거로 하자.





제발, 교육에 정치 좀 섞지 마라



대한민국 교육의 정치권의 입김에 이리 저리 휘둘린 것은

이번이 비단 처음은 아니다.



수능을 중시하는 정책 기조를 가진 대통령이 출범하면

그에 맞춰 바뀌어왔고,

수능에서 벗어나려는 정책 기조를 가진 대통령이 출범하면

학생부 종합, 논술 등의 제도들이 힘을 얻었다.

전형별 선발 학생 수가 매번 달라지는 것은 덤이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급진적으로

근본도 없이

교육 정책에 정치적 입김을 불어넣은 대통령은

내가 아는 바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이런 걸 교육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약속했다.

정치인 프로파간다 나부랭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를 보는 것은

애먼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일 뿐이다.



과연 이러한 교육 변화를 겪은 이들이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라고 생각할까?

'정치 묻은 교육'에 의해 희생된 학생들은

과연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제발 정책을 추진할 때

생각이라는 걸 조금 하고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검찰 수사하듯

‘진행시켜' 한 마디에 교육을 움직이려는

어줍짢은 권위적 사고방식은

제발 검찰청에나 던져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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