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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야 Jul 04. 2023

교육의 탈을 쓴 정치 (4)

교육과정의 눈으로 바라본 킬러 문항 삭제

오늘도 어김없이 소재를 제공해주신

윤석열 정부께 감사드린다.



최근 몇 주간 정부의 수능 관련 정책에 대해 남긴 글이

그래도 꽤나 널리 퍼져나간 것 같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안 읽는 글보다는 누군가라도 읽는 글이 낫지 않은가.

난 사람들이 contingency pricing을

그렇게 많이들 검색할 줄 몰랐지




혹시라도 안 읽어보셨다면

한 번만 읽어봐주십사 한다.






이번 글은 좀 근본적인 문제를 다뤄볼까 한다.



정치인이 정책을 추진할 때에는

나름 '대의명분'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이유 없는 정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정책이라는 게 대의만 좋고 내용이 썩었으면

비판받아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여태껏 신나게 비판해줬으니

그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정도는

거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체 왜 이번 정부는

하필 '킬러 문항'을 건드렸을까?







킬러 문항 = 사교육 ?



정부가 킬러 문항 폐지를 주장하는 바는

크게 압축해서 하나다.

사교육 이권 카르텔의 혁파.



좀 더 풀어서 써보자.




1. 교육 당국과 사교육이 카르텔을 이룬다.

2. 교육 당국은 과도한 (대학 수준의)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교육과정 외의 '킬러 문제'를 출제한다.

3. 사교육은 학생들에게 그런 킬러 문제들을 훈련시킨다.

4. 결국 학생들은 킬러 문제를 풀기 위해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고, 
사교육 카르텔은 이권을 공고히 하게 된다.



위 논리에 따르면, 킬러 문제를 없애면






1) 사교육 카르텔의 이권 수단을 없앨 수 있고,

2) 학생들은 공교육 수준의 문제만 접하면 되고,

3)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아름다운 교육이 완성된다.



저 말대로라면

한마디로 만능의 해결책이다.



하지만 이전 글들에서 짚어보았듯



하나,

킬러 문제 몇 개 없앤다고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고,


둘,

대학 서열을 없애지 않는 이상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으며,


셋,

그 사교육이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것 또한

시장 논리에 입각한 당연한 현상이고

이들을 묶어 이권 카르텔을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시장 논리를 부정하는 반국가적인 발상이고,


넷,

오히려 이러한 교육 정책을

수능 5달도 안 남겨놓고 급작스럽게 추진하는

헌법에 반하는 행태를 보이는 정부야말로

사교육을 부채질하는 원흉이며,


다섯,

‘킬러 문항'이라고 뽑은 것들마저

'킬러'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인 것들을 모아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 불분명하다는 점을,



위 모든 것들을 지난 글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그래도 백 번, 아니 천 번, 아니 천만 번 양보해서

킬러 문제 삭제가 사교육을 부추기지는 않는다 치자.

(사교육 억제 효과가 있다고 치려면

100억번 양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



그렇다면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이러한 문항들을 삭제하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과정 상 옳은 것이 아닌가?



안타깝지만 아니다.




교과서 밖 = 교육과정 밖?




교육부의 수능 칼질은

윤석열 대통령의 아래 발언에서 시작되었다.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비문학 국어문제라던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출제 문제는

처음부터 교육 당국이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





혹시나 발언 왜곡이 있을까

대통령실 공식 보도자료까지 첨부했다.



그렇다면 수능 비문학 문제나

과목 융합형 문제들은 정망

교육과정을 벗어난 것일까?



길게 말할 것 없이 교육과정을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우리나라의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교육 이념과 교육 목적을 바탕으로, 이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다음과 같다.



나. 폭넓은 기초 능력을 바탕으로 진취적 발상과 도전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인 사람



이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교과 교육과 창의적 체험활동을 포함한 학교 교육 전 과정을 통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역량은 다음과 같다.



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지식과 정보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활용할 수 있는 지식정보처리 역량



다. 폭넓은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을 융합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창의적 사고 역량



[2022 개정 교육과정 - 고등학교 - 총론 - 2. 추구하는 인간상과 핵심역량 중]




다. 고등학교 교육 목표


고등학교 교육은 중학교 교육의 성과를 바탕으로,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게 진로를 개척하며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데 중점을 둔다.



2)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융합하여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기른다



[2022 개정 교육과정 - 고등학교 - 총론 - 3. 학교급별 교육 목표 중]




위의 교육과정 총론에서 볼 수 있듯,

고등학교 교육은 다양한 영역의 지식을 요구함은 물론

이들을 융합하여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고자 한다.



교과서 내부의 텍스트에 한정되는

구시대적 교육과정이 아니란 말이다.



에이, 저거는 큰 틀이지 세부 평가는 다르지 않냐고?




‘읽기’ 영역에서는 교과서의 제재뿐 아니라 교과서 밖의 적절한 제재도 활용하여 실제적인 읽기 능력과 읽기 태도, 다양한 독서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둔다또한 글에 대한 단편적 지식이나 단순 회상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글에 대한 이해력과 사고력, 읽기 목적과 상황에 부합하는 읽기 전략의 효과적인 활용 등을 평가한다. 또한 읽기 영역의 단독 평가뿐만 아니라, 타 영역과 통합한 평가나 타 교과와 통합 평가를 실시하되, 읽기 평가 요소를 명시하여 그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과 피드백이 가능할 수 있도록 평가 도구를 구성한다. 기초 수준에 있는 학습자나 느린 학습자 등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학습자의 읽기 문제를 진단하고 효과적인 피드백을 제공하기 위해 해독, 유창성, 독해 기능과 관련된 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 세부적으로는 자유 회상 검사, 오독 분석, 빈칸 메우기법, 자율적 수정, 중요도 평정, 요약하기 등의 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 읽기 태도나 습관 등을 평가할 때는 읽기 활동 점검표나 관찰 평가 등을 통해 누적적으로 평가를 시행한다. 독서 일지나 독서 이력, 독서 포트폴리오를 평가할 때는 독서의 전 과정에서 학습자의 발달과 성장을 점검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평가 도구를 구성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 국어과 공통국어 - 3. 교수 학습 및 평가 - 평가 방법 중]




국어과 평가 기준께서

친히 교과서 바깥으로 나아가 평가하라 하셨다.



에이, 국어는 그럴 수 있지,

다른 과목은 그럴 수 없다고?




④ 연결 역량의 평가는 영역이나 학년(군) 내용 사이에서 개념, 원리, 법칙을 적절하게 관련지어 이해하는지, 수학의 개념, 원리, 법칙을 연계하여 새로운 지식을 생성할 수 있는지, 수학을 실생활이나 타 교과의 지식, 기능, 경험에 적용할 수 있는지, 실생활이나 타 교과의 지식, 기능, 경험을 수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수학을 바탕으로 창의적으로 관련성을 찾을 수 있는지, 수학의 유용성을 인식하는지 등을 고려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 공통수학 - 3. 교수학습 및 평가 - 평가 방법 중]




수학에서도 영역 간 연관성을 적절히 고려한

평가 방식을 지향한다.


에이, 영어는 다를 거라고?




(다) 학습 성과에 대한 평가는 학습한 내용을 새로운 상황과 맥락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둔다. 배운 내용을 단순 확인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학습자가 학습한 영어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상황에서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는지를 평가한다. 이를 위하여 성취기준을 기반으로 학습 내용을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새로운 맥락과 상황을 제시하여 학습자의 영어 수행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영어과 영어2 - 3. 교수학습 및 평가 - 평가 방법 중]




영어도 매한가지이다.


국어, 영어, 수학 모든 영역의 평가 지침에사

교과서 내부의 단편적인 지식을 묻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맥락, 소재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을

총론과 일맥상통하게 명시하고 있다.



즉, ‘대학 수준의 배경지식’을 요구하더라도

고등학교 수준의 읽기 전략을 구사하면

무리 없이 세부내용을 읽어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문학 지문은

결코 교육과정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물론 글에서 주어진 내용이 부족하다면

이는 출제 오류로 비판 받아 마땅하겠지만,

그것이 수능 자체를 때릴 이유는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교과서 내부의 텍스트에 갇혀

그것만을 출제하는 방식이야말로

창의적 인재를 육성해야 하는 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행위이다.



누가 틀린 것인가?

수많은 전문가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싸매서 도출된

교육과정이 틀렸을까?

아니면 정책의 후폭풍조차 탁상공론 속에서 고려 못한

대통령실이 틀렸을까?



사법고시 9수를 하신 대통령께서

판례/법조문 달달 외워야 하는 사법고시의 평가가

수능에도 적용될 거라 믿으셨나본데,



수능은 사고력 시험이다.

단순 지식 암기로 승부를 보는 건

내신으로 충분하다.



다시 말해, 사고력 시험인 수능에

‘교육과정 내 출제’를 들먹이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는 것은



현 시대 교육의 특성이나

수능의 성격조차 이해하지 못한

구시대적이고 무지몽매한 발언이다.



사실 이제 똑같은 얘기를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정책에 비판을 가했지만,

다시 말한다.

나는 사교육에 칼질하는 것은 찬성이다.



하지만 이런 어거지식 정책은

효과도 없고

학생만 정치에 희생될 뿐이다.



진짜 마지막으로,

최근에 세무조사 당하신

모 사교육 강사님의 말로 마무리하겠다.


애들만 불쌍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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