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방은 햇빛이 잘 들고, 크고 넓었다. 보금자리의 개인 캡슐을 몇 개나 합쳐 놓은 것 같았다. 나는 어항에 갇힌 고기처럼 멍하니 여자를 지켜보거나, 탈출을 대비해 여자가 나가고 텅빈 방을 구석 살폈다. 여자는 아침이면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고 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했는데, 라디오에서는 주로 #2 우호 보금자리의 구조 소식이 흘러나왔다. #2 우호 보금자리의 구조는 더뎠고, 내부는 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좋지 않은 소식 뿐이었다.
‘라이카는 지금쯤 나왔을까? 나왔겠지. 나를 찾고 있을 거야.’
또 다른 날이 밝았는데도 탈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먹이를 먹지 않은지 한참이 지나서 이제는 기회가 와도 탈출을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면서 비몽사몽 눈을 떴다. 여느 날처럼 라디오에서 뉴스가 나온다.
“속보입니다. 지난주부터 붕괴되기 시작한 우호 #2 보금자리의 중앙광장 아치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침수가 진행되고, 진흙이 함께 쏟아져내리면서 흙과 바닷물의 무게로 인해 #2 우호 보금자리의 전체가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붕괴 위험이 제기되기 시작한 지난달부터 구조를 서둘렀으나 전원 구조에는 실패했습니다. 보금자리에 남은 인원이 5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상황은 속보로 전해드리겠습니다.”
‘뭐라고!!! 보금자리가 무너졌다고!’ 눈앞이 하얘졌다.
“어떡해! 흑흑 그 애를 꼭 만나고 싶었는데... 흑흑흑”
여자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지 갑자기 울다가 그녀의 아버지의 말에 방 밖으로 나갔다.
“수정아! 나는 지금 바로 보금자리 구조 현장으로 가봐야겠다. 아니, 너는 왜 우니?”
“뉴스 들었어요. 아버지가 말해주신 그 아이, 못 나온 거죠? 저랑 닮았다는 아이요. 혹시 나왔나요?”
“아. 갈루아 말이냐? 못 나왔다. 사실 갈루아만 먼저 나오게 하려고 사람을 보냈는데, 거주 캡슐에 없더구나. 찾을 수도 없고, 너를 생각해서라도, 꼭 데려오고 싶었는데, 안타깝게 됐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단 가봐야겠다.”
방 밖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의 소리가 라디오 소리와 겹쳐서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보금자리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소식 같았는데, 갈루아 이름을 들은 것 같았다. 설마,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내가 잘못 들었을 것이다.
“하. 세상에 딱 우리 둘 뿐이었는데, 그 애가 못 나오다니! 세상에 나 혼자 뿐이라니!!! 흑흑흑”
여자가 울면서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지금 갈루아라고 했어? 갈루아라고 한 거 맞지?”
“어머. 얘 진짜 말을 하네!”
“갈루아라고 한 거 아니야? 갈루아가 어떻게 된 거야? 제발!!”
“갈루아를 너도 아니?”
“응. 그러니까 갈루아가 잘 나온거지? 제발...”
“네가 그 애를 안다고? 나처럼 녹색 피부에, 귀가 펼쳐지고, 이렇게 손가락 사이에 막도 있고?”
“그래서! 갈루아가 괜찮은 거지? 괜찮다고 해!!”
“미안해. 갈루아는 못 빠져 나왔대. #2 보금자리가 이제 완전히 붕괴 됐어.”
“확실해? 그럴 리가 없어. 갈루아가 아 아! 갈루아! 아! 아... 아니야 아닐 거야. 갈루아가 못 빠져 나왔을리가 없어! 보금자리 출구에 가보게 해줘!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제발...”
“한 번도 갈루아라는 아이를 보지는 못했지만, 나도 슬퍼, 나랑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꼭 만나보고 싶었거든. 이제 세상에서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 거잖아. 그래. 나도 내 눈으로 가서 확인하고 싶어. 물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 그런데, 네가 도망치면 어떻게 해? 이제 나는 너한테 궁금한 점이 무척 많아졌는데...”
“이제, 도망칠 이유도 도망갈 데도 없어. 지금까지 출구로 가서 갈루아가 올라오는 것을 기다리는 게 유일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 정말, 정말 갈루아가... 갈루아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이제...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하지. 살아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지...
아......... 아..”
“정말 도망가면 안 된다. 그리고 가기 전에 너 뭐라도 먹어야 해. 너처럼 신진대사가 빠른 동물들은 쉽게 쇼크가 오거든.”
여자는 주사기로 주려던 것과 같은 우유 냄새가 나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죽 같은 것을 줬다. 먹는 동안에도 쉴새 없이 눈물이 흘러 음식이 달콤했다가 짭조름해졌다. 흐윽 흐흐으흑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울음 섞인 숨 사이에도 달콤한 음식의 맛이 느껴지는 것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설사 만나지 못하더라도 갈루아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 먹었어. 이제 데려가 줘!”
“가기 전에 목줄을 하자, 그편이 너도 편할 거야. 기계 때문에 목줄을 채우기가 쉽지 않네, 이 기계 덕분에 말할 수 있어서 떼내면 안 되겠지?”
“절대 안돼! 갈루아가 만들어 준 거니까”
“아! 그 아이가 이걸 만들었다고? 연구센터에서 만든 게 아니란 말이지? 정말 그 앨 꼭 만났어야 했구나! 아직 네가 말하는 것은 우리만 아는 비밀로 해두자. 너나 나나 피곤해질 테니까.”
절대 도망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한 뒤에 차를 타고 천막들이 줄지어 모여 있는 #2 보금자리 구조 본부로 갔다. 여자는 주머니에 나를 넣고 차에서 내려 여러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나부진 장관님 따님 아니십니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2 보금자리 사망자 명단 확인하러 왔습니다.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믿을 수가 없어서요.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요.”
“그러면 안내할 담당자 한 명 붙여드릴테니, 확인하시죠.”
구조본부는 멀쩡한 2층 건물로 된 곳이었고 이미 철수가 시작 중이었다. 안내를 받아 확인한 구조현황기록에도, 마지막으로 구조된 사람들 사이에도, 구조를 마치고 지상에서 임시 주거지에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도 녹색 피부의 수줍은 소년은 찾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 됐네, 그 아이는 정말 나오지 못한 것 같아. 일단 돌아가자. 더 이상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럼, 들려야 할 곳이 있어.”
여자와 함께 나무 아래 굴로 돌아가 숨겨뒀던 가방을 가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 번역기를 꼭 찾아와야 했어. 갈루아가 이걸로 다른 누군가도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하면서... 제멋대로... 도시락통에 가둬서 지상으로 올려보냈지. 다시.. 만나면... 흑흑 가만 안두려고 했는데...”
“그랬구나. 그런데 이게 왜 필요했던 거야? 너는 어차피 번역기를 심어서 말을 할 수 있잖아.”
“갈루아 부모님이 말을 못 하는 분들이었거든, 아버지의 노래를 듣고 싶어서 사람을 위한 번역기를 만들었어.”
“인간용 번역기라고? 이게 필요할까? 내가 좀 볼 수 있을까? 아! 지금까지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너를 처음 봤을 때, 당연히 연구센터에서 네가 달고 있는 기계를 만든 줄 알았지. 그래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야. 너는 정말 운이 좋구나. 나는 오가노이드 컴퓨터 연구를 하고 있어. 그렇게 실험을 하면서도 왜 이렇게 만들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구식 번역기를 이용해서 만들었네. 조잡하지만 간단한 구조로 잘 만들었군, 중학생 소년이 이걸 만들었다니! 잘하면 작동할지도 모르겠는데...”
나수정은 조잡하다면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갈루아는 천재야. 이건 잘 작동했어.”
“작동한 걸 어떻게 알아? 이건 두개골을 뚫어야 심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갈루아와 아빠 집사가 이걸 직접 자기 머리에 심었으니까. 그래서 우리 셋이 이야기할 수 있었지.”
“그것 때문에 직접 두개골을 뚫고 이것을 심었다고? 무섭게 감상적인 소년이었네.”
“갈루아가 이걸로 다른 사람도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했어.”
“그래 그럴 수 있을 거야. 기술이란 건 한 사람의 간절함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때도 있으니까. 어쩌면 우리가 만난 것은 운명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