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시집와서 얼마나 좋니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OO야, 너는 우리 가정에 오게 돼서 얼마나 축복받은 거니~" (What???)
신혼여행 후 시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갔을 때 자리에 앉기도 전에 들은 말이다. 어색한 긴장 속에서도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그러니까 저 말씀은 이 훌륭한 가정에 내가 합류하게 되어 참으로 복도 많~은 며느리다. 이 말씀이지? '
차라리 잘못 알아들은 것이었으면 했다. 참으로 해사하게 웃으며 말씀하셨기에. 한 번 더 같은 말을 듣고는 도대체 무슨 요지경 속에 발을 디딘 것인가 괴로워했지만 뒤돌아 나갈 용기가 없었다.
(당시 시대 분위기상) 노총각이라 불리던 30대 중반 남편의 결혼을 제일 먼저 반긴 건 시부모님이셨다. 수년간 남편의 결혼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만난 지 120여 일 만에 프러포즈를했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놀라 얼떨결에 수락했다. 남편은 프러포즈가 끝나기가 무섭게 4개월 후로 식장을 예약하며 불도저처럼 결혼을 밀어붙였다. 병상에 있던 엄마 핑계를 대며 돈을 벌어 병원비에 보태야 한다는 둥, 먼저 결혼식이 예정된 사촌 오빠의 핑계를 대며 두 절기 정도 미루자고 했다.
며칠 후, 이 소식을 들은 시부모님이 주말에 집으로 초대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거절에 약한 나는 마지못해 예비 시부모님을 방문했다. 대문이 열리자 환하게 두 팔을 벌려 안아주시며 나를 맞이해 주셨다. 이상한 곳에 온 것은 아니구나 잠시나마 안도했다. 어색함 속에서 차를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은 나를 방으로 데려가셨다. 따라 들어오려는 아들을 손짓으로 한 큐에 보내버리며.
"OO야, 잠깐 따로 얘기 좀 하자."
교무실에 끌려가는 사고뭉치처럼 작은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방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자마자 어머님은 문을 잠그셨다. 그때부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미소는 어려있지만, 어린아이를 혼내는 단호한 표정으로 물으셨다.
"OO가 돈을 많이 못 모아서 더 모으고 결혼하고 싶었다며. 얼마 모았니?" 한쪽 팔을 테이블에 기대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셨다. 당장 대답하라는 듯이.
순순히 대답하자 어머님은 주판알 튕기듯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하시더니 결론을 내셨다.
"난 예단 크게 필요 없으니까 그중 절반은 이모 삼촌들께 이불 사드리고, 나머지는 우리 이불 세트하고 아버지하고 옷 해 입을게 "
당시 나는 27살이었다. 친구들이나 선배들조차도 결혼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 예단이고 이불 세트고 알 수 없는 외계어였다. 무엇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줏대 없이 배시시 웃다가 겨우 풀려났다.
갇(?)혔던 작은 방에서 나오기 전에 어머님께서 흡족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너 온다는 얘기를 듣고 꿈을 꿨는데 꿈에 OO가 나온 거야. 나를 위해 곱게 이부자리를 펼치고 어머님 주무세요. 하고 다소곳하게 말하더라고."
순종적인 며느리를 얻는다는 예지몽을 꾸시기라도 한 걸까?
그 시절 내가 보아온 드라마에는 시어머님이 대놓고 며느리를 구박하고 폭언을 일삼는 장면이 빠지지 않았다. 그들과 나는 달랐다. 나는 밥도 떳떳하게 먹고(오히려 억지로 많이 먹어야했다.), 하루종일 설거지만 하도록 노동을 강요 당한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면 좋은 시댁이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여봤지만, 친절한 미소 뒤에 숨어 있는 통제에 질식할 수 있음을 점점 깨달았다. 매주 주말마다 시댁을 방문해야 했다. 병원에 묶여 딸을 기다리는 엄마를 뒤로 한 채 시아버지 병원을 쫓아 다녀야했다. 당신들의 웃음은 늘어 갔으나 20대 고단한 청춘의 삶은 파스락 부서져 갔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알게 되었다. 듣고만 있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하란다고 다 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을.
그렇게 만 13년을 살아온 나는 아직도 시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순종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며느라기에 나오는 첫째 며느리처럼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길다면 긴 세월 K-며느리로 살아온 내 인생을 더듬더듬 뒤돌아 가본다.
며느리들의 흔한 하소연쯤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서러웠던 지난 세월을 토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은유 작가는 '쓰기의 말들'에서 말했다.
'착한 딸,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의 도덕에 결박당해 시들어간 청춘, 스스로 부과한 도덕적 책무를 이고 지고 사느라 삶을 사막으로 만들어 버린 낙타 같은 날들이 스쳤다.'
'스스로 부과한 도덕적 책무'로 이 '낙타 같은 날'들에 갇혀온 나를 해방하기 위해 시작해 본다.
며느리 해방일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