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 불려 가 밀실 대화를 마친 후,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신입 사원으로 조직에 적응하느라 정신없기도 했고, 결혼에 깊은 고민도 없었다.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연애 8개월 만에 결혼하는데 동의했다.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나 화려한 꽃으로 뒤덮인 버진로드에 무관심했기에 결혼 준비는 수월했다. 시어머님도 약속한 것처럼 예단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받은 건 거의 없다. 결혼 준비 자체는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었으나 복병은 상견례였다.
워낙 서두른 결혼이었기에 결혼 두 달 전쯤 상견례를 잡았다. 장소는 내가 알아봤다. 양가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어느 정도 격식 있는 장소를 찾느라 고심했다. 주말로 잡은 상견례 날은 유난히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쳤다. 아빠, 오빠만 단출하게 참석한 우리와는 달리 남편 쪽은 부모님에 누나 그리고 어린 조카 2명까지 있어 북적였다. 수적으로 열세였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흑임자죽을 후루룩 먹으며 '이렇게 OO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 하다고 식상한 말을 한 두 마디씩 주고받았다. 갓 졸업한 취업준비생이던 연년생 오빠는 어른들 대화에 끼지 못하고 조용히 젓가락질만 했다. 어린 시조카들은 어른들 눈치 보며 발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메인 요리가 본격적으로 상에 깔리자 어머님도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OO이가 공부를 잘해서 학원 한 번 제대로 안 보냈어요."
"우리 OO이가 어릴 때부터 사고 한 번 안쳐서 혼낼 일도 없이 키웠어요."
"우리 OO 이는 성격이 좋아 친구도 많아서 반장을 도맡아 했어요."
"우리 OO 이는 장학금 받고 학교를 다녀서 돈들 일도 없었거든요."
남편 영웅담이 영원할 것처럼 끝없이 흘러나왔다.
레퍼토리가 떨어졌는지 나중엔 근사한 상견례 장소를 고른 남편의 안목을 치켜세우기까지 이르렀다.
"우리 OO 이가 이런 멋집 한정식 집도 참 잘 골랐죠~?" (어머님, 제가 골랐는데요.)
젊잖은 아버님 마저 남편이 얼마나 잘난 아들인지 추임새를 넣기 시작하자 상견례는 시댁 독주회로 변했다.
디저트가 들어오며 긴장 풀린 5살 시조카가 앙증맞은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 덕분에 훈훈하게 웃으며 상견례를 마무리했다.
상견례가 끝나고 시댁 식구들이 먼저 떠났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아빠에게 말했다.
"어머님, 상견례 자리에서 너무 아들딸 자랑만 하다 가시는 거 아냐?"
아빠는 덤덤히 말했다.
"네 엄마 있었어도 만만치 않았을 거야. 볼만했겠구먼."
"아빠, 짜증 나지 않았어?"
"뭘 짜증 나.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 거지. 그리고 O서방 어머니도 아들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셨겠냐."
오빠가 보다 못해 거들었다.
"그래도 심하긴 하더라."
아빠 진짜 속마음은 어땠을까.
결혼은 코 앞이고 사내 커플이라 지금 와서 무를 수도 없다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은 멀쩡해 보이니 그저 딸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결혼해서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지.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댁에 갔을 때였다. 남편이 친정 오빠의 취업 소식을 시어머님께 전했다. 어머님이 갑자기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니 오빠 물고기 닮았대. 웃기지 않니~"
무슨 자다가 코털 빠지는 소리인고 하니 상견례 자리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던 조카가 한 말이란다. 상견례 후 친정 오빠가 물고기 닮았다고 하며 '물고기 삼촌'이라고 불렀다는데 아이야 무슨 잘못이겠는가. 굳이 내게 전달하며 '물고기래, 물고기. 큭큭' 하며 의도를 알 수 없는 웃음을 멈추지 않은 건 시어머님과 남편인데. 졸지에 물고기 오빠를 두게 된 나는 어항 속 금붕어처럼 뻐끔뻐끔 물이나 들이켜고 있을 뿐이었다.
손들고 말하는 행위를 미덕으로 삼지 않았던 시절, '여자는', '남자는' 따위의 날 선 구분이 존재하던 시절, 어른에게 말대꾸를 하면 안 된다고 배웠던 시절을 보낸 여자. '착한 며느리' 이름표를 움켜쥐고 놓지 못하던 여자. 시절이 펼쳐놓은 촘촘한 그물망에 자처하여 걸려 있는 여자. '그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작은 상처도 쌓이면 곪기 마련인데 내 상황 정도면 양호하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기에만 급급했다.
'더 심한 경우도 많은데 이 정도야. 그래도 설거지를 많이 안 시키잖아. 소리를 지르는 건 아니니까.'
타인의 미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고 싶었다. 더군다나 시댁이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입을 다무는 것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왜냐고 물었어야 했다.
말실수에 발끈해 급발진하는 '왜'가 아닌
나의 삶을, 가족을, 내 인격을 '왜' 그리 다루는지 물었어야 했다.
남편과 시부모님에게. 그리고 가장 먼저 나에게.
웹드라마 며느라기에서 여주인공 민사린이 독백한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한 순간들이 자꾸자꾸 떠오르는 걸. 어떡하지."
혼란 속에서 결혼 생활 시작하며 나를 지키지 못한 순간들이 무수했다.
첫 아이를 낳고서야 겨우 자각하기 시작했다. 진짜 '나'로 서지 않으면 나와 아이를 지키는 일이 순탄치 않겠구나.
뒤늦게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부과한 도덕적 책무'를 한 겹씩 벗기기 시작했다. 속도는 느렸지만 시작한 이상 멈추지 않았다.
타인이 원하는 내가 아닌, 고유한 빛깔로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나로 서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