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동갑내기 직장 동료를 마주쳤다. 임신 소식을 얼마 전에 들은 것 같은데 배가 제법 나와 있었다. 30주가 거의 다 되었다고 하며 아들이라 알려왔다. 마흔이 훌쩍 넘은 터라 한 명만 낳을 계획인데 딸을 원했었기에 조금 서운하다고 말했다. 다만, 시부모님이 손자 보길 원하셔서 한편으로는 잘되었다 했다.
첫째를 낳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아들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축복 앞에서도 마음이 씁쓸해졌다.
결혼은 서둘렀지만 아이는 천천히 가지고 싶었다. 회사에서 아직 이리저리 휘둘리는 신입사원이었고, 친구들은 아무도 결혼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남편 나이를 들먹이며 빨리 가지라 섣부른 조언을 건넸지만 신혼 생활을 즐기고팠다.
결혼 2년 차에 임신 계획을 세웠다. 맘먹으면 금방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줄 알았다. 생각보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어렵사리 임신에 성공했으나 초기에 유산했다.
유산 후 9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임신에 성공했다. 아들, 딸 누굴 원하냐는 식상한 물음에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한때는 막연히 딸을 원한적도 있지만 유산을 겪으며 아들이던 딸이던 건강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임신 소식을 알리고 난 후 처음으로 시댁을 찾았다. 어머님은 우리 부부를 보자마자 격하게 축하해 주었다. 성급히 배 위로 손을 얹으면서 축복기도가 시작되었다.
"주여... 손자를 주셔서 감사하고... 이 아들이 자라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초기라 똥배만 튀어나온 배에 툭 올려진 손이 부담스러움은 둘째치고 손자라니? 아들이라니? 성별이 나오려면 몇 주가 남았는데.
어머님은 밥을 먹으며 태몽을 들려주었다. 전형적인 아들 태몽이라했다. 아주 용맹하고 늠름한 호랑이 두 마리가 나온 꿈이었다. 아들이 아니면 큰일 날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에게 불편함을 드러냈다. 어머님은 왜 자꾸 아들, 손자 하냐고. 딸이면 어쩌려고. 남편은 꽤 불쾌한 기색이었다. 손자, 손주 말이 비슷해 그런 거지 뭘 심각하게 생각하냐며 되려 따졌다.
"기도할 때 아들이 자라서라고 하셨는데?"
"그건 하나님 아들이란 상징적인 뜻으로 그냥 하신 말씀이지." 라며 예민한 여자 취급했다.
그 뒤로도 시어머님은 만날 때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호랑이 태몽, 손자, 아들을 읊었고 나는 성별이 나올 때까지 불안에 휩싸였다.
남편이 한마디 해주길 바랐지만 그도 아들을 바랐던 건지 진짜 어머님이 손자를 바란게 아니라 믿고 싶었는지 아들 얘기가 나올 때마다 웃고만 있었다. 마침내 성별이 나오고 안도했다. 내 새끼 성별에 눈치를 본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뱃속에 작은 존재가 생기면서 용기의 씨앗도 함께 자라났다. 남편이 듣기 싫을까 봐 속으로 삼켰던 많은 말들이 있었다. 왜 이렇게 시댁에 용돈을 많이 드려야 하는지. 왜 명절에는 시누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왜 시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교회 반주를 하기 위해 퇴근 후 사비를 들여 피아노를 배우러 다녀야 하는지.
탯줄에 연결된 생명체가 전달해 주는 따뜻한 온기 덕분이었을까. 착한 아내의 가면부터 벗어던져야겠다 마음 먹었다. 남편에게 내 감정을 알리기 시작했다. 귓등으로도 안 들을지라도 '왜'라는 물음을 계속 던졌다.
10년이 걸렸다. 남편이 더 이상 예민한 여자 취급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데까지.
낙수물이 바위를 뚫듯 먹먹한 목소리가 유교적 효심으로 가득 찬 메마른 땅에 침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