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 할거지?

by 남봉

얼마 전, 첫 아이를 낳은 절친을 찾았다. 2시간 넘게 걸리는 친구 집까지 산 넘고 물 건너간 보람 있게 아가는 정말 작고 소중했다. 애 둘 낳고 키웠으면서 뭘 그리 쩔쩔매냐고 친구가 놀렸지만, 오랜만에 순두부 같은 아이를 안고 있자니 떨려서 친구에게 금세 도로 안겨주고 말았다. 엄마 품으로 돌아간 아기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지 작은 몸통을 부풀리며 밥을 내놓으라 호통 쳤다. 친구 남편이 능숙하게 분유를 태워와 한쪽 팔로 아기를 안고 먹이기 시작했다. 친구가 말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기도 하고, 3개월 후 복직이라 퇴원 하자마자 젖을 말리고 분유를 먹였다고.


"너 애들 모유 얼마나 먹였다고 했지? 마음에 좀 걸리긴 했는데 마흔 넘어서 애 낳고 모유까지 먹었으면 나 지금 몸져누워있을걸."


"시어머님이 하도 모유 먹이라고 해서 뭣도 모르고 첫째 돌 때까지 먹였잖아. 양도 적어서 애도 나도 고생만 하고 솔직히 후회돼. 모유 먹였어도 우리 애들 병치례 하는 거 봐. 근데 너희 시부모님은 눈치 안 주셔?"


"말도 마. 시어머님 지금 나랑 말도 잘 안 하셔. 애가 모유 먹여야 튼튼하게 자라는데 어쩌고 저쩌고. 에혀."


"네가 소아과 전문의인데, 어련히 알아서 튼튼하게 잘 키우겠어? 왜 그런 거 가지고 힘들게 애 낳은 너를 가지고 구박이래."


세상이 바뀌었다고 누가 그러던가. 모유수유 같은 문제를 가지고 아직도 눈치를 주는 시댁이 있는데 말이다.




입덧이 한창일 무렵, 어머님은 매주 만나는 나를 붙잡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애가 나올 때 엄마 몸속에 안 좋은 피를 다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무조건 자연분만 해야 해. 그래야 엄마가 건강해져. 제왕 절개 그거 못쓴다."

"모유수유 해야지 애가 면역력이 키워지고 너도 살도 빨리 빠지고 몸 회복이 빠른 거야. 무조건 모유수유해야 해."

당신 딸은 모유가 진짜 안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분유 먹인 거라면서. 출산 전이라 모유가 잘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나를 두고 모유 예찬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 제왕절개도 무서웠고 자연분만도 무서웠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뱃속 아가를 느낄 때마다 몽글몽글 신비한 감정이 일었지만, 몸속에 생긴 낯선 존재로 불안한 마음도 함께 피어올랐다. 산모 교실에서 영상까지 봐가며 출산을 머릿속에 그려보아도 출산에 대한 공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초보 산모를 짓눌렀다.


태아를 품고 있다는 사실에 적응하기도 전에, 찬찬히 출산방법이나 수유방법을 알아보기도 전에, 스파르타 교육처럼 주입된 낯선 자연분만, 모유수유라는 단어가 버거웠다. 남편은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머님이 나를 붙잡고 주입식 교육을 할 때마다 석가모니의 인자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출산 전, 용기 내어 말했다.


- 아이가 거꾸로 있어 제왕절개할 수 있다고. (나중에 극적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 모유가 적게 나오면 분유를 먹여야 하니 젖병과 분유를 미리 넉넉하게 준비해 놓겠다고.


어머님에게 직접 얘기는 하지 못하고 남편을 통해 전했다. 직접 마주했을 때 돌아올 답변들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 원래 거꾸로 있다가도 나올 때쯤 되면 돌아와.

- 미역국 많이 먹음 잘 나와.


상대에게 가닿지 않을 목소리였지만 그 행위만으로도 결혼 후 시댁식구들 앞에서 희미해졌던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시댁은, 남편은 의례 그런 거라고 포기하고 소리 내지 않았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점점 더 무딘 칼처럼 녹슬어 버리고 말았으리라.


그렇게 온전한 내 편이 없는 곳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했다. 개미가 국토횡단하는 것 마냥 더딘 속도라 10년이 걸렸을지라도. 적어도 앞으로 나아갔다.


어리바리 낳은 첫째 출산 후, 몇 년이 지나 둘째를 낳으며 완벽하게 이해했다. 자연분만이니 모유수유니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고.




추석을 한 달여 앞둔 때였다. 친구는 말했다.


"이번에 시댁에 못 갈 거 같아. 남편만 보내려고. 안 가서 욕먹나 가서 애 모유 안 먹인다고 욕먹나 매한가진데 그냥 안 가고 욕먹으련다."


나는 말없이 다 큰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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