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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Jan 17. 2024

일로 만난 사이

나의 친구들

  지금은 은퇴 2년 차. 어떤 곳에도 속해있지 않은 처지라서 그런지 사회생활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연대감이 점점 느슨해진다. 대부분은 시절인연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매우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과도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멀어지고 있어 조금 아쉽다.  


  어느 날 오후 발신인을 알 수 없는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엔 지인보다 보험상담원에게 전화를 훨씬 더 자주 받고 있어 받을까 말까 머뭇거리다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혹시라도 중요한 용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전화를 받았더니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언뜻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아 “누구세요?”라며 물었다. 내가 퇴직할 때도 연락이 없던 옛 직장 동료였다.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 친구는 내 근황이 몹시도 궁금한지 이것저것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사실 나는 그 친구의 근황이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그 친구와 나는 동갑이고 입사시기도 비슷했다. 신입 때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고 게다가 친구의 남편은 나와 입사동기라서 표면적으로는 가깝게 지낼 법도 한데 무엇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 후 서로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다가 몇 년 전 다시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내가 그 친구의 직속상사로 만나게 된 것이었다. 나보다 승진이 조금 늦어 상하관계가 되어 더 어색한 사이로 1년 가까이 지냈다. 그런 사이였던 그 친구가 용건도 없는데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 좀 의아했지만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반면에 일로 만났지만 아주 친하게 지냈던 한 친구가 있다. 나는 결혼하자마자 남편 직장 근처로 근무지를 옮겼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역에서 결혼생활도 직장생활도 낯설어서 적응하느라 매우 힘이 들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도움을 구할 사람이 전혀 없다 보니 혼자서 일일이 찾아서 해결해야 했다. 결혼할 때 신혼살림을 장만했지만 막상 살림을 해보니 필요한 살림살이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직장에서 동갑내기 친구를 알게 되었다. 싹싹하고 밝은 성격인 그 친구는 그 지역 토박이인 데다가 입사와 결혼을 나보다 한참 먼저 한 인생선배였다. 그 친구는 선배답게 먼저 다가와서 내가 어려워할만한 일들을 살뜰히 챙겨주곤 했다. 그 당시 나는 자가용 승용차가 없어서 시내버스로 출퇴근을 했다. 중소도시라서 배차간격이 길어 한 번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그런 내 사정을 짐작하고 카풀을 하자고 먼저 제안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많이 의지하고 서로 속 얘기도 나누면서 지냈다. 덕분에 타지에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나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건강보험 가입을 권유했다. 그 당시 친구의 친정 올케가 보험설계사였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도와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거절할 생각도 했지만 그동안 그 친구 덕을 많이 봤기 때문에 한 번만 부탁을 들어주려는 마음으로 보험상품에 가입해 주었다. 문제는 그 일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른 부탁을 해왔다. 당황스럽고 친구가 부담스러워졌다. 그 후 나는 다른 지역으로 근무처를 옮기면서 그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졌다. 그 친구가 먼저 퇴직하면서 5년 넘게 연락이 끊어졌다가 작년 여름 카톡으로 메시지를 받았다. 그 친구의 모친상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잠깐 망설였다. 서로 연락을 끊고 지낸 지가 몇 년이 지났는데 갑자기 부고를 알려서 심경이 복잡했다. 모른 척할려니 마음이 편치 않아 부의금만 보냈다. 내가 힘들 때 의지가 되었던 친구와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간관계에서 늘 소극적이었다. 먼저 다가가기보다는 누군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길 바랐다. 설령 먼저 다가와주더라도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켜보았다. 당연히 인간관계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연락을 해온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그들은 나에게 하소연하고 싶었거나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 친구는 남편 병간호하느라 휴직까지 한 상황이었고, 다른 친구는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지 못했다. 내가 감내할 고통이 더 크다고 생각하면서 앞가림하기에 급급해 그들에게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이런 무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휴대폰에는 여전히 내 전화번호와 이름이 저장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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