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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Jan 24. 2024

#5. 나에게 글쓰기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거실 한편에 화분 하나를 키우고 있다.  몇 년 전에 선물로 받은 호접란이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도톰한 잎사귀 사이로 꽃대를 내밀고 천천히 꽃을 피운다. 쭉뻗은 꽃대에서 피어난 꽃봉오리를 바라만 보아도 우아한 향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나에게 소소한 기쁨을 선사했는데 분갈이를 한 뒤로 그만 예전의 생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아 화분에 담긴 흙을 파낸 후 뿌리를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군데군데 썩어서 시커멓게 변색된 상태였다. 썩어버린 뿌리를 가위로 잘라낸 뒤 물에 깨끗하게 씻어서 말려 새로 산 화분에 심어 주었다. 매일 살펴보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물을 주었는데도 벌써 몇 개월째 겨울잠 자듯 더 자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파리를 손으로 만지다가 미세한 변화를 발견했다. 흙을 살짝 들추어 보았더니 좁쌀처럼 움튼 뿌리가 보였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생장을 멈춘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잎을 내고 꽃을 피우기 위해 열심히 뿌리를 키우고 있었다.


  퇴직을 하고 나서 소일거리를 찾던 중 우연히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 세월을 그냥 흘러간 강물처럼 떠나보내기가 너무 아쉬워 그 시간들을 글로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직장과 가정을 돌보느라 지칠 대로 지쳤기 때문에 무엇보다 나를 보듬어주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일기 형식으로 써보았다. 마음에 담아 둔 감정들을 내키는 대로 쏟아냈더니 다 쓴 글 속에는 한탄, 원망이 가득 담긴 넋두리 대잔치가 되고 말았다. 그런 방식으로 계속  금방이라도 우울이라는 늪에 빠질 것 같았다. 더구나 몇 달을 외출도 하지 않고 집안에서 지냈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까지 겹쳐 환기가 시급했다. 일단은 집을 탈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을 찾아가 보았다. 이끌어주는 이가 있고 함께 나아가는 이들이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글쓰기 선생님은 일주일에 글감 하나씩을 제시해 주시면서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일단 마음속에 웅크린 생각을 꺼내보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수줍게 꺼내서 글을 다른 수강생들 앞에서 발표했을 모두들 무한칭찬을 해주셨다. 실로 오랜만에 평가가 아닌 칭찬을 들으니 다시 쓸 힘이 생겼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또다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글감을 떠올리고 쓸 마음을 먹어도 정작 책상까지 가는 길은 마라톤 결승점보다 멀게 느껴진다. 어찌어찌 책상에 앉게 되더라도 쉽사리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없다. 머릿속에서는 단어들이 서로 뒤엉켜서 실마리를 찾느라 애를 쓴다. 한 문장도 시작하지 못하고 멍하니 텅 빈 노트북 화면만 쳐다보기 일쑤다. 그렇게 난관에 부딪힐 때면 첫 마음을 떠올려본다. 글은 지난 시간을 더듬어 보면서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려는 것일 뿐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쓰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욕심을 내려놓고 마침내 첫 문장을 시작하게 된다.


   어쨌든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뿌듯하다. 그저 완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고 썼다가 지우 다를 반복하던 지난함을 멈출 수 있어 홀가분하기까지 하다. 그 자체로 나에게 한걸음 다가간 기분이 든다. 그러므로 나에게 글쓰기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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