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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Feb 22. 2024

#8. 내 삶의 전환점

갑상선암 투병에서 깨달은 것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알약 하나를 먹어야 한다. 약을 먹지 않으면 몸이 나른해지고  예민해진다. 약을 먹게 된 것은 12년 전 갑상선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획기적인 신약이 개발되지 않는 한 아마도 평생 지켜야 할 아침 루틴이 될 것이다.


일과 육아를 하느라 바쁘게 살던 40대. 유독 피곤함을 많이 느꼈고 몸이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을 만큼 무기력했다. 만성피로이겠거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가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갑상선초음파 검사를 했더니 이상소견이 나왔고 바로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남편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 검사결과를 들었는데 갑상선암이라는 진단명을 듣는 순간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남편이 더 충격을 받았는지 진료실을 나오면서 서울 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자고 말했다. 오진이기를 바라는 심정이었지만 서울 모병원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그때서야 남편도 결과를 받아들였고 바로 수술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술이 끝나면 금방 일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상처도 잘 아물었다. 그러나 복병은 따로 있었다. 수술 후 3일째 되는 날부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려고 애써도 목이 꽉 막혀 거친 숨소리만 밖으로 흘러나왔다. 주치의는 일시적 증상이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그래서 퇴원을 했고 바로 6주간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나트륨과 요오드가 들어있는 음식을 최대한 제한하는 식단을 6주간 지속했는데 그것은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한 사전 준비 단계였다. 가뜩이나 수술하느라 허약해졌는데 음식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어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게다가 남편과는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어 평일에는 초등학생 애들 둘 데리고 지내느라 온전히 회복에 전념할 수 없었다. 혼자 그 모든 것을 감당하며 지내다 보니 마음도 점점 약해졌다. 가끔씩 두 아이가 서로 싸우기라도 하면 잔뜩 잠긴 목소리로 타이르면서 속으로는 속상해서 울기도 했다. 어렵사리 6주간의 식이요법을 끝내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다시 병원으로 갔다. 1인 음압병실에 3일간 입원해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 퇴원하고 나서도 일주일 이상 안방에서 격리생활을 했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모두 마쳤는데도 목소리는 여전히 쉰소리만 났고 그 상태로 병가기간이 끝나서 어쩔 수 없이 복직했다. 우려했던 것처럼 목소리 때문에 일하는데 지장이 많았고 결국 일주일 만에 다시 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상으로 빨리 복귀하고 싶은 바람과 달리 목소리를 회복하는 데는 무려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마음대로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너무 답답해서 난생처음 기도를 하기도 했다. 목소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고 맹세라도 하고 싶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비록 목소리를 빨리 되찾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소중한 것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할 줄은 알면서도 가진 것을 감사할 줄은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깨달음다. 몸이 아파서 어쩔 수없이 쉬게 되면서 그동안 지치고 피폐해진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절망의 순간은 오히려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 없이 과속하며 사느라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다가 그제야  귀를  기울여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신에게 물었다. 그때부터 일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 후 수년동안 퇴직을 꿈꾸며 살았다. 지금까지는 의무와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는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고민을 거듭하고 가족을 설득한 끝에 마침내 30년에 걸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기에 이르렀다. 이제야 제약받지 않는 환경에서 나만의 꿈을 꾸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암과 그로 인해 목소리를 잃고 좌절한 적도 있지만 그 순간이 오히려 행운이었다. 넘어져본 사람만이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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