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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Oct 11. 2023

하마스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일개 군벌 조직일 뿐입니다.

정권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이스라엘로 돌아온 유대인은 독일에서 당한 일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되갚아 줬다. 너무 잘 알려진 탓에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근거로 양비론을 펼치거나 하마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간혹 보인다. 하마스 옹호자는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지 말라거나 이스라엘 사람도 팔레스타인 박해를 방조했으니 무고하지 않다는 등 작은 폭주에 가까운 말을 쏟아내고 있다. 여기서 하마스 옹호론자는 두 가지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하나는 전략 문제고, 다른 하나는 정당성 문제다.

하마스 옹호론자는 하마스의 폭주가 전략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복수의 통쾌함에만 집착한다. 하마스는 무장투쟁을 벌이더라도 더 나은 방법과 시점을 고를 수 있었다. 좋은 선례가 분명 있었다.

소련군을 물리친 무자헤딘 지도자이자 아프가니스탄의 국부,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장군은 하마스보다 처참한 상황에서도 선을 넘지 않으려고 힘썼다. 이슬람 원리주의자였지만, 탈레반의 테러리즘과 폭정을 뚜렷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군대가 주둔하는 지역에 최소한의 의료, 교육 인프라를 세우고 사람들의 생계를 지키려 했다. 이 점은 현지인과 해외 기자들을 통해 여러번 증명되었다. 그러면서도 마수드 장군은 카불까지 탈환하며 승리를 코 앞에 두고 있었다. 알 카에다 요원이 마수드 장군을 암살하지 않았다면, 아프가니스탄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카에다 요원에게 암살당한 뒤, 마수드 장군은 아프간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 지금은 여러 면에서 그를 닮은 아들이 여러 세력을 규합하며 탈레반에 저항하고 있다. 아버지 마수드 장군의 노력 덕에, 여러 민족과 군벌로 나뉜 반 탈레반 세력은 부족하더라도 구심점을 가질 수 있었다. 아프간 정부가 항복하고 미군마저 철수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프간 사람들은 비교적 모범적으로 탈레반과 싸우고 있다.

'약자는 명분이 무기다.' 마수드 장군이 끝까지 지키려 한 방침이다. 마수드 장군은 단순히 무력을 행사해서는 국제 사회로부터 지지받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도를 지키며 싸웠고, 이런 노력이 지금도 반 탈레반 세력의 저항 동력이 되고 있다. 이런 전례가 있는데도, 하마스가 전략적인 이유로 테러리즘을 고집해야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제로 하마스는 국제적으로 빠르게 고립되고 있지 않은가. 이게 팔레스타인 사람을 위한 일일까.

애초에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사람도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1940년대 후반, 국제연합의 어중간한 중재 탓에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수도 없이 충돌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은 옛 영토를 되찾는다며 유대인을 공격했고, 유대인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아랍 세계는 이스라엘을 대대적으로 침공했다. 이게 제1차 중동전쟁이다. 여기에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도 가담했다. 이스라엘이 승리한 뒤에도 국제사회는 여러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과 아랍 세계는 유대인 국가를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1973년, 아랍 세계는 또 한 번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했다. 이게 제4차 중동전쟁이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그 배후의 아랍 세계도 무고한 유대인이라는 걸 몰랐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무조건 가해자이고 팔레스타인이라고 해서 무작정 피해자라고 볼 수는 없다. 시오니스트 세력과 국제연합의 어설픈 중재안을 탓할 수는 있지만, 애초에 가나안 땅은 유대인의 땅이기도 했다. 만약 팔레스타인 박해 탓에 하마스의 테러리즘이 정당하다면, 팔레스타인 박해도 반유대주의와 중동전쟁 탓에 정당하다는, 지극히 친 이스라엘적인 주장은 왜 부당할까.

하마스 옹호은 약자우선주의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하마스는 무슬림 세계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군벌 조직일 뿐이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대한 독립군과 일본제국의 관계와 매우 다르다. 누가 먼저인지를 따지는 게 무의할 정도로 오랜시간 동안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은 같은 땅을 두고 서로를 공격해 왔다. 피와 눈물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선역은 없다. 그리고 지금은 하마스가 좀 더 악역이다. 하마스가 완전히 무장을 해제하기 전까지, 리버럴한 사람이 하마스를 정당하게 옹호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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