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완 Oct 14. 2023

알려고 하지 않는 보수

반지성주의는 진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대의 경제학자 겸 윤리학자 답게, 존 스튜어트 밀은 정당한 재산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논증했다. 밀에 따르면, 예로부터 재산권은 생산자의 권리였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생산한 것 또는 생산자로부터 적법하게 양도받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밀은 자연적으로 늘어난 지대를 소유할 권리와 유언 없이 상속받을 권리를 정당한 재산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마 밀은 우리나라의 법정상속제도를 비판했을 것이다.

 

"고인이 살아있는 동안에 어떻게 처분할지 정해놓지 않는 재산은 우선 자식에게 가야하고, 자식이 없다면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가야 하는 것이 올바른 질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식의 결론도 사유재산의 원리에서 도출되지는 않는다."

- 존 스튜어트 밀, 정치경제학 원리.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론의 저자로 유명하지만, 밀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여겼다. 지금도 영국에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또는 새로운 자유주의의 이론 기초를 마련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밀이 재산권을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로 봤기 때문이었다. 재산권이 도구라면 사회적 목적에 맞춰서 다시 설정될 수 있고, 실제로 밀은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특히 밀은 노동자가 기업 지분을 소유하거나 아예 기업 전체를 통제하는 사회를 적극 지지했다.


밀은 재산권의 양면을 함께 직시했다. 밀은 재산권이 개인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준다는 점을 옹호하면서도 잘못 설계된 재산권이 노동착취 등 여러 사회문제의 원인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밀은 사적인 재산권을 폐지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자유방임주의 사회보다 정의로울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현실적인 영국인 답게 도덕성이 고도로 발달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잊지 않았다.


밀은 재산권 규제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산을 가진 사람들만의 자유방임주의를 경계했다. 밀만 그런 건 아니었다. 애덤 스미스도 그랬고, 토지에 한정해서 헨리 조지도 그랬다. 훗날 이사야 벌린도 재산권을 무한정 인정하는 건 불의하다고 말했다. 자유를 강조한 사람치고 재산권을 마냥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합리적인 주류 경제학자들도 정부가 재산권만 신경써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폴 새뮤얼슨은 아예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결합하는 중도주의를 제안했다.


이런 지성사를 보면, 우리나라 보수는 굉장히 편향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보수가 말하는 자유시장 또는 민간주도경제는 출처도 근거도 불분명하다. 애초에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보수가 말하는 자유시장이었던 적이 없다. 보수가 우리나라의 발전 성과를 예찬하는 동시에 실체도 불분명한 자유시장을 바란다면 모순일 수도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보수는 일본과 미국의 보수보다 꽉 막혀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반지성주의가 진보만의 문제일까.

작가의 이전글 하마스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