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립하는 신당들
이준석과 자유주의라는 어색한 조합
이준석 대표가 신당의 컨셉을 자유주의로 잡은 듯하다. 보수적, 진보적 자유주의자와 함께하겠다고 한다. 사실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건 자유주의자들의 튼튼한 연대다. 법치와 시민정신, 합리적인 공론 형성과 같은 자유주의 가치가 무너지면, 이념 이전에 나라가 침몰할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차이를 접고, 자유주의 가치를 아끼는 사람들이 함께 좌우 포퓰리스트, 정치 극단주의자에 맞서야 한다.
정말 필요한 일인데, 주도하는 사람이 이준석 대표라서 신뢰하기 어렵다. 이준석 대표가 말하는 자유주의가 대체 누구인지 모호하다. 이준석 대표가 자유주의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념의 역사를 보면 보수적 자유주의자와 진보적 자유주의자는 몇 세기 전부터 다퉈 왔고 그만큼 차이도 상당한데, 그 거리를 어떻게 좁힐 셈일까. 애초에 이준석 대표가 차이를 봉합하는 정치를 보여준 적이 있던가.
우선 두 자유주의 진영은 경제문제를 두고 갈등할 것이다. 원래 자유주의자는 매우 실용적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자유주의자는 경제를 관리하고 복지를 제공하는 정부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자유주의라는 말이 처음 유행할 때에도 이런 의미로 통했다. 이 사람들이 훗날 사회적 자유주의자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분류되었다.
한 쪽에는 시장경제의 힘을 굳게 믿는 자유주의자도 있었다. 이들은 정부가 최소한의 역할만 맡기를 바랐다. 이들이 훗날 자유지상주의자 또는 보수적 자유주의자라고 불렸다. 둘은 법의 지배와 개인의 권리를 믿었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이런 가치를 구현하는 경제정책을 두고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20세기 초 영국에서는 경제문제 탓에 자유당 당원들이 각각 보수당과 노동당으로 흩어지면서 당이 무너진 적도 있다.
다음 갈등은 80년대 서구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자 일부가 표현의 자유보다 정치적 올바름을 앞에 두면서 일어났다. 진보적 자유주의자 중에서 약자 보호에 경도된 사람들은 사회정의에 어울리는 표현만 허락하자고 요구했고, 여기에 맞서서 보수적 자유주의자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에 섰다. 200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갈등이 벌어졌다. 이제 정치적 올바름은 북한에 대한 태도와 함께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선이다.
마지막 갈등은 대북관이다. 김대중 대통령 이래로 진보적 자유주의자는 햇볓 정책 또는 대화를 통한 평화를 지지했다. 2018년에는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손을 맞잡는 모습까지 실현했다. 반대로 보수적 자유주의자는 군사동맹과 대북제재를 더 신뢰한다. 북한이 적대행위를 멈추지 않고 핵무기도 포기하지 않으니, 우리도 부드럽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대북관 차이는 민주화 이래로 보수와 진보가 가장 치열하게 격돌하는 지점이다.
자유주의가 굉장히 광범위한 사상인 만큼, 자유주의자끼리도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는 이런 차이를 직접 겪어 본 적이 없다. 새누리당, 바른정당, 국민의힘은 계파 갈등이 심한 곳이었지 이념 갈등이 심한 곳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이준석 대표는 리버럴한 태도로 갈등을 봉합하기는 커녕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 이준석 대표가 계파 갈등을 넘어 이념 갈등까지 조율하며 리버럴 단일대오를 꾸릴 수 있을까.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상상하기 어렵다. 어느 한 쪽이 이념을 배신하지 않는 한, 이준석 리더쉽이 이끄는 리버럴 단일대오는 수도 없이 잡음을 일으킬 듯하다.
이준석 대표는 매번 새로운 걸 시도한다. 시도는 좋은데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 이준석 대표는 매 선거 때마다 큰 승리를 약속했지만, 정작 이준석 대표가 승리한 선거는 자신이 직접 출마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뿐이었다. 이준석 대표는 자신이 윤석열 대통령을 당선시켰다고 믿는 모양이지만, 그걸 수긍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다. 결과가 없으니, 무엇을 말하든 허세로 보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준석 대표가 이슈를 잘 고른다는 점 뿐일 것이다. 그런 개인기 만으로 정치를 움직일 수 없어서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