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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Nov 27. 2024

동기부여 영상을 보며 침대에 누워 있는 이유 (1)

[이유 있는 멈춤] 1장

무서운 세상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시험에서 처음 70점을 맞았다. 낮은 점수는 아니었지만 집에 당당하게 들고 갈 수 있는 점수도 아니었다. 학년이 오르면서 나는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특히 수학이 문제였다. 성적이 정체되자, 나는 미래를 비관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수업이 끝나면 진로상담선생님을 붙잡고 고민을 털어놨다. 진로상담선생님은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줬지만, 시원한 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활용했다. 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갈 때 필요한 성적과 여러 직업의 전망에 대해 조사했다. 일단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성적을 더 올려야 했다. 그것도 난제였는데 그 다음도 문제였다. 현업 종사자가 올린 글들을 보면, 공부를 보상해 줄 법한 직업을 찾을 수 없었다.


내 체력으로 공장이나 건설현장은 무리인 것 같았다. 게다가 그런 곳은 월급을 받지 못하거나 일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사무직도 중소기업에 들어가면 미래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남은 것은 대기업 아니면 공무원이었는데, 경쟁률이 너무 높았다. 나는 검색하면 할수록 초조함을 넘어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는 와중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났다.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잘 대처했다고 하지만, 그 때 우리 집은 분위기가 안 좋았다. 부모님은 돈 이야기를 자주 꺼냈고, 신경질을 더 자주 부렸다. 나는 역사책에서 읽은 대공황이 돌아왔다고 여겼다. 분명 역사 속 대공황은 금방 끝나지 않았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위기가 계속 될 수 있었다.


성적은 애매했다. 노후까지 안정적인 직업은 많지 않았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까지 일어났다. 부모님은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고 했지만, 정작 우리 집도 상황이 좋지 않아 보였다. 부모님이 노력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노력했는데 결과가 안 좋은 걸까.


정체된 성적은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공부한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가 문제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알베르 카뮈가 쓴 시지프 신화를 읽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보는 세상을 표현할 멋진 말을 찾았다.


시험 공부 끝에 취업 준비가 뒤따르고, 취업 준비 끝에 실업 압박이 뒤따르고, 실업 압박 끝에 노후 불안이 뒤따는 세상. 내가 보는 세상은 그야말로 시지프 신화 속 무의미한 세상이었다. 정작 카뮈는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자고 했지만, 훗날 공무원 시험에 두 번 과락할 때까지도 나는 시지프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다.


사람이 움직이는 원리


한 때 나도 동기부여 강의를 즐겨 봤다. 내용을 보면, 멀끔한 강사가 시청자의 안일함이나 게으름에 분노를 담은 일침을 가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유행은 변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의욕을 얻기 위해 그 일침을 듣다.


일단 여기서 동기부여 강의의 쓸모를 의심할 작은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수 많은 동기부여 강의가 정말 효과 있다면, 지금쯤 세상은 의욕으로 넘쳐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의욕 잃은 청년 70만 +α'다.


왜 동기부여 강의는 효과가 없을까. 우선 동기(motive)란 행동할 방향을 정하고, 행동을 시작하고, 끈기 있게 이어가는 힘이다.1) 동기를 느끼는 사람은 각성 상태가 되어 에너지를 행동에 지출하고, 목표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행동을 조절한다.


사람은 언제 동기를 느끼고 행동하고 싶어질까. 현대 심리학자들은 '기대 - 가치이론'을 제안한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사람은 그 행동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동시에 그 행동이 가치 있다고 믿을 때 움직인다. 심리학자들처럼 표현하면, 기대신념과 가치신념이 동기를 이끌어낸다.2)


기대신념에는 여러 하부 신념이 있다. 하나는 '능력 신념'이다. 이름처럼, 내가 그 과제를 잘 해낼 수 있는가, 그 과제가 너무 어렵지는 않은가에 대한 신념이다. 둘은 '결과기대 신념'이다. 내가 과제를 잘 해냈을 때 정말 보상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신념이다. 정리하자면, 내가 어떤 과제를 잘 해낼 수 있고, 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믿을 때 사람은 기대신념을 갖게 된다.


가치신념에는 여러 하부 가치 판단이 있다. 우선 내가 그 과제를 즐거워할 수 있다면 과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시험 공부처럼 다른 목적에 필요하다고 여기면, 역시 과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 내 정체성에 어울리는 과제라고 생각한다면, 물론 과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다만, 과제에 참여할 때 보상에 비해 너무 많은 노력이나 비용이 든다고 생각한다면, 과제의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 사람의 뇌는 매순간 노력의 보상과 비용을 계산한다.3) 보상보다 비용이 크면 뇌는 행동에 에너지를 지출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과제가 뇌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야 비소로 뇌는 그 과제에 참여할 동기를 느낀다.


가치신념은 이런 여러 가치 판단을 포함하고 있다.


신념이라는 무거운 말


심리학자들은 동기와 기대신념, 가치신념을 하나의 공식으로 표현한다. '동기 = 기대신념 x 가치신념.' 이 공식에 따르면, 기대신념이 아무리 무한대에 가까워도 가치신념이 0일 때 사람은 동기를 부여받지 못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기대할 수 있고 가치 있다고 믿을 때, 사람은 비로소 움직이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그 신념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여기서 동기부여 강사들이 외면하는 지점이 드러난다. 동기부여 강사들은 가지 성공 사례를 보여주거나 자기 자신을 그치는 법을 알려주기만 하면 누구나 신념을 바꿀 있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다.' 같은 긍정적인 확언을 복무신조처럼 복창시킨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신념은 마음 속으로 암송하는 생각보다 더 깊은 차원에 있다.4) 우리 뇌에는 나름의 프레임이 있다. 이 프레임은 우리도 모르게 생각과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오랜 시간 경험을 통해 세상의 움직임을 여러 규칙으로 단순하게 기억한다. 이 과정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동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수 년 동안 불운한 실패를 반복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 깊은 곳에 '노력 = 실패'라는 프레임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런 프레임은 습관과 닮아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몇 달 동안 긍정적인 확언을 암송한다고 해도, 뇌는 실제로 겪은 생생한 사례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이런 프레임을 심리학자들은 도식(shcema) 또는 신념이라고도 부른다.


대체로 사람은 자신 안에 어떤 신념이 있는지, 그 신념이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그래서 전문가의 섬세한 도움 없이 각자가 신념을 고치기란 매우 어렵다.5) 동기부여 강사는 할 수 있다고 믿으라며 열변을 토하지만, 이미 무기력을 배워버린 사람에게는 무리한 일이다. 무기력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just do it'이 아니라, 인지치료다.


그래서 동기부여 강사의 거친 입담은 심리치료사의 기술을 대체할 수 없다.


물론 동기부여 강의를 듣고 의욕을 얻는 사람도 있을 있다. 모두가 같은 문제를 겪더라도 같은 신념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튼튼한 낙관성을 타고났거나, 주변에 애착을 느끼는 상대가 있는 등, 자신도 모르게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큰 절망 앞에서도 무기력한 신념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행운아들이 자신의 경험을 잣대로 다른 사람의 무기력을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이 성공하는 것을 보면 세상은 능력주의와 꽤 거리가 먼 곳이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성공 사례 한 개가 실패 사례 백 개, 천 개, 만 개를 덮을 수 있다는 비합리적인 사고능력을 갖고도 소득을 벌고 있으니까.


주석

1. 김아영 등, 학습동기, 학지사, 2022, 22p.

2. 김아영 등, 학습동기, 학지사, 2022, 57 - 62p.

3. 데이비드 바드르,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 김한영 옮김, 2022, 327 -328p.

4. 커밀라 노드, 브레인 밸런스, 진영인 옮김, 까치, 2024, 147 - 148p.

5. 커밀라 노드, 브레인 밸런스, 진영인 옮김, 까치, 2024, 155 - 1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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