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지만 어른이 되지 못했다
연말에는 역시 자아성찰
문학은 재미 없다. 역사와 사회과학은 서너 시간 씩 붙잡고 읽을 수 있지만, 문학은 단 한 번도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다. 마지막에 읽은 것이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였던가. 그것도 중학생인가 고등학생 때였다. 이후에는 어떤 지식을 주는, 건조하고 딱딱한 책을 주로 읽었다. 간혹 문학을 읽은 것도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신한 문장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읽는 습관이 이렇다보니, 쓰는 습관도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한 번은 에세이를 연습 삼아 써 봤다. 어느새 사회과학 글이 되어 있었다. 요즘 웹소설 시장이 크다고 해서 역시 연습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역사 스페셜 같은 글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억지로 부드러운 글을 흉내내려 하면 머리가 굳어버렸다. 머릿속에 없는 글은 쓸 수 없는 글인 것 같다.
책을 내고 싶었는데 난감해졌다. 출판시장은 누구나 읽기 쉽고 부드러운 글을 바라는 듯한데, 나는 그런 글을 길게 못 쓴다. 시장에 맞추려고 노력하고는 있는데, 영 성과가 나지 않는다. 사실 학자도 유명인도 아닌 사람이 책을 낸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문학 분야에서는 출판사가 무명 작가를 발굴하는 사례도 종종 있지만, 그 외 분야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있다고 해도, 내가 간택받을 만한 자격을 가졌는지 확신이 없다.
출판은 역전 카드다. 나는 그렇게 여겼다. 경력이라고는 집안 경제를 돕느라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로 일한 것이 거의 전부다. 학력은 검정고시 고졸이다. 특별한 기술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유튜브 채널을 열든 시민단체에 취업하든, 내가 바라는 일을 하려면 특별한 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출판사로부터 원고를 인정받아서 내 이름이 올라간 책이 판매된다면, 지금까지 책만 읽으라 흘려버린 시간을 조금은 주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마침 집안 경제가 조금 안정되었다. 나 하나 쯤 몇 년 동안 다른 일을 해도 되는 조건이 갖춰졌다. 불안감과 우울감을 참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안일을 도운 보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2022년 가을부터 원고를 준비했다. 주제는 청년 자살이었다. 나도 스무살에 자살을 시도한 적 있으니, 그 경험을 공유하면서 청년 자살의 원인을 파헤치는 책을 쓰고 싶었다. 정신건강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험자가 쓰는 글이니 통하지 않을까. 이번에도 막연하게 기대했다. 그 기대만 믿고, 맹목적으로 자료를 모으며 원고를 고치고 또 고쳤다. 노력이 가미된 탓인지, 출판 외 다른 방법은 없다는 고집까지 생겼다.
헛된 고집이 깨지기까지 2년이나 걸렸다.
목표는 사라졌고, 이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편의점 경력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2025년이 다가온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지 조금 되었지만, 나는 이제서야 통증을 느끼고 있다. 이제 어쩌지. 대책 없이 드러누운 삼십대가 많다는 사회적 사실을 위로 삼아야 하나. 대학 생활을 지원할 만큼 집이 여유롭지는 않으니,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위를 따야 할까. 그 다음에는 뭘 해야하지.
서른인데 어른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아직도 진로상담선생님이 필요하다. 사실, 나 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이 목표를 잃고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남들따라 대학에 들어갔지만 졸업 후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 사람,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한 사람, 기껏 대기업, 공공기관에 취업했는데 몸과 마음이 지쳐서 그만 둔 사람 등, 일반적인 인생 경로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방향을 잃은 사람이 정말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기회가 많은 곳이 아니니까.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우선 진정하는 것, 그리고 사회적 원인을 찾는 것이다. 방황의 사회적 원인을 충분히 살피지 않으면, 사람은 자신이나 애먼 사람만 탓하게 된다. 누구나 사회적 맥락보다는 눈 앞에 보이는 사람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책과 분노에 갇히다 보면, 마음의 시야가 좁아져서 최악의 경우 자살을 시도할 수도 있다. 시도하지 않더라도, 죽고 싶은 생각과 싸우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물론 모두가 사회적 원인을 찾는 데 전념할 수는 없다. 주 69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 면에서 사치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사회적 원인을 찾는다고 해서 미래가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으니, 의욕이 생기기 힘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독서가 유일한 취미인 누군가가 방황의 원인에 대해 미리 조사해 뒀다면 어떨까. 두꺼운 책과 논문을 모두 읽지 않아도, 한 권으로 방황의 원인에 대해 알고 함께 대응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또 다른 막연한 기대로 새 해를 맞이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