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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살랑 Nov 01. 2024

엄마의 생신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둘째의 거짓말을 마주하고 이른 사춘기를 걱정하며 고민에 잠긴 날들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써지지 않는 글을 짜내려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 이틀 전 생일이었는데 아무도 연락이 없어 너무 섭섭해서 울었다고 원망하듯 뱉으셨다. 나는 일이 있어 잠시 후 다시 통화하기로 했고, 언니에게 알렸다. 언니가 전화를 하니 엄청 화를 내셨다고 한다. 남편복 없는 년이 자식 복도 없다고 늬들이 그러니까 사위들도 그러는 거라며 화가 많이 나셨단다. 30분 후 내가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했다. 화를 억누르는 듯한 혹은 다 포기한 듯한 목소리로, 남편과 애들한테 문자도 좀 보내게 하고 가르치라고 했다. 그동안 이혼 가정에서 엄마아빠에게조차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우울약을 먹는 나는 조금 건강해져서 감정표현도 하고 분위기도 풀 겸

"근데 엄마도 내 생일 가끔 까먹은 적 있잖아" 가볍게 말했다.

엄마는 자기가 언제 그랬냐며, 까먹어도 하루 정도 깜빡한 거지, 엄마는(새벽일 다니느라) 바빠서 그런 거지 네가 그렇게 바쁘냐고 했다. 결국 그 말에 나도 볼멘소리를 했다.

"맨날 자기만 바쁘고 자기만 괜찮다고 그러더라"  



학원이 끝난 둘째를 픽업하러 갔다. 마트에서 밥을 사 먹자고 또 조른다. "어제도 외식했잖아. 오늘은 집에 있는 거 먹어"라고 말하던 패기는 사라지고 힘이 빠져 그래 그냥 사 먹자 했다. 엄마는 서러움과 섭섭함으로 가슴이 무너지는데 나는 아들과 이렇게 밥도 잘 먹고 일상을 잘 지내도 괜찮은 걸까 죄책감이 다.

(말은) 늘 나보다 지혜로운 10살에게 고민상담을 했다.

"OO아, 엄마가 고민이 있어. 외할머니 생신이었는데 엄마가 까먹어서 외할머니가 너무 서운해서 지금 우셔."

이 말을 듣고 한 3초간 가만히 있던 아들이 뜻밖의 말을 한다.

"이혼을 했으면 감당해야지."

아니 어디서 이런 얘기를 들은 건지. 물론 명절에 엄마 쪽 아빠 쪽 각각 따로 만나 봬야 할 때마다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다. 엄마도 아빠도 혼자 사시는 데다 워낙 가족 간의 정을 중시하는 성격(근데 이혼하심)이시라 자녀들이 자주 찾아오고 자주 전화하고 같이 뭘 하는 걸 원하신다. 하지만 내가 기억나지도 않는 5-6세 즈음 이혼하시고 8세 땐 할머니, 아빠, 삼촌과 살았다가 아빠랑만 살았다가 다시 엄마랑 살았던 시간을 거치면서 나는 부모님과 전혀 애착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 부모님은 내가 본인들과 애착관계가 매우 잘 형성돼 있다고 여기시는 듯했다.



"아빠가 딸한테 그런 말도 못 해?"

몇 년 전 아빠와 대화 중 아빠가 하신 말이다. 아빠는 나랑 허물없는, 밀접한 부녀간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는 아빠한테 그런 말을 못 했고, 여전히 못한다. 아빠 상처받을까 봐, 아빠 속상할까 봐. 왜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나에게, 충분한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해 친척들 사이에서 눈치 보며 자란 나에게, 당당하고 건강한 딸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인가. 아빠도 엄마도,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분들이, 너는 왜 그 정도밖에 안 되냐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억울하고 미웠다. 그런데 미우면 밉다, 억울하면 억울하다 말을 못 하니 점점 마음에서 멀어갔다. 의무만 겨우 이어가는 딸이었다. 정신과 약을 먹는 내게 약을 왜 먹느냐며 이해하지 못하셨다. 아무리 설명해도 내가 왜 정신적으로 아픈지 모르는 부모님을 포기해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문득문득 두려움이 몰려온다.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시라도 하면, 나는 땅을 치며 후회하지 않을까. 부모님의 진심을 내가 오해하고 외면한 건 아닐까. 내가 두 분을 오해한 거면 어떡하지?



"이혼을 했으면 감당해야지"

아들의 대답이 너무 냉혹하게 느껴져

"근데 두 분이 이혼하신 거랑 내가 내 엄마 생일 챙겼어야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물었다.

"남편이 있으면 남편이 챙겨줬겠지"



우리의 문제는 항상 여기에 있었다. 고모가 언니와 나에게 바라셨던 역할도 모두 엄마나 아빠가 해야 할 역할이었고 부모님이 우리에게 바라셨던 역할도 (물론 우리가 잘했다면 좋았겠지만) 각자의 배우자가 있었다면 어느 정도는 문제없을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 분의 이혼을 내가 핑계 삼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아빠는 그렇더라도, 나는 왜 그런 아이가 못 되는가. 이혼을 하셨어도 우릴 버리진 않으신 부모님인데 왜 두 분이 섭섭지 않을 정도로 연락하고 찾아가고 대화하는 게 어려운가. 오랜 자책으로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엄마아빠가 불행하니 나도 행복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들과 대화를 나누 나는 부대찌개를 퍼먹고 냉모밀을 다. 이혼한 엄마를 살뜰히 살피기는커녕 1년에 한 번 있는 생신조차 까먹은 불효녀일지라도 나는 오늘을 살아가야 했다. 내 앞에 자녀가 있고, 남편이 있고, 또 나라는 존재가 있다. 내가 우울하고 불행하게 사는 것이 부모님과 아픔을 같이 한다는 공감의 행위가 되지 못한다. 더 건강해져서 내 마음도 건강히 표현하고 그래서 건강한 부모자녀 관계가 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모두를 위한 길일 게다.



14살에게도 같은 고민을 건넸다. 얘기를 들은 큰 아들 멋쩍게 웃으며 아무 말이 없다.

"엄마가 외할머니한테 사과는 했어."

"근데? 그럼 된 거 아냐? 나한테 왜 말한 거야?"

".... (말하면 안 되냐 짜샤) 아니, 외할머니가 너무 서운해하시니까 엄마가 속상해서"

"챗gpt한테 물어봐"

"......?"  




ChatGPT


You said:

친정엄마의 예순아홉 번째 생신을 까먹고 지나가서 엄마가 너무 서운해하시고 화가 나셨어. 두 딸과 두 사위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어. 우리 엄마는 이혼하고 혼자 사셔. 엄마께 사과하긴 했지만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우울해할까 봐 나도 슬퍼. 어떡해야 할까?


ChatGPT said:

마음이 많이 무거우시겠어요. 친정어머니께서 그동안 많은 것을 혼자 감당해 오셨을 텐데, 생일을 기억해 주길 바라셨을 거예요. 어머니께서 조금은 마음을 풀 수 있게 지금이라도 정성을 다해 축하해 드리는 게 어떨까요? 예를 들어, 가족이 모여 간단한 식사 자리 나 작은 이벤트를 열어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담아내고, 어머니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어요.

이때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어머니의 생애, 함께한 시간들을 기억하며 진심 어린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것도 중요해요. 어머니가 외롭지 않다는 걸 자주 느낄 수 있도록, 앞으로는 어머니와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연락하는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네요.



이런 것도 답해주는구나. 무서운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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