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SNS를 사용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익명이 아니다. 내 이름과 생활을 아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정도껏 가면을 써야 한다. 함부로 지난 사랑 얘기를 털어놓을 수 없고, 종종 북받치는 감정을 쏟을 수 없다. 완전한 익명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브런치'를 떠올렸다. 학창 시절 아무렇게나 끄적거렸던 일기장처럼, 여기 아무렇게나 누구도 읽지 않는 글을 쓰려 한다. 스스로에 대한 검열을 최대한 내려놓고, 문체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글의 완성도를 평가하지 않고 쓰려 한다. 자꾸 Backspace를 누르는 습관도 여기에서는 잠시 내려놔야 한다.
내가 지금보다 더 솔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인데, 동시에 무지 게으른 인간이라,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을 꼼꼼하게 글로 남기지 않는다. 단상은 가끔 SNS에 게시물로 올리긴 하는데, 되도 않는 완벽주의가 발동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너무 많은 퇴고를 거친다. 그러지 말자. 그냥 감정을 쏟고, 내가 쓰고 싶은 사람에 대해, 내가 쓰고 싶은 일들에 대해, 머리에서 손으로 가는 동안 단 하나의 방지턱도 없이, 일단 쓰자.
이곳은, 작가 승인이 나지 않으면 어차피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우연하게 작가 승인이 나도, 아마 몇 사람 읽지 않는 글을 쓸 것이다. 세상에는 읽을 글이 넘치고, 내 글이 그 사이에서 빛을 발하리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 나는 글을 쓰고, 쓰는 동안에는 글 초반부부터 다시 읽고 문장을 고치는 우유부단함을 버리자.
첫 글이다. 첫 글은 언제나 설렌다. 눈이 쌓여 아직 아무도 걷지 않은 길에 새로운 발자국을 내는 기분이다. 여기에 나는 지난 내 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나를 괴롭히는 우울에 대해 쓰려 한다. 진부한 주제이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는 익명의 일기장이기 때문에. 나는 아무거나 쓸 권리가 있기에.
2023년 1월에 쓴 글을 지금에야 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