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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 Aug 21. 2015

관습과 습관 사이

당신의 정원에 부치는 편지


어쩌면 말이에요

꽤 화려한 것들이 많은 당신의 정원에서

당신이 나를 보며 손짓하여도

반쯤 열린 울타리에다 노크를 하고

조심스레 '실례하겠습니다' 속삭인 다음

행여나 잔디가 다칠까 까치발을 떼며 들어서는 것이

그쪽 정원의 예의라면요

내가 조금 무례했을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 암묵적인 약속이,

당신을 포함한 정원의 생물 하나하나에 깃들은 그 무언의 관습

당신의 세계에만 존재한다 생각한 적 없나요


만약 어떠한 우연으로, 혹은 필연으로

당신의 머리위로 바람이 불어와

스치듯 한번이라도, 미세한 진동으로라도

당신의 세계가 흔들린다면

한번쯤 생각해보길 바래요

그건 사실 관습이아니라

습관일 수도 있어요



습관이란 것은 말이에요

당신이 집을 나설 때 왼쪽 신발끈부터 묶는 것

카페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눈을 굴려도 결국 아메리카노를 고르는 것

자기전 넘기는 몇장의 책장이

당신이란 사람을 만들어내듯

사소한 것들이 이루어놓은 하나의 세계에요


그렇게 당신은

까치발로 나의 정원에 들어서는 사람이,

그렇게 내가

거침없이 당신으로 이어진 길을 밟는,

당신에겐 다소 부담스런 사람이 된 거에요

습관으로, 습관적으로 말이에요



수 많은 정원이 있고, 수 많은 세계가 있어요

수 많은 습관이 있고, 수 많은 사람이 있어요


그저 내가 당신을 모르는 만큼

당신의 습관을, 그 세계의 관습을 모르는 만큼

당신도 나를 모른다는 것을 알아줬음 해요

그 뿐이에요


우리는 모두 관습과 습관 사이에서

평생을 헤메이다

사라지는 존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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