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배낭여행, 메콩강에서
그 강을 오롯이 느꼈던 건, 분명 제 2의 감각들이었다. 일상에선 시각의 편식에 하릴없이 물러서 있다, 때가 되면 깨어나는 그런 감각들. 그날 밤이 딱 그랬다.
아마 라오스에서의 첫 날이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느라 다들 진이 빠졌을 텐데, 난생 처음 국경을 맨발로 넘었던 촌놈들은 그 기념적인 밤을 그냥 넘기기는 아쉬웠는지 맥주와 꼬지 몇 개를 사들고 어둠을 걸어 강가로 향했다. 유일한 빛이던 휴대폰 불빛은 천 낍짜리 꼬지만을 선명하게 비추고, 햇볕에 그을린 다섯 개의 얼굴들은 선심 쓰듯 부분부분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백 걸음쯤 떨어진 야시장에선 낯선 언어의 음악과 시끌벅적한 사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리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모래냄새. 낭만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꺼내는 편은 아니다만, 그 감각들은 참으로 낭만이라 불릴 만 했다.
그렇게 모자라지도 않게, 과하지도 않게 모든 감각들이 제자리를 찾듯 딱 맞아 떨어진 순간은 대게 어떤 이야기로든 공기가 데워지기 마련이다. 이미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얘기들을 나눴던 우리지만 그래도 마지막 남아있던 한 점의 이야기를 꺼내게 한 건 분명 그 순간의 힘이었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만드는 게 어릴 적 꿈이야. 근데 사실 지금도 그래.”
“난 나를 사랑하지 못해. 그런데 누가 날 사랑해줄까.”
“나는 단 하루도 행복했던 날이 없어.”
고교 3년을 진득하게도 부디끼고 서울까지 함께 올라온 우리였다. 숨막혔던 입시도, 타지생활의 외로움도 함께 이겨냈기에 서로를 다 안다 생각했다. 그것은 오만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서로의 부분만을 보고 살았던가. 저마다 조심스레 내어놓은 고백들엔 짧은 침묵만이 어울렸다. 서로가 가엾어 허둥지둥 내두루는 말들은 저마다의 아득한 심연앞에 산산히 부서질 뿐이다. 어깨에 올려놓은 손의 온기만이 서로를 헤아릴 수 있음을, 나는 온 몸의 감각들로 깨달았다. 때로는 말이 필요하지 않은 때가 있다.
아직은 모든게 서툰 우리를 보고 강은 뭐라 말했을까. 자신도 그랬다고, 사천여년을 요동치고 방황하고 흔들리다 결국은 말라붙었다고, 그렇게 다그쳤을까. 혹은 흔들리는건 흔들리는 대로 아름답다고, 그러기에 너희는 여전히 흐르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다독였을까.
그날밤 우리는 밤하늘로부터 고요히 내려온 침묵을 덮고 누워 한참 별을 셌다. 어쩌면 밤하늘에 드문 드문 자리했던 별들보다 우리의 청춘이 더 밝게 빛났을 수도 있겠다. 깜빡깜빡, 혹은 반짝반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