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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지우개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

25년도 연필지우개는 이렇게 고품질이라고?

by 분당주민

연필 지우개의 유래를 아시나요?


연필 지우개는 1867년 7월에 특허를 받았다고 합니다.

뒤꽁무니에 지우개가 달려있는 이 연필은 피아에 살던 하이만이라는 한 소년이 만들어냈습니다.

하이만은 집안 형편 때문에 친구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돈을 조금씩 벌어갔죠.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지우개였지요.

그림을 그리며 돈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하이만에게는 지우개가 소중했습니다.

하지만 지우개를 손에 쥐고 있으면 땀이 나 그림이 더 번지게 되어 매우 불편했습니다.

지우개에 실을 달아 연필에 연결하기도 했지만, 곧 부서졌죠.

그치만 걱정도 잠시, 하이만에게는 엄청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양철 조각으로 지우개와 연필을 묶는 것이였죠.

그걸 본 친구들은 특허를 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고, 마침내 특허를 받게 되었죠.


저는 책을 좋아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 오전은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으면 책 빈공간에 생각을 쓰는 것도 좋은 문구에는 밑줄 치는 것도 좋아해서 항상 연필이나 샤프를 들고 다닙니다. ​

오늘은 가방에 연필도 샤프도 없습니다.

둘 째 딸 책상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1분도 되지 않아 지우개가 달린 샤프를 확인합니다.

뒤에 붙은 지우개를 꾹꾹 두 번 눌러보니 샤프심을 힘차게 내 뱉습니다. 약간의 미소가 스쳐갑니다.


스타벅스에서 댄 에리얼리 교수의 미스빌리프 (Dan Ariely, MISBELIEF)를 펼치고

이 더운 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십니다.



“빈곤 상태가 뇌의 제한된 대역폭을 자치해 인지 능력을 방한한다는 개념인 결핍 사고방식”과

“끊임없는 걱정, 주의력과 뇌 용량을 지나치게 많이 잡아 먹는 걱정은 결코 유용할 수 없다” 문장에 밑줄을 그어봅니다.

밑줄을 많이 긋는 편이라 직선의 매끄러움을 잘 구현하는데 오늘은 이상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샤프 뒤에 솟아 있는 각이 잘 잡힌 지우개가 보입니다. 슥슥 지워나가는데 놀랍니다. 세상에 이렇게 부드럽게 깨끗하게 지워진다고?



사실 저는 연필지우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쓰던 연필 지우개는, 80년대 그 시절, 품질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기억입니다.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연필 지우개는 뻑뻑했고 지우개 똥이 책에 달라 붙고, 사실 만족스럽게 지워지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지우개를 가지고 빡빡 지웠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제집을 2번 3번 풀 때가 있었습니다.

문제를 풀고 답을 적을 때 연필을 쥔 손의 힘을 최대한 풉니다. 그래야 지울 때 깨끗하게 지워져 다음에 풀 때 답과 풀이과정이 안보이니까요.

그렇게 품질 좋은 지우개는 저에게는 필수품이었습니다. 많이 쓰기도 했고 독서실 책상이 항상 지우개로 가득했습니다.


세상이 좋아졌습니다. 제 딸들을 보면서 그 시절 제 모습을 많이 회상하고는 하는데,

이 좋은 샤프를 책상에 막 던져두고 있는 둘째 (제 고등학교 시절이었으면 이 샤프는 완전 애장품이었을 것 같은데),

책상에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는 문제집을 펼쳐보니 지난치게 여백의 미를 좋아하는지 의심되었습니다.

야속한 놈들.


세상은 좋아졌고 먹는거 입는거 다 좋아진거 부정하기는 어렵겠지요.

이렇게 좋은 샤프와 지우개를 쓸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빈곤하다는 박탈감, 원하는 것을 이룬 기쁨에 바로 스치는 불안함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좋아져도 힘들게 사는 역설.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두 가지 뿐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살거나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거나” 지금 필요한건 후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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