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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당주민 Dec 31. 2024

맥베스, 고전은 시간을 이겨낸 작품

맥베스 이야기는 이 글에서는 아주 조금 나온다.

작년 이맘때 뉴욕을 갔다. 출장이었지만 부담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도입을 검토하던 (자의는 아니었지만) Sleep no more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난해했다. 그리고 편안한 객석이 아닌 4~5개 층을 미친 듯이 돌아다녀야했다.

과연 이 낯선 공연이 우리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겼다.


최근 퇴사를 했다. 그리고 공연은 우리나라에서 곧 오픈할 예정이다.

의구심도 불안감도 없다. 성공하던 하지 않던 이제 내 일도 내가 걱정할 문제도 아니니까.


Sleep no more는 맥베스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2~3번은 봐야 맥락이 이해되고 맥베스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번보고 이 모든 것이 파악되었다면 

천재로 인정한다.

난 그러지 않았다. 지금도 머리 속 기억을 소환해보면 아직도 난해하다.



요즘 몇 번의 경험으로 맥베스가 다시 내 삶속으로 소환된다.


용맹스러운 장수였지만 맥베스는 욕망 때문에 타락하다가 선을 넘고 파멀에 이르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자기 무덤을 제가 판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까.


이야기는 이렇다.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오던 날, 한밤중 광야에서 맥베스가 만난 세 마녀는

“만세, 앞날의 왕이시여!” 의 주술과 예언을 한다.

남편보다 더 야심만만했던 레이디 맥베스는 배우자를 부추겼고 맥베스는 결국 선을 넘고 만다.

결국 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자에 오르지만 그 이후 비극의 결말이 남았을 뿐이다.


몇 줄로 정리하는 것이 옳지는 않지만

위에 5줄의 문장만으로도 지금 대한민국의 혼란과 비극이 보이지 않는가?

24년의 마지막 날 그리고 마지막 달에 벌어진 이 혼란과 비극이 주술, 예언, 야심만만한 배우자가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는가?

고전은 시간을 이겨낸 작품으로 교훈으로 삼기에 충분한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올해 전 회사에 큰 투자를 했던 전시가 오픈했고

난 그 오픈행사를 맡았다. 그때 같이 협력한 파트너사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모시기 위해 노력했다.

파트너사의 대표들을 모두 정중하게 모셨다.

딱 1군데 업체만 대표의 배우자가 참석했다. 미처 착석할 자리에 네임태그를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게 신경쓰여 오시는 것을 확인하고 일부러 자리까지 안내드렸다.

행사의 최고 담당자로 하지 않아도 되었고, 직원에게 시켰어도 되는 일인데, 

예외적인 상황이라 내가 직접 대응했다.

신기했다.

대표를 모시고 온 직원들이 대표보다 배우자에게 더 민감했고 더 케어했고 

그 회사의 주인이 누군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잘 모르지만 무슨 사연이 있겠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했는데,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잊고 살았는데 최근 그 회사는 대한민국에서 손을 꼽을 만큼 그 영역에 최고임에도 

회사가 어렵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했던 이유가 아니었으면 했다.


그리고 몇일 전 큰 행사에 다녀왔다.

퇴근을 일찍하고 미용실에 갔다 집에서 예의바르게 입고 몇년만에 가장 화사하게 꾸민 와이프와 동행했다.

행사는 몇 가지 아쉬움이 있었지만 (디테일의 부족이 너무 보이기는 했다)

5성급 호텔의 멋진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했었다.

그렇게 행사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는데 이상한 점이 보였다.

행사를 주관한 대표의 와이프가 참석했는데 회사에 참 많은 개입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에 보인 것은 와이프가 친한 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왜 대표가 조금이라도 챙겨보려고 했는지

그리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인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그처럼 인자할 것 같던 미소로 행사에 참석했던 사람이 마지막 옷을 보관하는 곳에서 보인 행동이다.

겨울이라 코트나 외투를 행사 전 cloak room에 맡긴다. 나도 잘 안입던 코트를 입장할 때 보관했다.

보관하면 당연 보관증을 주고 또 당연하게 보관증을 주고 찾는다.

내 번호 89번을 쥐고 서있는데 배우자가 앞에서 보관증을 잃어버렸고 눈 앞에 보이는 외투를 요구한다.

당연 직원은 보관증을 요구하는데 보관증이 없으면 정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행사의 대표이사란 말이에요!”라는 날카로운 윽박이 가고 호텔 직원의 눈은 초점을 잃는다.

내가 호텔직원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불쌍했다. 아무리 호텔이 감정노동의 강도가 강하더라도 대표를 

들먹이며 그런 날카로운 윽박에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옷을 찾았다. 그리고 그 옆에 서있던 내가 번호표를 건네고 코트를 건네 받았다. 최대한 정중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코트를 건네받는 직원의 손과 눈은 떨리고 있었던 것 같다.


다짐했다. 대표와는 뭐.. 나는 도비고 노예의 삶이니까… 

잘 지내겠지만 배우자와는 딱히 그럴 필요가 없어도 된다는 것을.


LG전자에 다닐 때 해외 출장을 갔고 그곳 법인장과 저녁을 했다.

와이프를 데리고 오지 않았고 혼자 그곳에 살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다.

애가 고등학교 3학년이거나 아니면 그곳 생활이 불편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저녁을 먹는 중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법인에는 과장부터 부사장까지 여러 직급에 나오는데 배우자들이 모이고 김장을 담고 뭐 그러게 되면 

결국 그곳에서도 왕이 생긴다.

본인 어릴 적 주재원 생활에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고.

회사는 직급과 직책에 의해 운영되는 곳이지만 굳이 가족들까지 그럴 필요가 있겠는지 반문한다.

인상 깊었다.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했었다.


회사의 주인은 모두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회사의 주인은 창업주고 그 회사를 물려받은 2세, 3세 아니면 대주주다.

회사의 대표라고 하서 그 배우자까지 그런 자격을 얻은 것은 아니다. 물

론 배우자가 대주주라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대통령이라고서 그 배우자가 대한민국을 통치할 수 없다.

우리는 누구의 위치가 곧 나의 위치일 수도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다.

그러지 말자.

그럴 수록 더 현명하고 겸손하게 행동하고 권위를 보여주려 하지 말고 행동과 언행을 통해 

스스로가 존중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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